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 갈등으로 지상파 방송3사가 케이블TV에 주문형비디오(VOD) 공급 중단을 예고한 가운데, 콘텐츠 사업자와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 간 '선공급 후계약'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유료방송 사업자에 비해 협상력이 낮은 중소 콘텐츠 사업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일면 있을 수 있지만 지상파, 종편, CJ ENM 등의 협상력을 강화해 오히려 중소PP(Program Provider)의 이익 저해와 시청자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12년 1월, 지상파가 케이블에 재송신 대가를 요구하자, 케이블측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며 지상파를 끊는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이 같은 내용의 방송법·IPTV법(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 의원은 법안 제안이유에서 "최근 유료방송 시장이 위축되고, 사업자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시장 내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콘텐츠 대가를 두고 갈등이 매년 심화되고 있다"며 "이에 더해 플랫폼 사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선공급 후계약'의 불공정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 의원은 "콘텐츠 사업자는 프로그램 사용료에 대한 수입 규모를 예측할 수 없어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에 대한 제작과 투자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워 유료방송시장의 생태계 발전이 저해되고, 글로벌 시장 경쟁력 약화가 초래되고 있다"면서 "법에서 정하는 금지행위 유형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프로그램 공급계약의 체결을 직전년도 계약 만료일 이전에 완료하지 않는 행위(선공급 후계약)를 추가해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마련하고 유료방송 산업 내 공정경쟁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정 의원 법안이 통과되면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낮은 중소 콘텐츠사업자의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인지역 지상파 OBS의 경우 우여곡절 끝에 IPTV와의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을 타결했고, 현재 케이블TV와의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정 의원 법안에 따르면 '선계약 후공급'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케이블TV 사업자는 계약없이 OBS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최근 대형 콘텐츠 사업자들의 프로그램 사용료 협상 과정을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KBS·MBC·SBS 등 지상파방송사는 케이블TV에 VOD 공급 중단을 통보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사는 LG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에 VOD 프로그램 사용료 5% 인상을 요구하고, 이 같은 협상안에 케이블TV가 참여하지 않을 경우 VOD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 9월 CJ ENM은 딜라이브를 상대로 프로그램 사용료 20% 인상을 요구하며 불발시 '블랙아웃'(송출중단)을 예고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사 간 분쟁 조정에 이례적으로 개입, 적정 수준의 인상률을 정해 권고하는 방식이 아닌 '다수결'을 통해 CJ ENM측 손을 들어줬다. 최종 인상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인상률이 10%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J ENM은 프로그램 사용료 대폭 인상과 블랙아웃 카드의 주요 근거로 지상파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들었다. 지상파는 협상력 우위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사용료 인상을 이뤄왔는데, 영향력이 그에 못지 않은 자신들은 수년 째 동결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형 콘텐츠 사업자들의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이 전체 PP업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실제 중소PP와 유료방송 플랫폼 간 협상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CJ ENM-딜라이브 협상 당시 한 중소PP관계자는 "저희가 플랫폼 담당자를 만나면 IPTV든 케이블이든 프로그램 사용료 지출 금액이 사실상 정해져 있다. 요새는 프로그램 사용료가 인하 안 되면 다행"이라며 "플랫폼 담당자는 대형 PP와 계약하느라 전체 금액이 줄게 되었다고 한다. 저희는 (협상)종이가 서명하라고 와 있다. 그렇게 정해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플랫폼 사업자가 CJ ENM, 지상파, 종편·보도전문채널 등 영향력이 큰 방송사와 협상할 때 중소PP는 인상 요구를 낮추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된다. 플랫폼 사업자는 정해진 프로그램 사용료 예산을 강조하며 중소PP 지원을 내세우고, 중소PP와의 협상에서는 대형 방송사의 인상안 수용으로 지원이 미미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 의원 법안에 대해 "중소사업자 보호 효과보다는 대형PP, 종편, 지상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억약부강한 콘텐츠 정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중소 사업자는 채널 수가 많은 대신 각각의 시청률이 높지 않다. 각사가 차지하는 프로그램 사용료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계약체결에 큰 이슈가 없다"면서 "그러나 대형사업자들은 프로그램 사용료 비중이 높고, 채널별 계약이 아닌 통으로 묶어 계약을 요구해 협상금액이 큰 것이 현실이다. 이 법안은 오히려 대형사업자의 요구가 관철되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중소사업자의 몫을 축소되는 부작용이 시장에서 발생하게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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