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MBC 보도국으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각하했다. 서울지노위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방송작가들은 "시대착오적 결정"이라며 "MBC는 비정규직 뉴스를 보도할 자격이 없다"고 규탄했다.

지난 6월 26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10년가량 일했던 두 명의 작가는 계약서상 계약 기간이 6개월 남아있던 시점에서 프로그램 개편과 인적 쇄신 등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 받았다. 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이하 방송작가지부)에 따르면, 서울지노위는 두 작가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각각 10월 21일, 11월 23일자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서울지노위는 두 작가가 MBC로부터 별도의 근태관리나 인사평가를 받지 않았고, 업무의 자율권이 어느 정도 보장돼 있었다는 점, 기본급이나 고정급 없이 방송프로그램 단가로 보수가 책정돼 지급되었다는 점을 각하 이유로 들었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 종속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했다고 볼 수 없어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상암 MBC 사옥 (MBC)

방송작가지부는 성명을 내어 "MBC는 주 5~6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3시에 출근해 온 이들에게 전화 한 통으로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며 "10년 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를 전화 한 통으로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취급한 MBC보도국의 행태에 분노한다. 또한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난 작가들을 구제하기는 커녕 방송작가는 근로자가 아니라며 MBC의 손을 들어준 서울지노위의 반노동적 결정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주요 쟁점은 사용자의 실질적인 업무 지휘·감독이 있었는지, 해당 업무가 상시지속 업무에 해당하는지 등의 여부다. 서울지노위는 이번 결정에서 "원고 작성은 작가의 재량이었고 회사가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한 바 없다"며 두 작가에게 업무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서울지노위 결정에 대해 방송작가들은 "코미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방송작가지부에 따르면 MBC<뉴스투데이>에서 '아침신문보기' 코너를 담당했던 피해 작가의 당시 업무는 새벽 3시 30분 출근해 12종의 일간신문을 훑은 뒤 MBC 차장기자와 아이템 선정을 논의, 이후 선임기자 데스킹을 거쳐 원고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MBC 선임기자가 "OO일보 기사를 맨 앞에 배치하지 말아라", "OO일보 기사는 증세 관련이라 민감하니 빼라", "OOO신문 기사는 말이 안되는 내용" 등의 데스킹을 거쳐 아이템을 선정하면 작가는 원고 작성에 돌입, 새벽 5시 50분 마감시간에 맞춰 최종원고를 내야한다.

방송작가지부는 "'업무 장소와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어 있고', 'PD 등으로부터 상시적인 지시를 받고', '업무내용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지는' 사정 등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의 특성'이 노동자성 부정의 근거로 둔갑했다"며 "MBC의 주장과 서울지노위의 판단대로 <뉴스투데이>가 MBC의 지휘 감독이 없는 방송작가의 재량에 의해 쓰여진 기사를 토대로 방송되었다면 공영방송 뉴스가 작가 개인의 유튜브 채널과 다름없었단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방송작가지부는 "해고된 방송작가에게 지급된 일당은 이들이 투여한 노동과 기자, PD들과의 업무 분담에 따른 결과물에 대한 총체적인 대가이자 작가 혼자 자유롭게 창작해 집필해낸 A4용지의 장수에 비례한 원고료가 아니다"라며 "보도국 작가들은 매일 고정된 시간에 출퇴근했고 사내 보도 시스템에 접속해 데스크의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했다"고 강조했다.

방송작가지부는 두 작가가 MBC로부터 실질적인 근태관리를 받았다는 근거로 두 작가의 근태사례를 전했다. A작가는 부친상 당일에도 MBC로 출근했다. B작가는 새벽 출근길 차가 폐차될 정도의 교통사고를 겪고도 MBC로 출근했다.

방송작가지부는 "보도국 작가들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생방송'과 '보도'"라며 "프로그램이 매일 같은 시각에 방송되기 때문에 이들의 출퇴근 시간은 고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두 작가들은 지난 10년간 뉴스가 방송되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MBC로 출근했다"고 밝혔다.

방송작가지부는 "아침 생방송 업무의 특성상 작가들은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원고를 작성해 넘겨야만 한다. 그래야 방송사고가 생기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으며, 해고되지 않고 업무를 이어나갈 수 있다"며 "피해 작가들은 지노위의 판단대로 ‘취업규칙 등 인사규정을 미적용 받는 (자유로운) 프리랜서’라기 보다는 부친상과 교통사고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생방송을 위해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의 계약해지 통보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계약서상 조항 문제가 있었다. 방송작가지부는 "현재 MBC 보도국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방송작가를 위한 집필 표준계약서를 발표한 지 3년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KBS, SBS와 다르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항만이 가득한 불공정한 내용의 업무위임계약서 체결을 고집하고 있다"며 "민법 689조에 의거해 언제든지 상호간의 의사 표시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에 대해 서울지노위 근로자위원은 '공영방송에서 어떻게 이런 조항이 있는지 의아스럽다'는 말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MBC 보도국의 '프리랜서 업무 위임계약서(작가)'를 살펴보면, MBC 보도국은 '계약해지' 조항에서 "본 계약은 민법 제689조에 따라 갑 혹은 을의 의사표시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개편 등 방송사의 일방적인 사정으로 인한 계약 해지시 갑 또는 을은 마지막 방송 제작일 2주 이전에 구두 혹은 서면으로 통보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갑은 을에게 2주 동안 업무를 수행하였다면 받았을 보수를 지급한다"고 규정했다. 민법 689조는 위임의 상호해지 자유를 규정한 조항으로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MBC 보도국 '프리랜서 업무 위임계약서(작가)' 중 계약해지 관련 조항

이는 문체부가 권고한 방송작가 표준계약서의 내용과는 차이가 크다. 문체부 표준계약서는 계약 변경 시에 "상호 합의하여 본 계약을 기명날인한 서명에 의해 변경할 수 있다. 이 경우 스태프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계약기간 등 단축 또는 연장을 거부할 수 있으며, 방송사 또는 제작사는 이를 이유로 저당한 사유없이 스태프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MBC 작가들과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데 대한 지적이 있었다. 시행여부를 물으니 잘 하고 있다고 답변했지만 의원실이 살펴보니 보도국에서는 프리랜서 업무위임 계약서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이 정도면 대법원에서 인정한 근로자성을 인정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받고 답변까지 했으면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방송작가지부는 "보도국 기자 시절 피해 작가들을 직접 면접하고 채용한 박성제 MBC 사장은 답해야 한다. 사내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에게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는 MBC 보도국이 비정규직 문제를 보도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국민 셋 중 하나가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MBC는 공영방송을 자처하며 수신료 지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는 것 또한 명백하다"고 규탄했다.

이번 서울지노위 판정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용우 변호사는 "근로자성 판단의 부차적 징표를 근로자가 아니라는 주요 근거로 삼거나, 정작 핵심징표로 확인된 사항에 대해서는 업무의 특수성이라는 이유로 근로자성 판단의 근거에서 배제하는 등 법리 오해로 일관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평했다.

언론노조 오정훈 위원장은 "보도는 지상파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어떻게든 근로자성만 부인하려는 MBC 사측의 태도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며 "불안정한 일자리로 제작인력을 채우려 하지 말고 구조적인 변화를 결단해야 한다. 작가와 제작진의 헌신, 열정이 인정받을 수 있는 대책 수립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방송작가지부와 피해 작가는 이번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 2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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