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30년 젊게 할 것이다"

언론계 한 관계자가 조선일보 종편 'TV조선'의 특별취재팀의 구성을 보고 한 말이다. 뉴스가 젊어진다니 좋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TV조선'이 공격적으로 '특종'을 터뜨리면, 뉴스가 5,6공 시절의 정파적 프레임을 따라 '흑색선전'과 '왜곡보도'로 회귀할 거라는 암담한 얘기다. 왜 그럴까?

다시 머리 깎은 이진동 기자, 한나라당 성향 아닌 한나라당 출신 기자

'TV조선'의 특별취재부의 구성이 알려진 이후 언론계 안팎에서는 예사롭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일단, TV조선 특별취재부장을 맡고 있는 이진동 부장의 경력은 언론계 사상 초유의 이력이라 할 만하다. 이진동 부장은 조선일보 기자를 관두고 18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이후에도 계속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인의 행보를 걷다가 다시 기자로 귀환했다. 한나라당 성향의 기자가 아니라 그냥 한나라당 출신 기자인 셈이다. 이에 대해 과거 그와 함께 기자 생활을 했던 한 기자는 "웃기는 일이다. 저널리스트 입장에서 보면, 환속했다가 다시 머리깎은 셈이다. 그것도 자신이 출가했던 절집의 암자로 기어 들어와서"라며 씁쓸해했다. 그의 귀환은 그 자체로 저널리즘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이진동 기자의 귀환은 TV조선이 먼저 제안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TV조선은 '이 기자가 지난 2005년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실태를 단독 보도해 여러 언론상을 휩쓰는 등 특종과 탐사보도에서 보인 탁월한 능력을 높이 사 먼저 복귀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치인으론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기자 이진동의 능력만큼은 높이샀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다. 이 기자는 2006년에는 '한국기자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올해의 법조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공인 받은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탐사해 건져 올린 기사들은 파장이 매우 컸고, 때때로 정국을 요동치게 하기도 했다.

▲ 후보로 18대 총선에 출마했던 이진동 기자가 유세를 위해 정몽준 의원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한나라당 안산 상록을 당협 카페
특종기자 이진동, 그의 특종은 무엇을 위해 복무했나?

이진동 기자의 대표적 특종을 꼽자면, 지난 2005년 단독 보도했던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 실태 이른바, ''X파일' 미림팀 도청 공작 특종'을 들 수 있다. MBC가 '안기부 X파일' 문제를 보도할 것이냐를 두고 몇 개월이나 시간을 끄는 사이, 이 기자가 먼저 치고 나가 세상을 발칵 뒤집은 보도였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좀 복잡하다. 이진동 기자에 앞서 MBC 이상호 기자가 먼저 비밀 문건을 입수했고 이미 도청 테이프까지 확보해 충분히 보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큰 사이즈의 문제였던 터라 MBC 보도국이 쉽사리 보도를 결정하지 못했다. MBC의 미보도 상황이 언론계 안팎에서 공공연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을 때, 조선일보가 이진동 기자의 단독보도를 통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사이즈의 고발이었다는 불법 도청 스캔들을 세상에 드러냈다. 하지만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의 특종으로 그 사건의 본질은 삼성이 검찰에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뿌렸다는 것이 아니라 안기부가 불법적으로 도청을 했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프레임이 완전히 다르게 바꿔치기된 셈이다. 삼성과 검찰의 문제에 천착했던 MBC 이상호 기자는 이후 '사회적 왕따'가 되다시피 했고, 이진동 기자는 보수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됐으니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의 프레임 교체가 어떤 의미가 됐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보도를 통해 이진동 기자는 탐사고발 기자로서의 확실한 위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진동 기자는 2004년까지 한국일보에 있다가 조선일보로 이직해왔다. 한국일보 시절 이진동은 유능한 사회부 기자였단 평을 받았지만, 연달아 특종을 하던 기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경력기자로 조선일보에 이직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연달아 특종 보도를 터뜨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X파일 특종'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 기자가 맵시 있게 만든 보도는 당시 언론계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 내용이었다. 상황적으로 이 기자의 능력보다는 조선일보의 배짱이 더 두드러졌던 보도였다. 그래서 조선일보가 '1등신문'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보도의 프레임을 삼성과 검찰에 맞추지 않으면 얼마든지 소화할 수 있단 조선일보의 판단이 돋보였다.

