정부 부처와 공직 사회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거침없는 비판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각 부처를 돌아가며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이 대통령은 어제도 비판을 이어갔다. 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그는 전신인 산업자원부를 도마 위에 올렸다.

“유가급등에 대한 정부 대책이 실질적으로 성과가 있는 것이 중요한데 솔직히 고민한 흔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유가가 2배 폭등했는데 미리 대비해서 대책을 세우고 필요한 자원을 확보했어야 하는데, 과거 부처가 이름만 산업자원부였지 대책은 세우지 못한 것 같다.”
“자원확보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무슨 미래 예측을 했는지 모르겠다.”
“기업 입장에서 차라리 없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에게 지적당한 부처는 지식경제부 만이 아니다. 3월10일 기획재정부로부터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그는 “공무원은 재정위기 오고 경제성장 떨어져도 그냥 출퇴근만 하면 된다”고 비꼬았다.

정부부처를 향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적질’ 온당한가

▲ 중앙일보 3월12일자 1면.
다음날(11일) 외교통상부에서는 “그간 업무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불만이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노동부에는 “새로운 노사문화도, 노사정 협력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화관광체육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도 이 대통령으로부터 다들 독한 채찍질을 당했다. 물론 허물이 있다면 지적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업무보고를 하고 있는 공무원 면전에 대고 ‘당신들 없는 게 도움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아무리 봐도 심했다. ‘경제성장 떨어져도 그냥 출퇴근만 하면 되냐’며 비꼬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평생을 땅투기가 뭔지, 위장전입은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고 박봉이나마 건강보험료와 세금 꼬박꼬박 내며 성실하게 공직 생활을 해온 (차관 이하)대다수 공무원의 명예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표현의 문제를 떠나, 이 대통령의 지적이 타당한가도 의문이다. 지식경제부에서 그는 유가상승 대책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몇 년 사이에 유가가 2배 폭등했는데 미래 예측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불과 하루 전 장차관 워크숍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위기가 아주 초기단계다. 아마 오일쇼크 이후에 최대 위기가 오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예측이 아직까지 확실히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다.”

헷갈린다. 당장 대통령 본인의 말부터 앞뒤가 안 맞는다. ‘예측이 확실히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일쇼크 이후의 최대 위기’ ‘같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산자부 공무원들에게는 유가 상승에 대비한 미래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질책해놓고 본인은 예측을 못하겠다는 건 또 뭔가.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유가 상승에 대한 예측을 더 정밀하게 해서, 더 정밀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건가.

사실 기름값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워낙 촘촘한 탓에 정부에서는 그동안 나름의 고유가 대책을 세워왔다. 그 가운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유전개발 사업에 대한 투자도 2005년 9억5천만달러에서 2006년 21억달러, 2007년 30억달러(추정치)에 이를 정도로 크게 늘려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해외에서 확보한 석유와 가스 확보 매장량은 116억배럴에 이른다. 그 이전까지 52억배럴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2배가 넘는 성과다. 물론 최근의 국제유가 상승세를 감안하면 충분하다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매도당할 정도는 분명 아니다.

비판을 하려면 비판의 대상과 근거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듣는 이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적질’에는 비판의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들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둔감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해외토픽감 청와대 전산시스템 해프닝

▲ 청와대 전산시스템 관련 사안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보도
청와대 전산시스템을 둘러싼 해프닝(혹은 사건)도 그런 측면에서 반드시 규명돼야 할 사안이다. 이 대통령은 3월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저도 청와대에 들어간 2월25일 저녁에 청와대 내에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컴퓨터를 다시 작동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년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발언의 앞뒤를 살펴보면 참여정부를 탓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청와대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다. 이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비협조를 꼬집었다.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하다. “MB가 청와대 컴퓨터 못쓴 이유는? ‘비번을 몰라서’”라는 제목의 <노컷뉴스> 보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열흘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은 '이지원'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로그인'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는 17일 ‘대통령 집무실의 컴퓨터에 '락'(Lock)이 걸려있는데, 그동안 비밀번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게 뭔가. 만약 <노컷뉴스>의 보도대로 이 대통령이 ‘비번’을 몰라서 컴퓨터에 접속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석상에서 청와대의 전산시스템을 비판했다면, 이는 명백한 <해외토픽>감이다.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어법을 빌자면, 인수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업무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불만이 있다’는 것이 상당수 국민들의 여론인데, ‘어떻게 보면 예측이 확실히 되지 않는 그런 상황’이지만, 지금이 ‘위기의 아주 초기단계’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오일쇼크 이후에 최대 위기’가 오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최성진은 현재 한겨레21 정치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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