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쇼트트랙 연맹(SKR)은 지난 4일(현지 시간) 연맹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훈련 방식을 둘러싼 한국인 코치들과 러시아인 지도부 간의 갈등을 이유로 러시아 대표팀 장권옥(미국명 지미 장) 총감독과 최광복 코치, 마사지 전문가 김지호 씨 등 한국인 3명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SKR 회장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지난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진행된 러시아 대표팀 전지훈련 기간 중 최 코치가 훈련 후 휴식을 취하는 한 러시아 선수의 자세가 올바르지 못하다며 벌로 트랙을 30바퀴 더 돌라고 지시하자 러시아인 코치 아나톨리 브라살린이 최 코치의 체벌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이를 이행하지 말라고 선수에게 지시했고, 이에 장 감독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브라살린을 해고하지 않으면 러시아팀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한국인 코치진과 러시아인 코치 사이의 심각한 갈등이 빚어진데 대해 크라프초프 회장은 결국 한국인 코치단을 해고하는 것으로 사태를 매듭지었다.

크라프초프 회장은 먼저 "장 감독과 최 코치의 행동은 러시아 선수단의 이해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최근 한국 코치들이 의도적으로 러시아 지도부와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입는 가운데서도 '살아남는 자가 챔피언이 된다'는 한국식 훈련 스타일을 고수했다"고 지적하는 한편 "장 감독이 러시아 대표팀과 일하는 동안 우리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방식을 러시아 토양에 거칠게 이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상과 건강 문제로 능력 있는 선수들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했었다. 훈련 방식을 바꿔달라는 우리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크라프초프 회장은 그와 함께 "한국 전문가들은 쇼트트랙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스케이트 장비 준비 비법을 러시아 코치들에겐 절대 알려주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선수들을 자신들에게 종속시키고 코치단을 독재화하려 시도했다"고 이번 집단해고사태의 또 다른 원인을 지적하기도 했다.

크라프초프 회장은 2011/12년 시즌에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은 브라살린과 또 다른 러시아인 코치 알렉산드르 게르치코프가 이끌 것이라며 내년 초에 코치진을 보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의 한국인 코치진 집단해고 소식은 국내 누리꾼들에게도 큰 이슈가 됐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쇼트트랙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쇼트트랙의 오늘의 위상이 '적자생존의 원칙'과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대변되는 한국식 훈련방식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 외국의 연맹에 의해 여과 없이 드러났고, 그와 같은 방식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번 소식을 접한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한국인 코치진의 훈련방식이 구시대적이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언제까지 선수를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훈련을 시켜본들 어느 수준 이상으로 성적을 올릴 수도 없고, 실제로 성적을 목표치까지 올린다고 해도 선수들이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함께 아직도 과거의 훈련방식을 고집하는 많은 국내 지도자들도 이번 사태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를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번 사태가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 이슈가 된 더 큰 이유는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가 러시아 대표팀에 합류해 조만간 러시아 대표팀의 일원으로 국제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안현수가 러시아 귀화를 선언한 만큼 더 이상 국내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게 불필요하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많았지만 안현수는 엄연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3관왕을 이뤄낸 한국의 쇼트트랙 영웅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지난 8월 러시아 귀화 의사를 밝힌 안현수는 이르면 이달 중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내년부터 세계 선수권 등 국제 대회에 러시아 대표로 출전할 예정이다.

러시아 연맹 측은 한국인 코치진에 대한 해고를 발표하면서 러시아 국적을 신청하고 현지 쇼트트랙 팀에서 훈련하고 있는 올림픽 3관왕 안현수 선수는 계속 팀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크라프초프 회장은 "장 감독의 대표팀 영입과 안 선수의 이적은 서로 관련이 없다"며 "장 감독 해고가 안 선수의 향후 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현수의 러시아 진출은 장권옥 감독이 다리를 놓은 것이 아닌 안현수 측과 러시아 연맹 고위층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인 코치진들의 집단 해고사태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안현수의 입지나 신변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현수가 러시아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연맹이 안현수 측을 설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러시아 대표팀을 장권옥 감독을 위시한 한국인 코치진이 이끌고 있다는 점을 어필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번 사태가 안현수에게 전혀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러시아 진출 초기 안현수가 겪어야 할 많은 시행착오를 대표팀의 코치진들이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지만 이들이 모두 해고됨에 따라 안현수는 그와 같은 기대는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어찌됐든 이제 안현수는 러시아 대표팀 선수고 러시아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처지다. 그가 러시아 귀화를 선언하는 순간 사실상 그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물론 아직 국내에는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고, 심지어는 그가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해 자신을 '왕따'시킨 한국 빙상계에 복수하라는 '응원'을 보내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그야말로 일부의 생각일 뿐 그가 러시아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한국 선수들과 나란히 스타트 라인에 서는 순간 한국 선수를 응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눈에 그는 그저 한 명의 러시아 대표선수일 뿐이다.

안현수는 언젠가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라면 가슴에 달린 국기가 어느 국가의 국기인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 스스로 조국을 애써 잊으려 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러시아의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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