조선일보에는 '귀족', '그냥 기자' 그리고 '몸을 바치는 기자'가 있다

물론, 그 판단 자체가 이진동 기자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언론계 관계자가 한 얘기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이진동 기자의 귀환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한 기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조선일보 편집국 안에는 전통적으로 3개의 부류가 있다. 첫째는 귀족이라 불리는 이들인데, 오너 쪽과 특수 관계에 있거나 (기자의)아버지가 고위직 혹은 조선일보 출신이었던 이들의 자제들이다. 이들은 같은 공채기수라고 해도 처음부터 특혜를 받는다. 일부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조선일보 장학금을 받았던 이들도 있다. 귀족들은 좋은 자리를 보장받으며 진골로 쭉 성장해간다. 그 다음은 그냥 공채기수다. 열심히 하지만 진골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마지막이 경력 입사자다. 이들은 정말 조선일보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을 바친다." 이진동 기자 같은 이들이 경력 입사자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 가운데는 경력 입사자 출신이 많다. 대표적으로 그 자체로 보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조갑제 전 편집장이 있다. 국제신문 기자였던 조갑제는 조선일보에 경력 입사해 조선일보 내부에서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극우 논조로 오늘날 조선일보의 정체성을 대중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유명한 '사상검증 논란'을 일으켰던 이한우 기자 역시 문화일보 출신의 경력기자로 조선일보에 입사한 케이스다. 이한우 기자는 조선일보 입사 후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최장집 교수에게 '빨갱이' 누명을 씌우며 조선일보의 공안 마케팅에 한 획을 그었다.

사주 일가가 불편해했던 국회의원만 고발했던 '탐사전문기자'

이진동 기자가 조선일보에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은 상황도 이들과 비슷하다. 이진동 기자는 조선일보 입사 후 야당 의원들의 비리를 캐내는 것으로 '탐사전문기자'의 능력을 인정받았는데, 이는 사주의 이해관계를 복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이진동 기자는 입사하자마자 민주당 김희선 의원의 사무실 리모델링 관련 리베이트 의혹을 고발했고, 이어 김원웅 의원의 부동산 의혹을 고발했다. 당시 김희선, 김원웅 의원은 친일청산 운동을 주도하며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불편한 관계였던 국회의원들이었다.

TV조선이 외인부대 출신을 중심으로 특별취재부를 꾸린 것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아직 부장급 연차가 되기엔 조금 이른 이진동 기자를 부장으로 영입한 것을 비롯해 TV조선의 특별취재부는 다수가 경력 입사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일간지 출신의 한 기자는 "그동안 조선일보가 경력 기자를 이용해 재미를 많이 봤다. (조선일보의 구조상)경력기자는 철저히 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말한 경력 기자의 사례들처럼, 조선일보에 뒤늦게 입사한 이들은 눈에 띄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지금, TV조선 특별취재부는 무얼 찾아 헤매고 있을까?

TV조선이 특별취재부의 구성을 뭐라고 둘러대건 이들의 정파성은 명확하다. 한나라당 출신 부장의 지휘 아래 이들이 만들어낼 기사의 편향성 역시 불 보듯 뻔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종편이 자리를 잡기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특종'이 필요하고, 더욱이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를 주무르는 조선일보의 능력은 타 매체의 추종을 불허한다. 조선일보는 97년 대선에서 일방적인 '이회창 편들기'로 일관했다. 이회창 편을 들며 조선일보는 당시 제3의 후보였던 이인제 후보 측에 묻지마 '카더라' 공세를 쏟아냈다. 사실 확인은 뒷전, 공세는 선수였다. 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흠집내기'에 모든 공력을 쏟았다. 후보단일화 공조가 파기된 대선 당일 <조선일보>가 썼던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 사설은 아직도 '언권선거'의 가장 극악한 사례로 얘기되곤 한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TV조선 특별취재부는 그 이상의 것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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