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 연예인이 드라마 촬영 중 다쳤다는 소식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때론 ‘부상투혼’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하지만 연예인을 촬영하는 스태프 부상은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알려지지 않는다.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산재보험도 받을 수 없다.

# 한 방송작가는 100장이 넘는 원고를 써 염좌 진단을 받았다. 산재보험 가입을 신청했으나, 공단은 방송작가에게 업무상 질병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했다. 단순히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방송작가 업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방송작가는 원고·프리뷰 등 200쪽이 넘는 인쇄물과 CT 영상과 의사 소견서를 보냈지만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드라마 스태프·방송작가 등 방송계 프리랜서 산업재해 사례다. 이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산업재해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제작사는 노동자가 촬영 중 다치면 치료 지원 대신 인력 교체를 진행한다. 8일 문화예술노동연대 주최로 열린 ‘또 다른 김용균, 문화예술노동자 산재 실태 현장 발표’에서 “예술 노동자에게 실효적인 산재보험 제도가 필요하며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방송사·제작사를 대상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드라마 촬영 현장.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김기영 희망연대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방송사·제작사는 스태프를 쓰다가 버리는 부품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태프가 촬영 중 다치면 방송사·제작사는 인력 교체부터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지부장은 “방송스태프지부가 올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에 대해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경우는 교양·예능 12.6%, 드라마 26.4%에 불과하다”며 “방송계 진짜 사장인 방송사는 여느 회사와 같이 프리랜서 재해 책임을 피하려고 온갖 꼼수를 부린다. 다친 스태프는 스스로 후유증을 평생 안고 가야 하며 보상을 요구할 경우 방송계를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송 스태프의 열악한 처우는 제작비 문제와 직결된다. 낮은 제작비용을 원하는 방송사·제작사에게 사고처리비용·안전장치 마련은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기영 지부장은 “방송사·제작사는 낮은 단가로 높은 퀄리티의 방송을 뽑기 위해 사람들을 쥐어짠다”며 “제작비가 부족해 일하는 날은 줄어들고, 노동강도는 강해진다. 6~7명이 해야 할 일을 3~4명이 하니 사고가 나고 방송사·제작사는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사·제작사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법적 규제를 통해 스태프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영 지부장은 “드라마 회당 몇 억씩 받아 가는 톱스타들이나 유명작가들에게는 아무 말 못 하면서 스태프 인건비만 줄이려고 하는 방송사에게 ‘더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방송사가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강제해야한다”고 밝혔다.

방송작가는 직업 특성상 실내 노동이 주를 이뤄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은 적지만 장시간·불규칙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을 지키는 작가는 8.7%에 불과했다. 가장 바쁠 때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75.2시간에 달했다.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부지부장은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하는 작가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자주 발생한다”며 “생리불순, 자궁질환, 유방질환 등 호르몬 불균형에 시달리는 작가도 많다. 일과 쉼이 모호하다는 특성상 불안장애 같은 심리 장애를 호소하는 작가도 다수”라고 밝혔다.

작가의 산재보험 미가입 비율은 98.5%에 달한다. 사실상 대부분 작가가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이다. 김한별 부지부장은 “부상이나 질병을 겪은 적 있는 방송작가 중 자비로 치료했다는 응답은 88.8%에 달했다”고 말했다. 김 부지부장은 “현재 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지만 임의가입 방식이며 보험료를 노동자가 내야 한다”며 “서면계약서가 없는 작가는 가입이 힘들다. 실효적인 산재보험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사무직인 출판계 노동자도 산업재해 위험에 처해있다. 김원중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사무국장은 “김철홍 인천대 교수는 ‘컴퓨터를 쓰는 사무직은 가장 무서운 작업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며 “여성질환·소화기질환에 걸리면 산재 처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의 고질적 관행인 ‘신간 밀어내기’는 산업재해를 양산한다. 출판사는 매출 상승을 위해 지속적으로 신간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출판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다. 출판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간 외 근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무리한 출간 일정’을 꼽은 경우가 44.5%에 달했다. 마감 일정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는 81.1%였다. 응답자 중 59.7%는 한 달 중 5~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일했다.

김원중 사무국장은 “파주 출판단지의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며 “5인 미만 회사 노동자와 여성에 대한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또한 출판계에 표준계약서가 없는데, 이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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