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화 <도가니>를 보았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사회를 통해 보았는데요. 영화를 보고난 뒤 이 영화가 천만 명 정도는 보아서 제발 이 아이들의 문제가 그대로 묻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영화가 흥행하고 있어서 마음 한켠 기쁘면서도 여러 착잡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화 <도가니>를 본 관객들은 두 번 놀랍니다. 교사들이 장애학생을 성폭행한 것에 놀라고 가해자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듯한 법조인들에게 또 한번 놀랍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있는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누리꾼들은 몇몇 법조인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공개적인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분들이 궁금해져 접촉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떤 부분에선 누리꾼의 비판이 합리적인 부분도 있었고 어떤 부분에선 좀 과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했던 내용들을 전해드릴테니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 영화 `도가니'가 장애인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29일 오후 광주 광산구 삼도동 광주 인화학교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끼면서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광주법원장이 성폭행범을 변호하다

먼저 박행용 변호사입니다. 박 변호사는 인화학교의 행정실장으로 일했던 김강준(63)씨를 변호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참여연대가 2008년 발표한 대표적인 ‘전관예우 변호사’입니다. 2006년 2월8일까지 광주지방법원장으로 있다가 퇴임한 뒤 1년 동안 광주지역에서만 최소 43건의 사건을 수임했던 인물입니다. 인화학교 사건도 이 때 맡았더군요. 법원장 출신이니까 아무래도 자신의 후배가 판사로 있는 판결을 맡으면 결과가 좋을 수 있겠지요.

▲ 박행용 변호사 ⓒ연합뉴스
박 변호사는 저와의 통화에서 누리꾼들이 자신을 지적해 비난하는 것을 두고 불쾌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2008년 참여연대 발표로) 전관예우 받은 변호사라고 비난받을 만큼 다 받았는데 왜 또 이제 와서 그러냐”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 인화학교 사건으로 전관예우 대접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논리가 합리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가 맡은 것은 행정실장 김씨에 대한 2006년 7월 2심 재판인데 이 재판에서 김씨는 1심 때와 마찬가지인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형을 줄이지 못한 거니까, 김 변호사가 법원장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김 변호사 입장에서는 조금 실망스런 결과입니다.

그러나 검찰과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이 결과는 마찬가지로 실망스럽습니다. 검찰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행정실장 김씨에게 징역 7년형을 구형하며 항고했었습니다. 파렴치한 성폭행범에게 징역 1년형은 너무 가볍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이혜광 부장판사)는 검찰의 항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형을 유지시킨 것이죠. 그런 면에서 재판부가 김 변호사의 체면을 감안해 판결을 내렸다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박 변호사는 인화학교 설립자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녔던 교회의 장로가 이 설립자였거든요. 이 설립자는 자신의 아들인 “행정실장 김씨가 아무리 성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징역 1년형은 너무 과하니까 도와달라”면서 사건을 의뢰해왔다더군요.

성폭행범에게 징역 1년 선고한 판사는 김앤장으로

다음은 이혜광 당시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입니다. 이 판사는 박행용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행정실장 김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1년형’을 유지시킨 판사입니다. 이 판사는 저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판사는 지금 법무법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가 되어있습니다. 2009년부터 일했더군요. 이것 때문에 지금 나쁜 판사, 나쁜 변호사로 의심 받고 있는데요. 그가 김앤장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가 비판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가 내린 판결. 즉, 행정실장 김씨에 대한 판결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비판받아야겠습니다.

판결문에 나온 행정실장 김씨의 죄는 이렇습니다.

“정신지체 장애인 여성이 혼자 걸어가는 것을 보고, 피해자의 입을 막고 행정실내로 끌고 가서는 양손으로 피해자의 상의를 올리고 가슴 등을 만져 피해자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강제추행”

▲ 이혜광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화면 캡처
그리고 이혜광 당시 판사가 “행정실장 김씨가 과도하게 처벌받아서는 안된다”며 내세운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4년전 위 절제술을 받아 그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양심에 따라 피해자를 위해 1000만원을 공탁하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피고인의 수감생활 중에 아버지가 사망한 점”

행정실장 김씨에게 징역 1년형이 적절한지는 여러분이 직접 판단해보십시오.

