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킹' 이동국은 늘 '황새' 황선홍에 비견돼 왔습니다.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고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데다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걸어온 길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역 선수 시절 4번의 월드컵을 거치면서 '3전 4기'만인 2002년 월드컵에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황선홍과 다르게 프로 데뷔 후 4번의 월드컵을 거쳤던 이동국의 '마지막 월드컵'은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직전 당한 부상으로 이렇다 할 주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16강 우루과이전에서 교체 출전하기는 했지만 후반 42분에 날린 회심의 슈팅이 골라인을 통과하지 못하며 다잡은 동점 기회를 허공에 날려보내야만 했습니다. 31살의 나이에 마지막 월드컵으로 여기며 의욕적으로 나선 라이언킹의 월드컵 도전은 아쉽게 끝났고, 이후 잠시 그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이동국 ⓒ연합뉴스
그러나 1년 뒤 이동국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득점 뿐만 아니라 도움에서도 무려 14도움을 기록하며 한 시즌 개인 최다 도움 기록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축구에 완전히 눈을 뜬 이동국에게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렇게 '라이언킹' 이동국은 1년 4개월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2002년, 2006년 2번의 아픔, 그리고 2010년 1번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실상 진짜 '마지막 월드컵'을 향한 그의 도전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된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 부임 뒤 이동국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취임 초기부터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에 대해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는 선수"라고 딱 잘라 말했고, 이동국 역시 남아공월드컵을 마지막 월드컵으로 생각하며 더이상 미련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동국의 자리는 남아공월드컵에서 함께 한 박주영을 비롯해 지동원, 손흥민, 이근호 등 20대 초중반 젊은 선수들이 꿰찼습니다. 이동국에게 대표팀 재발탁 기회는 거의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물오른 기량, 특히 달라진 스타일을 조광래 감독은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골만 넣을 줄 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플레이,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눈을 뜨면서 작년보다 더 나아진 경기력을 선보인 것입니다. 그 덕에 정규리그에서만 현재까지 14골-14도움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도 높은 공격력을 펼치는 능력, 여기에 파트너 선수와 유기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공-수 양면에 걸쳐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면 등에서 이동국은 K리그 최고 선수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한 달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축구스타K'상도 3차례나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활약 덕에 전북 현대가 몇 달간 1위를 차지하고,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른 것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은 젊은 선수를 꾸준하게 기용하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미동도 안 했던 조광래 감독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은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한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에서 이동국이 머리로 먼저 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왼발, 오른발로도 골을 넣으며 1경기 4골을 집어넣고 6-1 대승에 큰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동국은 마치 무력시위를 하듯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이런 상황에서도 대표팀에 안 뽑는 게 이상하다'며 대표팀 발탁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이동국과 만난 오사카 김보경이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자 공격 자원 1명이 필요했던 조광래 감독은 고민 끝에 이동국의 대표팀 재발탁을 결정했습니다. 추가 발탁이기는 해도 어쨌든 이동국에게 새 기회가 극적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더이상 미련에 두지 않겠다던 그도 어쨌든 다시 얻은 기회를 놓지 않으려 했고, 마음 잡고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편견을 벗고 이동국은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끊임없는 변화형 플레이어로서 그 자세를 제대로 보여 왔습니다. '게으른 천재 스트라이커'라는 오명은 이미 벗어던진지 오래고 20대 때 못했던 것을 한풀이하기라도 하듯 시간이 갈수록 더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개인 기량 뿐 아니라 팀에 기여하는 정도가 더욱 대단한 이동국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참 잘 못 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금 늦기는 했어도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은 이동국에게나 대표팀 모두 잘 된 일이라 생각됩니다.

세대 교체만 꾀하다 신-구 조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조광래호 분위기 변화에도 이동국의 발탁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에 자극받아 박주영, 지동원 등 후배 공격수들의 경쟁심도 더욱 자극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이것이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지도 지켜볼 일입니다. 단기간이기는 해도 '이동국 효과'가 조광래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기대됩니다.

7일 폴란드전, 11일 아랍에미리트전에서 이동국에게 얼마만큼 기회가 주어질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새로운 기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월드컵 무대에 도전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K리그에서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 대표팀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지금까지 자신을 향해 있던 온갖 부정적인 시선들을 다시 털어낼 수 있고, 마침내 마지막에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월드컵 본선까지 2년 8개월. 34살의 나이에 브라질에서 한 골을 터트리고 포효하는 라이언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지, 먼저 그 소중한 첫걸음을 잘 내딛는 그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