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는 분명 조선의 성군 세종 이도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극은 그 어떤 사극보다 민초들의 삶을 가장 정확하고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노비, 거지, 주모 등 천민들의 생활이 배경의 전부였던 추노보다도 어쩌면 더 깊은 곳에서 민중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뿌리깊은나무가 향하는 사극의 아주 중요한 변화시점이다. 드라마 작가들의 역사의식이 전보다 발전하고 세련되어진 것도 있지만 이미 수많은 사극을 통해 조선시대 왕실의 이야기는 동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사극에 있어서 왕과 대신들만의 탁상공론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뿌리깊은나무 주인공들의 배치가 왕 한석규와 노비 출신 장혁과 신세경인 것도 그런 사극의 피할 수 없는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뿌리깊은나무는 그래서 왕조사극이면서 동시에 민중사극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등장인물의 아주 많은 수가 반촌을 중심으로 활동할 것을 알 수 있다. 2회를 통해서 보여주었듯이 뿌리깊은나무는 이 반촌이라는 곳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으로 보인다.

2회를 통해 엿본 반촌풍경은 그 흥미로운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한양이면서도 말씨는 개성말을 쓰고 있다. 또한 조선에서는 보기 힘든 자결풍습도 보였으며 사사로이 사형을 집행한다. 그것은 곧 반촌이 비밀결사조직같은 강한 규율에 의해 통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촌의 밤은 무섭고 엄격하지만 반면 낮의 반촌은 선소리(선창)에 맞춰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는 화목한 마을이다. 낮과 밤이 다른 반촌의 풍경이 흥미롭다.

역사는 왕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자세히 알기에 정사의 자료는 부족할 뿐 아니라 편향된 시각이 존재한다. 그래서 고려로부터 이어온 반촌에 대해서 속속들이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왕조 이외의 기록에 인색한 조선왕조실록에까지 실린 것을 보면 반촌이 아주 특별한 곳이었던 것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반촌은 그 역사가 고려말 문성공 안유가 자기 노비를 내어 학교 부흥을 꾀한 데서 기원한다. 왕조가 바뀌어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반수를 주변으로 옮겨 거주하게 되어 이들이 사는 곳을 반촌이라 부르게 됐다. 기본적으로 성균관을 위해 존재했던 반촌 특성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이곳이 치외법권이었다는 점이다. 범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반촌에 숨어들면 추적이 불가능했다. 드라마에서 무휼(조진웅)이 어린 채윤을 반촌으로 데려간 것도 그런 배경을 이해해야 흥미를 더할 수 있다.

그런 성역의 존재는 반촌을 좀 더 은밀하거나 불온한 것을 가능케 한다. 기록에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 사건은 정약용의 천주교 교습사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드러난 것에 불과할 뿐, 반촌의 은밀한 풍경에 가려진 더 많고 더 어마어마한 반시대의 사건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분상으로는 분명 천민이지만 천민 이상의 세상을 살았던 것이 반촌의 반민들이었다. 그러기에 조선말기 한국 최초의 양의사가 박서양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근거를 통해 뿌리깊은나무에서 채윤을 비롯한 빼어난 인물들이 이 반촌에서 배출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한양에 거주하면서도 독특한 자신들만의 말씨를 사용하던 천민성역의 인물들은 뿌리깊은나무가 처음으로 집중조명하게 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적어도 사실에 준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사실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는 천민들의 기록에 대단히 인색했다. 그 부족한 사실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야사와 다른 정황들을 참고한 상상 그것뿐이다. 드라마의 특권이자 요구되는 것이 바로 상상이며 허구의 구성이다. 몇 가지 특징만으로도 흥미로운 이 특별한 마을 반촌에 대해서 김영현 작가가 어떤 상상력으로 시청자를 매혹할지 궁금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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