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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거부할 수 없는 미래완료는 없다[고브릭의 실눈뜨기]
고브릭 | 승인 2020.12.04 09:23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힐빌리의 노래> 감상에 앞서 감독인 론 하워드에 주목하자. 론 하워드는 누구인가. <아폴로 13>, <프로스트&닉슨> 등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게임이론’을 창시한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뷰티풀 마인드>로 기어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 수상한 헐리웃을 대표하는 명감독이다. 그런 론 하워드가 초대형 베스트셀러 『힐빌리의 노래』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기대하지 않은 영화팬은 드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기대 속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힐빌리의 노래>는 로튼토마토 20점. 메타크리틱 40점으로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영화의 절대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기보다는 대성공한 원작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는 평을 내려야할 것 같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났을까. 휴먼 드라마에 강한 론 하워드의 특징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느낌이 강하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휴먼 드라마로의 접근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주인공 J.D 밴스(가브리엘 바쏘)는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젊은 사업가다. 해병대에 복무 시절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뒤 미국 최고의 사립명문대를 졸업하며 평탄하게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중산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애팔래치아 산맥 근처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순도 100% ‘힐빌리(가난한 백인노동자들을 비하하는 멸칭)’다. 

J.D의 친부는 일찌감치 양육권을 포기했고 엄마 베브(에이미 아담스)는 약물에 중독돼 제 한 몸 추스르기 어렵다. 부부싸움으로 때려 부수는 소리가 밤마다 마을을 채우고, 변변찮은 일자리마저 부족해서 복지스탬프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절반이다. 유별나 보이지만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에서는 흔한 가정환경. 가정폭력과 가족 해체, 소외와 가난 속에서 어떻게 J.D가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는지 담담하게 서술해나가는 게 원작의 내용이다.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힐빌리의 노래>

‘왜 성공했는가‘보다 중요한 ’어떻게 실패하지 않았나‘

<힐빌리의 노래>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주목을 받았다. JD라는 개천용의 성공담이 아니라 민주당의 텃밭이던 러스트벨트가 공화당으로 돌아선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교육에 대한 열망과 가이드라인도 없이 가난과 폭력만 되물림 되는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주제다. 한 인물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분석하는 것과 어떻게 아직까지 실패하지 않고 버텨냈는지 알아보는 데에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론 하워드는 이 부분을 착각한 듯 보인다.

론 하워드가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힐빌리’들과 전혀 다르다.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시는 소련의 스파이에 쫓기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지만 20대에 MIT 교수가 된 수학천재다. <프로스트vs닉슨>은 재기의 발판이 될 만한 확실하고 명망 있는 대결상대가 있었다. <아폴로 13>의 주인공들은 달의 궤도에서 우주선에 불이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지만 세계에 몇 없는 뛰어난 우주선 조종사과 NASA의 든든한 과학자들을 동료로 두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주인공 J.D는 어떤 상황일까. 원작에서는 잘난 거 하나 없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수차례 고백한다. 간호사 면허를 유지하기 위한 소변검사에서 마약성분이 발견될까봐 아들에게 소변을 요구하는 엄마가 J.D 인생 최대의 숙적이다. 술 취한 남편의 엉덩이를 태워버린 적도 있는 괴팍한 할모(=할머니를 뜻하는 힐빌리식 속어 Mamaw의 번역)가 방황하는 J.D의 버팀목이 되지만 함께할 날이 길지는 않다. 뛰어난 재능도, 경쟁하며 실력을 키울 상대도, 함께할 든든한 동료도 없다. 론 하워드는 스스로 손발을 묶고 영화 제작에 뛰어든 셈이다.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힐빌리의 노래>

물론 J.D가 해병대에 들어가 오래된 나쁜 버릇들을 하나하나 고치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예일대 로스쿨로 가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J.D는 본인이 다녔던 고등학교 선생님의 말을 빌려 가난한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엉망인 이유를 공공기관의 책임회피 탓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방황하는 아이들의 목자가 돼주길 바라지. 그런 애들 대부분이 늑대에게 길러진다는 현실을 툭 까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문제야.” J.D는 늑대가 아니라 공부의 중요성을 아는 할모의 손에서 고등학생 시기를 보냈다. 짧게 말해 운이 좋았다.

20점 안팎에 머물고 있는 처참한 로튼토마토 점수는 정치,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베스트셀러가 개인의 성공담으로 그치고 만 평론가들의 실망감이 반영된 수치인 듯하다. 그러나 관객의 평가인 팝콘지수는 80점을 웃돌고 있다. 실제로 영화가 시작되면 플래시백을 적극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유려한 연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원작에서는 나열식으로 소개됐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하나의 굵직하고 감동적인 사연으로 엮어낸 베테랑의 솜씨에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J.D의 불량한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J.D와 놀면 자동차로 밀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과격한 할모역의 글렌 클로즈.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병원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간호사 면허가 박탈되는 철없는 엄마역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 합쳐서 아카데미 연기부분 후보지명만 13회나 되는 두 명배우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지만 거칠고 투박한 애정표현 방식과 잘못된 선택으로 가족을 위기로 몰아내기도 하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몰입감을 더한다.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힐빌리의 노래>

우리의 결정은 매 순간 중요해

결론적으로 <힐빌리의 노래>는 추천할 만한 작품일까. 잠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탠다. 지병이 있어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약값이 있다. 3만원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에게 이 돈이 아깝다고 했더니 3만원으로 건강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는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 5년 넘게 약을 먹으면서도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IMF를 직격으로 맞아 육성회비나 급식비를 제때 납부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일까. 이제 성인이 됐고, 적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있지만 쓸데없는 소비와 가치 있는 투자의 구분은 어렵기만 하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공학계산기가 없어서 수학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식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할모 앞으로 지원되는 무상급식 도시락을 둘이 나눠먹던 장면이다. 공학계산기의 가격은 180달러. 할모에게 180달러가 없었다면, 있었더라도 계산기라는 미래에 투자하지 않고 빵을 샀다면. 6자리의 연봉을 받는다는 지금의 예일대 로스쿨 졸업생은 없었을지 모른다.

J.D는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변화시키고 싶은지 물을 때마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할모는 J.D에게 “그래. 나도 잘한 건 없지. 하지만 넌 이제 선택하렴. 성공할지, 그만둘지.”라는 유산을 남긴다. 어른들도 몇 차례 의지가 꺾이며 자포자기하며 희망의 끈을 놓아버릴 가능성이 큰데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원작이 제기했던 사회적 질문의 폭이 얕아졌지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이만큼 쉽고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을 찾기도 어렵다.

아쉬운 부분은 분명 있지만 <힐빌리의 노래>는 추천할 만한 영화다. 정책을 수립할 위정자도 봐야겠지만 특히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할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힐빌리에서 시작되어 우리에게 도착한 비가(悲歌)가 누군가에게는 과거형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현재진행이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미래완료까지는 아니며,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게 꼭 소비가 아니라 투자일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고브릭  redcomet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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