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있었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외칠 때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경기를 지켜본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우리 K리그 경기인데 맨유나 첼시 경기. 월드컵 못지않은 분위기다."라며 흐뭇한 감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K리그 모든 경기가 이런 분위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K리그 최고 슈퍼매치,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경기가 개천절인 3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빅버드)에서 열렸습니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이 찾았고, K리그 경기를 치른 월드컵 경기장 최초로 만석인 44,537명의 관중이 입장해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습니다. 자리가 없어 계단, 복도에 앉거나 서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날은 정말 A매치가, 그리고 유럽 축구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 꽉 들어찬 수원 빅버드 (사진:김지한)
만석을 이룰 것이라는 예상은 경기 전부터 감지됐습니다. 경기 시작 2-3시간 전부터 수십 분을 기다려, 몇십 미터를 줄서서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양 팀 서포터들은 미리 경기장에서 다양한 응원 퍼포먼스를 펼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빅버드의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지난 1월, 영국 런던 아스널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갔을 때 이상의 열기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흐뭇하고 뿌듯했습니다.

경기장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고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는 그 분위기가 정점에 달했습니다. 수원 삼성 서포터 그랑블루는 K리그를 사랑한다는 뜻의 카드섹션을 펼쳐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에서 붉은악마가 선보인 'CU@K리그'에 이어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는데요. 양 팀 서포터들은 서로를 마주하고, 그라운드에 들어선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목청껏 소리치며 응원을 펼쳤고, 가지각색의 깃발, 통천 등을 흔들며 흥분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 수원, 서울 양 팀 서포터들의 응원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사진:김지한)
슈퍼 더비 매치답게 양 팀의 신경전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거친 몸싸움을 펼쳤고, 민감한 판정이 나올 때 선수들이 주심에게 다가가 강하게 어필하는 장면도 몇 차례 나왔습니다. 비교적 신중한 경기를 치른 전반전과 다르게 후반전에는 승부를 내기 위한 양 팀의 공세가 적극적으로 이뤄져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후반 21분, 서울 몰리나가 골대를 맞췄을 때 수원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서울 팬들은 아쉬운 탄식을 내기도 했습니다.

서울, 수원 선수들이 펼치는 플레이마다 관중들의 환호와 탄식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이기기 위한 장외 대결도 참 대단했습니다. S석 일부를 차지한 서울 서포터 수호신이 '서울!'을 외치면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와 대다수 홈 관중들은 '수원!'을 외치며 서울 서포터의 함성을 덮으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경기 내내 쉬지 않고 서서 경기를 지켜본 서포터들의 열정은 선수들에 기를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 골을 터트린 뒤 환호하는 수원 스테보. 윗옷을 벗어 경고 카드를 받았지만 흐뭇한 미소를 보였고 경기를 지켜보는 아내가 있는 쪽을 향해 하트 세레머니를 펼쳐보였다. (사진:김지한)
그리고 마침내 기다렸던 골이 터졌습니다. 후반 35분, 프리킥 상황에서 패널티 박스 안에 있던 박현범이 헤딩 패스한 공을 스테보가 정확하게 헤딩해 골로 연결시킨 것입니다. 극적인 골에 4만여 홈팬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하며 열광했고 분위기는 이날 경기 가운데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반면 서울 서포터들은 망연자실했고, 일부 팬들은 '힘을 내라 서울!'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서울 서포터 쪽을 제외한 모든 관중들은 승리를 확신하는 듯 파도타기 응원을 펼치며 스스로 경기장 분위기를 더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동점골을 넣기 위한 서울의 공세가 이어지기는 했지만 이를 잘 막아낸 수원 수비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수원은 지키는 축구, 그리고 중동팀들이 잘 하는 소위 '침대 축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습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쳤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경기장을 찾은 홈팬들에게 더 많은 골을 넣으려 힘썼습니다. 양 팀의 치열했던 막판 공세가 끝나고 결국 경기는 1-0 수원의 승리로 마무리됐습니다. 심판이 휘슬을 부는 순간, 수원 선수들은 환호한 반면 서울 선수들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사력을 다해 뛴 경기였던 만큼 양 팀 선수 모두 그라운드에 주저앉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서울 선수들이 심판 판정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항의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최용수 서울 감독대행은 선수들을 보고 오히려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쉬움은 남았어도 서울 선수들은 끝까지 자신을 응원한 수호신 팬들을 향해 인사를 했고, 수호신은 머플러를 높이 들고 응원을 펼쳐 훈훈한 장면을 보였습니다. 물론 경기를 이긴 수원 선수들 역시 경기장 곳곳을 돌며 승리의 '만세 삼창'을 부르고 자축했습니다.

그렇게 K리그 슈퍼 더비 매치는 끝났습니다. 승부는 엇갈렸지만 양 팀 선수, 코칭스태프, 그리고 팬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마지막까지 유럽 더비 매치 이상의 수준 높은 클래스를 보여줬고, 많은 것을 느끼며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개막전에서 만나 구름 관중을 몰고 오며 '제2의 르네상스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는 신호탄이 되기도 했지만 승부 조작 파문으로 그동안 꿈꿨던 꿈이 물거품이 될 뻔 했던 K리그는 올해 두 번째 슈퍼 더비 매치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으며 다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승강제 도입이라는 대변혁기를 앞둔 시점에서 앞으로 이 같은 분위기가 K리그 경기장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인 흥행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 모두 가슴 뭉클하게 하고 새 희망을 갖게 했던 슈퍼 매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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