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는 라디오스타에서 홀연히 4차원 세계를 가진 웃기는 아저씨로 등장해서 남자의 자격 웃음의 핵심인 허약체질의 국민 할매로 예능계에 안착했습니다. 위대한 탄생은 그를 자신들의 제자들로 4강 3자리로 이끈 국민 멘토이자 위대한 스승으로까지 만들어 주었고, 이젠 어르신들 앞에서 지휘봉까지 잡게 만들어주었죠. 겨우 2년 정도의 시간동안 김태원은 현재 대한민국 예능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인생 역전의 과정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모든 알콜 중독자들에겐 희망의 상징이었고, 갱생을 넘어 그야말로 완벽히 부활한 눈부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희생하고 소비되고 재구축된 이미지와 에너지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자의 자격이 진행하고 있는 청춘 합창단의 꼭지는 김태원이 위대한 탄생에서 보여주었던 멘토로서의 이미지와 역량에 너무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탄생의 시즌 2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힘 역시도 그가 시즌 1에서 보여주었던 모범 답안 덕분이었죠. 그 와중에 김태원이란 사람에게 덧붙여진 수많은 의미와 기대는 단순한 한 개인이 아니라 어떤 무게, 부담으로 돌아오기 마련이었죠. 처음 국민 할매를 통해 느꼈던 친근함, 즐거움, 유쾌함은 지금의 거대해진 김태원에게는 조금 어색한 색깔이 되어 버렸거든요.

어쩌면 이런 사람들의 기대와 감탄은 한국 락을 힘겹게 붙잡으며 버텨온 대가로서의 존중, 많은 이들의 추억과 함께 간직되고 있는 빛나는 곡들을 만든 천재를 향한 감탄, 젊은 날의 실수와 좌절을 극복한 사람에게 마땅히 표해야할 존경일지도 모릅니다. 김태원이란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하고 놀라워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스승이 없는 시대. 의지하고 따를 만한 어른을 찾기 힘든 시대에 그의 경험과 현명함이 빛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김태원의 진짜 가치는 그런 자못 엄숙한, 혹은 과중한 선생이나 멘토로서의 껍데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리고 그룹 부활이 누군가를 이끌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버티고 있는 것으로도 충분한 통로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를 통해 전달되는 잊혀진 시절, 외면 받던 장르를 연결시켜주는 너무나 소중한 증거이자 전도자입니다. 이번 주 기타리스트 특집이라는, 김태원의 등장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러와 특집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거든요.

티아라 소연이 엄마가 팬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저 80년대의 추억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던 시나위와 백두산을 다시 언급될 수 있도록 이끌고, 임재범과 신해철이 고개 숙이며 형님이라고 부르던 한국 락의 뿌리들이 나와 당시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것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추억에 잠기며 그땐 그랬지로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음악의 한 갈래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죠. 너무나 쉽게 잊고 외면하고 지워버리는 이 나라에서 신대철, 김태원, 김도균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아서 말을 나누고, 같이 연주를 하는 것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아요.

그래서일까요? 이날 놀러와에서 김태원의 모습은 스승이나 멘토라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간판에 눌려 요즘은 쉽게 볼 수 없었던, 그만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한껏 드러나더군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여서 일부 팬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 예능판에 뛰어들었던, 국민 할매라는 자못 망가지는 역할도 기꺼이 감수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더라구요. 멘토도, 스승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기타리스트이자 락커로서 연주하고 이야기하는 그가 너무나도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약간의 허풍과 과장, 넉살과 포장 속에 담긴 동료 혹은 라이벌과 공유하는 따스한 감정이 그 당시의 슬픔과 어려움이,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자부심이 그대로 전달되는 시간이었거든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이라는 어리석고 부정적인 손가락질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일방적이고 편협한 탓하기처럼 바보 같은 짓이 없음을 우린 이제야 깨닫고 반성하고 있죠. 하지만 이번 주 놀러와만큼은 이런 말을 살짝 비튼 감상평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이게 모두 김태원 덕분이다. 그렇게 망가지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묵묵하게 걸어왔던, 그렇게 만든 양분으로 그 위대했던 락의 시대를 복원시켜준, 이게 모두 김태원 덕분이라고 말이죠. 모두가 지난 일이라고, 기억조차 하지 않던 그 시간을 우리에게 되돌려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기적을 만들어준 사람. 그는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우리에게 고마운 사람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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