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령을 신면의 노비로 내친 수양대군(세조)의 분노는 결국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세령이 신면의 집에 들어간 사실을 안 김승유는 조석주의 도움으로 세령을 구해냈다. 신면은 세령이 자기집 노비로 들어오자, 내 집에 들어온 이상 내 사람이라고 했건만 또 승유에게 세령을 빼앗기고 말았다. 수양은 세령을 신면의 노비로 보낼 때 승유가 올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잠복을 하고 있었으면 잡을 수도 있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제작진이 이런 연출을 한 건 종방 3회를 남겨두고 수양의 자충수 때문에 '금계필담'대로 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회 엔딩 장면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수양의 말이었다. 어려서부터 수양을 무척이나 따랐던 세령이지만, 사랑 앞에선 아비도 보이지 않나보다. 세령은 수양이 김승유를 잡아 죽여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하지만, 세령은 바락바락 '또 다시 무고한 자들의 피를 보는 악행을 저지를 실 것입니까?'라고 아비의 정곡을 찌른다. 그래서 수양이 홧김에 내린 어명이 세령을 신면의 노비로 보낸 것이다. 병석의 아픈 세자도 수양의 뜻을 접어 달라 애원했건만 세령은 노비로 보낸다는 아비의 말에는 고분고분 따른다. 왜 세령은 신면의 노비가 되는 걸 원했을까?

첫째는 공주신분에서 폐서인이 되기 때문에 신면과의 결혼이 없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수양이 이미 신면과의 혼사는 없던 일로 한다했지만, 신면의 집착을 볼 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비가 되면 신면이 자신과 결혼을 하기 어렵다는 걸 세령은 알고 있다. 신면은 세령을 데리고 와서 '폐서인이 되고서도 용서조차 빌지 않고 나온 것이 김승유 때문이요'라고 했지만, 세령은 '신판관의 입에서 그 분(김승유)의 함자가 나오는 걸 원치 않습니다'라며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해댄다. 신면의 세령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세령은 승유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다. 신면으로선 한 때 벗이었던 김승유를 잡아 죽여야 세령을 차지할 수 있을까?

둘째는 아비의 살생에 대한 보복 차원이다. 세령은 수양에게 아비의 살생으로 인해 자식이 큰 벌을 받는 걸 봐야 정신을 차리겠냐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 벌로 세령 스스로 노비가 되어 자식이 큰 벌을 받은 걸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비가 내린 결단이지만, 수양이 진짜 세령을 노비로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소복을 입고 나와 '아버지와의 연을 끊은 저입니다. 이세령이란 이름을 버리고 무명의 노비로 살 것입니다'라며 끝까지 아비와 맞서는 세령을 수양대군의 체면에 그대로 용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셋째는 승유와 다시 만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궁에서 지낸다면 승유가 자신을 구하기 어렵다는 걸 세령이 왜 모르겠는가? 그런 차에 아비가 신면의 집에 노비로 보내겠다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세령의 이런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거사를 도모하던 승유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공주가 신면의 노비가 됐다는 말을 듣고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승유를 든든히 받쳐주는 조석주의 도움으로 세령은 승유와 함께 신면의 집을 빠져나온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대로 세령이 신면의 노비로 있을 때 수양과 신면이 조금만 머리를 썼더라면 승유는 잡힐 수 있었는데, 너무 허술하게 승유와 세령을 놓치고 말았다. 드라마니 그러려니 하고 보지만, 종방으로 치달을수록 구성이 너무 허술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세령을 구한 승유가 한 첫 마디가 '여기(신면의 집) 있다기에 미치는 줄 알았소!'였는데, 원수의 딸이 비로써 정인으로 보인 것이다. 빨리 신면의 집을 빠져나가야 하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러브신이 등장하니, 제작진은 '공남 열혈팬'들을 위해 팬 서비스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다. 애틋한 유령커플의 사랑은 그 이후 포옹과 키스신을 남발했지만, 지난 20회 동안 원수 보듯 하던 거에 비하면 이 정도야 예쁘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승유는 자신과 함께 가는 길이 더 없는 고생길이라 했건만, 세령은 저승길이도 좋다고 하니 이들의 사랑을 누가 말릴까.

경혜공주의 회임과 빙옥관의 초희가 신면에게 붙잡혀간 조석주를 살리기 위해 승유가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한성부까지 찾아온 것은 또 다른 반전이었다. 경혜공주와 부마, 초희와 조석주의 사랑 역시 유령커플 못지않게 참 애달프다. 결국 부마는 역사대로 참형에 처해질듯 싶다. 수양도 평정심을 잃고 세령을 노비로 내쳤지만, 세령이 승유와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된 신면 역시 마찬가지다. 신면의 분노와 달리 달콤한 사랑을 나누던 세령과 승유. 그러나 신면이 들이닥친 걸 알고 세령을 남겨둔 채 부마집으로 간 사이, 신면의 부관에게 세령이 붙잡히고 만다. 승유는 부마집에 있는 신면을 향해 활시위를 겨누지만, 그 옆에 세령이 붙잡혀 있는 게 아닌가.

활시위를 당길 수 없는 승유가 신면과 정면 승부를 벌여 세령을 다시 구해낼지 궁금하다. 결국 수양대군이 세령을 노비로 보낸 자충수 때문에 세령은 승유와 도망쳐 금계필담대로 해피엔딩으로 갈 것 같은데, 엔딩은 제작진 맘 아닌가? 어떤 엔딩이 될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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