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3월, 십오 년 동안 가족으로 함께 살았던 반려견이 죽었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우리 똥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좋은 날이었다. 햇볕이 좋았다. 걷는 걸음걸음마다 따뜻한 햇볕이 따라와 내려앉았다. 겁이 많은 녀석이었는데 햇볕이 따뜻하게 빛나는 날 떠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을 앓았다. 집안에서 소리와 웃음이 사라졌다. 각자 방에 들어가 침묵 속에 묵묵히 슬픔을 견뎠다. 뭐 그렇게까지, 사람도 아니고 개인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한 집에서 살을 비비며 십팔 년, 십오 년을 함께 살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별은 가슴 아픈 것이다. 물건을 오래 써도 버릴 때 추억을 기억하고 뭉클한데 생명을 가진 동물-식물-이라면 더 할 것이다.

7월에 유기견을 입양했다. 건강한 반려견을 데리고 오고 싶어 건강 이력을 알 수 있는 가정견을 알아보았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다. 결국 유기견을 입양하게 되었다. 가정견도 마찬가지지만 유기견도 경쟁률이 치열했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차례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열 번을 넘게 떨어지고 나서 유기견 보호 지정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유기견은 십 일 동안 보호를 하고 있다 주인을 찾지 못하면 입양 가게 되거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시켰다.

요즘 버려지는 개가 많다고 한다. 반려견을 가족으로 키우려면 시간과 노력, 애정과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반려견을 입양할 때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엄마로 평생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할 수 있을지 고심해서 결심이 섰을 때 데리고 와야 한다. 강아지 때 이쁘고 귀여운 것은 잠깐이다. 강아지에서 개로 성장하는 기간은 아주 짧고 그 사이, 그 이후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가끔 병원에 가야하고, 예방주사도 맞아야 한다. 예쁘다고 덥석 안고 오기에는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나는 또 덥석 녀석을 안고 왔다. 비숑이라고 했는데 푸들과 섞인 것 같은 독특한 아이였다.

열 살이 된 순순(좌)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던 순순, 베란다에 혼자 앉아 있던 모습(우)

생각해 보니 첫째도, 둘째도 얼떨결에 데리고 오게 되어 십오 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 첫째는 가족을 놓치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뛰어다니던 녀석이었다. 친구가 보호할 생각으로 다가갔는데 멀리 떨어져 있던 내가 선택되었다. 녀석은 우리 집에서 순순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전혀 순순하지 않아 순해지라고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이름과 반대로 동네에서 유명한, 한 성격하는 녀석으로 살게 되었다.

첫째 순순이를 잠깐 말하자면 천재견이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생각해서 일을 만들고, 창의적으로 사고를 쳤다. 유독 어머니를 좋아했는데 외출하고 늦게 들어오면 어머니 물건만 찾아 거실에 전시해 놓거나 바구니에 넣어 놓았던 염주를 꺼내 꼭꼭 씹어 다시 넣어 놓는 일을 했다. 이런 일은 순순이에겐 누워서 떡 먹기였다. 언젠가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순순이는 십팔 년을 우리와 함께 살았다.

지지가 잔뜩 묻고 좋다고 웃는 별(좌), 순순이 옷을 물려입은 별(우)

둘째는 누군가 키우지 못하겠다며 병원에 놓고 간 아이였다. 눈에 밟혀 고심 끝에 데리고 왔는데 아픈 곳 없다던 녀석이 검사 결과 알레르기도 있었고, 심장이 좋지 않았다. 조심조심 키웠다. 다행스럽게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녀석이라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요 녀석이 십오 년을 우리와 함께하고 3월에 떠난 별이다.

7월에 다시 녀석이 왔다. 너무 마른 녀석이었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안겼다. 품에 안아 보니 앙상한 뼈가 고스란히 만져질 정도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말라 있었다.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잠깐 내려놓으려고 하니 녀석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달렸다. 안쓰럽고, 뭉클하고, 복잡했다. 칩을 심고, 등록에 대한 안내를 듣는 동안 녀석은 최대한 조그맣게 몸을 말고 품에 파고들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잘 살아보자, 라고 말하며 괜찮아, 괜찮아. 여러 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병원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코를 킁킁거리고, 켁켁 가래가 걸려 기침을 했다. 아픈 곳이 없다고 했는데 코에서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보호하고 있던 병원에 전화하니 기침을 하거나 콧물을 흘린 적이 없다고 했다. 콧물과 기침 상태를 보아서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보호하고 있던 병원에서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다니던 동물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았다. 폐가 좋지 않았다. 나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암일 수도 있다며 2차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기를 권했다. 약을 받아 병원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담담했다. 몸을 축구공처럼 말고 나에게 안겨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오래 살 수 없다고 하여도 사는 동안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신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가족이 된 여름(좌) 밥이 싫어요, 여름(우)

두 살밖에 안 된 녀석인데 벌써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니 마음이 아팠다. 첫째와 둘째가 다니던 2차 병원에 예약하고 가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2차 병원에서 완치될 수는 없지만 조금 나아질 수는 있다고 했다. 먹는 것 잘 먹이고, 약도 잘 먹이고, 주기적으로 검사받으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녀석은 집에 돌아온 후 내내 잠도 자지 않고 눈치만 보았다.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녀석은 입이 짧아 가리는 것도 많고, 잘 먹지 않았다. 먹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밤에 전혀 잠을 자지 않았다. 녀석이 자지 않으니 나도 잘 수 없었다. 도대체 녀석은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의문과 궁금증을 안고 이름을 의도적으로 불렀다.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여름아, 여름아, 우리 여름아, 사랑하는 여름아. 괜찮아, 잘한다를 반복하고 배변 훈련부터 천천히 시켰다.

지금 우리 여름이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이제 좀 두 살 같고, 이제 비숑 같다. 여전히 입은 짧지만 잘 먹고, 산책하고, 사고 치며 신나, 신나, 정말 신나 하며 살고 있다. 비숑답게 비숑 타임이라는 대환장 시간까지 빠짐없이 챙기고 있다. 덕분에 걷기 싫어하는 내가 아침마다 걷고 있다. 또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우리 여름이 약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겨울이다. 다시 거리에 버려지는 개가 많아질 것이다.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반려견을 거리에 유기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날이 춥다. 거리에서 지내기 쉽지 않은 날씨다.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