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폴란드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로 꼽힙니다.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서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거뒀던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16강 진출이라는 꿈을 안고 시작한 첫 경기에서 한국 축구는 황선홍, 유상철 두 베테랑 선수의 연속골로 2-0 완승을 거두고 4강 신화를 향한 첫 신호탄을 쐈습니다. 동구권 강호로 꼽혔지만 한국 축구 특유의 조직력과 붉은 물결로 가득했던 한국팬들의 기에 완전히 눌린 폴란드는 1승 2패로 예선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9년 4개월 뒤, 한국과 폴란드가 다시 만났습니다. 장소를 바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오늘 저녁, 평가전을 통해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은 브라질월드컵 예선을 위해, 폴란드는 유로2012 본선을 위해 저마다 목적을 갖고 경기를 갖겠지만 9년 만의 재대결을 통해 한국은 승리의 기운을 이어가고, 폴란드는 당시 패배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맞붙는 두 팀 선수들 가운데 9년 전에 뛴 선수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나마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후반 교체 멤버로 출전했던 차두리가 이번 대표팀에 발탁되기는 했지만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아쉽게 뛰지 못하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2002년에 맞붙었을 당시 뛰었던 양 팀 선수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대표팀에서는 뛰지 않아도 과연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되는지, 혹 지금 뛰고 있지 않다면 지도자 생활을 몇 명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출전 선수 명단

대한민국
이운재(GK), 최진철, 김태영, 홍명보, 김남일, 유상철(이천수 56분), 이을용, 박지성, 송종국, 설기현(차두리 89분), 황선홍(안정환 50분)

폴란드
두덱(GK), 제브와코프, 하이토, 바우도흐, 바크(클로스 50분), 스비에르체브스키, 칼루즈니(M. 제브와코프 64분), 올리사데베, 크지노벡, 주바르스키(크리잘로비츠 46분), 코즈민스키

▲ 2002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환호하는 히딩크호 축구대표팀 선수들
한국 출전 선수 14명 가운데 현재까지도 현역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는 모두 9명(이운재, 이천수, 이을용,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 설기현, 차두리, 안정환)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잘 나간 선수로 단연 박지성을 꼽습니다.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통해 거스 히딩크 당시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은 박지성은 당당히 베스트11에 나서 90분 풀타임을 뛰고 맹활약을 펼쳐 또 한 번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후 익히 알려진 대로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 간 박지성은 잉글랜드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그 외에 이운재는 국가대표 은퇴 후 전남 드래곤즈 수문장으로 활약을 펼치고 있고, 설기현은 울산 현대에서 주축 멤버로 역시 활약하고 있습니다. 송종국은 중국 톈진 테다에서, 안정환은 중국 다롄 스더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천수는 일본 오미야에서, 김남일은 러시아 톰 톰스크에서 뛰며 30대 선수 생활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 폴란드전 당시 정확한 크로스로 황선홍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던 이을용은 터키 진출 후 국내에 들어와 FC 서울을 거쳐 고향팀 강원 FC 창단 멤버로 활약했고 오는 23일 현역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현재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현재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김태영은 홍명보를 보좌하는 올림픽대표팀 코치로 3년째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폴란드전 선제골을 넣은 황선홍은 은퇴 후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거쳐 현재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정상을 꿈꾸고 있고, 쐐기골을 넣었던 유상철은 얼마 전 대전 시티즌 감독을 맡아 프로 지도자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현역 선수들이 여전히 제법 많은 한국과 다르게 폴란드 선수들은 대부분 현재 선수로 뛰고 있지 않습니다. 3명만 현역으로 뛰고 있을 뿐 나머지는 은퇴 후에 따로 1부리그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 예지 두덱
폴란드 선수 가운데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선수였던 골키퍼 예지 두덱은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현란한 몸놀림(?)으로 승부차기에서 신들린 선방을 보이고 소속팀 리버풀의 우승에 큰 역할을 해낸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뒤 이케르 카시야스의 그늘에 가려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결국 지난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해 다소 씁쓸한 말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공격수로 나섰던 주라브스키는 폴란드 비슬라 크라코프에서 얼마 전 현역 은퇴를 했으며, 야첵 크지노벡 역시 지난해 독일 하노버96 이후 현역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도 주축 수비수였던 토마시 하이토와 미드필더 스비에르체브스키는 폴란드 1부리그 LKS Lodz에서 지난해 나란히 은퇴했으며, 베테랑 수비수 야체크 바크는 카타르 알 라이안 등을 거쳐 역시 지난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은퇴했습니다. 미드필더 마렉 코즈민스키는 지난 2003년 일찌감치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수비수였던 토마스 발도흐는 2007년 폴란드 클럽에서 은퇴한 뒤 지난 2009년까지 독일 샬케04 17세 이하(U-17) 팀 코치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들 가운데서 현재 현역 1부 리그 팀 감독이나 코치로 활동하는 사람은 딱히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선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나이지리아 출신 귀화 선수 올리사데베가 그 주인공입니다. 2002년 당시 경계대상 1호로 지목됐다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패배의 빌미를 자초했던 올리사데베는 이후 2004년까지만 대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07년까지 영국, 그리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중국 허난 팀에 입단해 3년간 활약했고, 현재는 그리스 2부 리그 비자스에 입단해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 또 미하엘 제브와코프는 폴란드 1부 팀에서, 카우즈니는 4부 팀에서 뛰며 노장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나이는 30대 중후반이지만 그래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마지막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 그라운드에서 멋진 경기를 펼쳤던 선수들이 9년이 지나 저마다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세월이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 희비가 엇갈렸지만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많은 팬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사했던 두 나라 선수들의 활약상은 지금도 많은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2011년 10월 7일 저녁, 새로운 세대의 한국, 폴란드 축구 선수들이 얼마나 멋진 경기를 펼칠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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