판사의 뒤늦은 사과 “피해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다음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이 이 아무개 판사입니다. 이 아무개 판사는 2008년 1월 28일 당시 인화학교 교장 김강석(2010년 사망)씨의 형을 중지시키고(1심에서는 징역 5년형 받고 형을 살고 있었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석방시킨 판사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비난이 이 판사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 판사와 통화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 판사에게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 판사는 이 교장에 대해 “나쁜 놈”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절대 용서받아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판사는 감정보다는 법리에 따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판사니까요.

성폭행 피해자가 김강석 교장과 재판 직전 합의를 해버렸습니다. 1심에서는 합의가 안된 상태니까 징역 5년형이라는 중형이 내려졌지만 합의가 이뤄지면서 국가의 형벌권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동 성폭행은 친고죄여서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해 버리면 국가가 강제로 처벌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판사는 어쩔 수 없이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아동 성폭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올해 초에 법률이 개정되어 이제 합의 유무에 상관없이 국가가 처벌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판사가 지금 다시 판결을 한다면 당연히 엄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다시 재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판사에게는 별의별 방식으로 항의가 쏟아지고 있나 봅니다. 신분 상의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누리꾼이 이분에 대해 그런 식의 항의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판사가 그런 판결을 한 것은 당시의 법이 그랬기 때문이지 영화에 나온 것처럼 전관예우에 따라 봐주기 판결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판사는 저와 수차례 통화를 나눴는데요. 내내 인화학교 피해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전하셨습니다. 판결 자체는 합리적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고요. 뭐랄까. 다른 판사들과 달리 매우 겸손하고 좋은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법률의 맹점 때문에 그런 판결을 했는데 온갖 비난은 다 받고 계시더군요. 좀 안타까운 느낌입니다.

참고로 이 판사는 2008년 오송회 간첩조작 사건 재심을 맡으며 국가로부터 피해를 받은 이들에게 재판장에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한 분입니다. 사형제 위헌 제청도 하신 분이십니다.

성폭행범 변호한 법조인이 선관위원장?

그 다음으로 교장 김씨를 변호했던 문정현 변호사와 용응규 변호사입니다. 이들은 현재 각각 법무법인 바른길과 법무법인 로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 모두 저와의 인터뷰를 거절해 딱히 뭘 전해드릴 건 없군요.

문정현 변호사는 법원장 출신은 아니고 그냥 광주지방법원 등에서 판사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같은 걸 하시더군요. 파렴치한 범죄인들을 위해 돈 받고 발로 뛰어다니는 분이 이런 직책을 맡는 게 적절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범죄인이 변호를 받을 권리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사법부도 반성이 필요하다

저는 인화학교 사건의 판결문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구체적인 부분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사법부 신뢰가 훼손된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전관예우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사실 검증이 필요한 부분은 맞습니다. 그래서 무턱 대고 사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조계 안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를 본 몇몇 판사들은 “사법연수원에서도 상영해야 할 정도로 좋은 영화”라고 했다고 합니다. 반면, 한 전직 판사는 공지영 작가에게 솔직한 조언을 했다고 하는데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되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하기 때문에 ‘벙어리’들 인권 지켜주자고 눈치 보이는 판결은 할 수 없다”고 했다고도 합니다.

전관예우에 따른 판결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과연 피해 장애학생들의 마음을 씻어줄 의지가 사법부에 있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무조건 영화가 사법부를 폄훼했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판결문에는 교사가 어린 학생의 항문에 어떤 걸 문지르는 것까지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영화에 묘사된 그대로입니다. 판결문의 내용 자체를 그대로 기사화 하려다가 제가 포기해버렸는데 그 정도로 우리 아이들이 겪은 고통은 끔찍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경험했던 끔찍한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되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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