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불완전한 5G 서비스로 인해 관련 민원이 급증하는 가운데 현 제도상으로 실질적인 통신분쟁 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이뤄진다. 현행 조정 제도는 조정안 수용을 이동통신사에 강제할 수 없어 이용자 피해구제가 요원하다는 지적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15일 서울 용산구 한국소비자연맹 열린 '5G 서비스 소비자 피해실태 및 이용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한범석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분과장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자율분쟁조정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통신분쟁조정 역시 이통3사의 조정안 수락 거부로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통신분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용자 편익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로 설립된 통신분쟁조정센터의 결과조차 이통3사의 호의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인 것은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참여연대는 2019년 12월,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5G 불통' 피해를 호소하는 이용자 18명과 함께 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참여연대측은 '5G 불통' 증빙자료를 제출하며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이통3사측은 이용자들이 불편에 동의하고 5G 서비스에 가입했고, 지국 설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보상을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회는 조정 신청자 18명 전원에게 5~45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통3사는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았고 실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신청 건은 종결됐다.

반면 이통사들이 조정안을 수용하는 방식이 아닌 비공개적 피해보상을 실시한 사례들이 있다. 한 분과장은 "이통3사는 이 같은 공식적인 절차를 따르는 보상은 진행하지 않으면서 일부 이용자에게는 '고객 케어'라는 이름하에 비공개적으로 피해보상을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며 "지난 1월 방통위에서 진행하는 통신분쟁조정을 신청한 신청자에게 사전 합의기간에 이용기간동안 납부한 요금 전액인 32만 원을 보상해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5월에는 가입 시 커버리지 안내를 하지 않은 이용자에게 정신적 피해보상금을 포함해 130만 원의 큰 금액을 보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더불어민주당 정필모 의원실로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원처리 현황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과기정통부에서 2019년 6월부터 10월까지 처리한 민원 중 현금이나 요금할인 등의 방법을 통해 5G 불편을 보상한 사례는 총 11건이나 있었다. 한 분과장은 "5G 커버리지 안내 안 한 사례, 개통철회 지연처리 사례, 5G 통신품질 불만 사례, 5G 가입으로 사라진 혜택에 대한 불만 사례 등 5G 가입자의 대부분이 호소하는 불편사항들에 대해 평균 25만 원, 최대 44만 원의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졌다"며 "과기정통부 민원이나 방통위 분쟁조정을 신청한 매우 극소수의 5G 가입자들만이 소액의 보상금을 받고 있고, 여전히 5G 불통현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다수의 이용자들은 여전히 불편을 감내하며 5G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분쟁조정제도를 운영하는 방통위 역시 '조정'의 한계를 인정했다. 김재철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현재의 통신분쟁조정제도에서 정부가 조정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5G 분쟁과 관련한 조정안을 내어도 일방이 불수락한 경우 조정이 종결되는 조정제도의 한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이 밝힌 방통위 통신분쟁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9년 6월부터 올해 12월 8일까지 조정신청접수 건은 691건, 통신분쟁 상담 건은 1만 7035건으로 총 신청현황은 1만 7726건이다. 통신분쟁으로 접수된 691건 중 5G 품질관련 분쟁조정 신청은 139건으로 20.1%를 차지한다. 이 중 조정안 합의·수용이 이뤄진 건은 13% 정도에 불과하다. 주요 5G 분쟁신청 유형은 ▲손해배상(52건) ▲손해배상 및 위약금없이 해지(39건) ▲손해배상 및 위약금 없이 LTE요금제로의 전환(14건) ▲손해배상 및 품질개선(1건) ▲위약금 없이 LTE요금제로의 전환(4건) ▲위약금 없이 해지(27건) ▲품질개선(2건) 등이다.

김 국장은 "결국 정부가 당사자를 불러 중재를 하고,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입법 밖에는 없다. 입법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지난 3일 이통사가 5G 등 불안전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해 이용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국장은 "다만 통신분쟁조정센터를 구축했고, 온라인 접수와 실시간 분쟁조정 현황이 나타날 수 있도록 구축 중"이라며 "내년이면 좀 더 쉽게 분쟁조정을 신청하고 결과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한범석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통신분과장, 변웅재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장, 김재철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정책국장, 김재섭 한겨레 선임기자. (한국소비자연맹 유튜브 화면 갈무리)

변웅재 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원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비자의 집단적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적인 제도는 소비자기본법상의 집단적 분쟁조정 절차인데 이것은 당사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조정'일 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변 위원장은 대안으로 소비자 집단소송 제도와 기업의 우선적 피해보상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변 위원장은 "소비자 집단소송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집단 분쟁조정은 활성화되기 어렵다"며 "사업자 입장에서 볼 때 소비자 집단소송 제도가 있으면 집단소송에 대한 절차적 부담과 강제적인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조정을 할 유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변 위원장은 "지금처럼 소비자에게 우선 요금을 부과하여 징수하고 사후적으로 문제되면 법률적, 기술적인 논리로 최대한 막으며, 설령 보상하더라도 가급적 늦게 최소한의 금액만을 보상하는 사업자의 전략을 계속적으로 허용할지 여부도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며 "소비자의 신뢰를 보호하고 혁신에 대한 소비자의 참여에 대한 보상의 의미에서 소비자의 주장이 합리적으로 인정되면 우선적인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대해 기업이 업무상 배임죄 등 법률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재섭 한겨레 선임기자는 "손해배상 상황을 보면 이통사가 정부가 조정한 건 보상을 하고 시민단체가 분쟁조정을 한 건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를 볼 때, 그 차이는 하나"라며 "정부가 한 조정의 결과는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선임기자는 "방통위 통신분쟁조정위원회 조정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손해배상 사실이 공유되지 않아 다른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을 해준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며 "몰래 뒤로는 손해배상을 해주는 이통사들은 소비자분쟁조정위가 공개적으로 손해배상을 결정하자 이를 거부했다. 공개가 되면 집단소송 효과가 나타나 다른 피해자들도 똑같이 신청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거부하는 게 아닐까"라고 의심했다. 방통위는 통신분쟁조정위 조정결과 공개를 검토 중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