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여진 칼럼] 2015년 영화촬영 현장에서 강제추행 문제를 제기한 여배우 반민정 씨는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상대 남자 배우인 조덕제의 강제추행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영화 촬영현장에서 여배우들이 감내해야 했던 강제추행을 용기 있게 제기한 반민정 배우에게 그 당시 세상은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특히 언론은 사건 초기 선정적 이슈를 통해 다량의 기사를 쏟아내며 클릭장사에 나섰다. 대법원 유죄 판결 확정 이후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고 피해자에게 불리한 기사를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상대배우였던 조덕제는 자신의 추행이 예술행위라고 주장하며 영화촬영 장면을 재연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등 2차 피해를 멈추지 않았다.

2020년 11월11일 헤럴드경제와 헤럴드POP는 반민정 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제기한 민사재판에서 법원의 화해권고를 받아들였다. 배우 반민정에 대한 허위적이며 편향적인 보도행위를 인정, 93건에 대한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11월22일 법원은 SBS플러스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반민정 씨의 명예를 훼손한 것을 인정하고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9년 10월 판도라TV는 법원의 화해권고 결정에 따라 허위내용이 포함된 영상들이 게시된 점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매일신문, 영남일보에 대해서 법원은 강제조정 명령을 내렸다.

‘조덕제 성폭력 사건’ 피해자 비방·모욕 영상 올린 판도라TV가 사과문을 게재했다. (판도라TV 홈페이지 메인화면 갈무리)

반민정 씨가 언론인권센터를 찾아왔던 2019년 1월, 대법원판결 이후에도 지속되는 2차 피해 때문에 살기가 힘들다고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매체를 상대로 한 공익소송뿐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명예훼손 민원, 네이버TV 영상에 퍼져있는 조덕제 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민원, 유튜브 이용자센터를 통해 피해내용을 적시하고 피해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민원을 냈다. 피해 게시글과 영상이 너무 많아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을 고르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 민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지난 5년 동안 여배우 반민정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영화촬영 현장은 일터이며, 노동의 현장일 것이다. 어떤 장면을 촬영하더라도 인권과 노동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반민정 배우의 용기는 관행과 남성적 권위에 맞서지 못하고 속을 끓였던 많은 여성 배우들에게 힘이 되었지만 그 당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언론은 여성배우 촬영현장의 문제점이나 그들의 권리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여성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술자리의 먹잇감이 되도록 했다. 그러는 사이 반민정 배우는 일터를 잃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한다.

2020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언론매체는 총 2만 2천여 개이다. 미디어시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언론매체 등록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언론사의 수익구조가 광고와 구독료였던 시절은 2005년 이전의 이야기다. 그 후 포털미디어, 모바일미디어시대가 되면서 클릭과 조회수를 유도하는 기사(?)가 언론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가 되었다. 여배우가 촬영현장에서의 성범죄를 당했다는 선정적인 내용으로 반민정 씨 사건은 수많은 언론사의 수익을 만들어주었다. 강제추행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고통보다 2만여 개의 매체가 쏟아낸 허위보도와 편향적 보도, 5천만 인터넷 이용자의 게시글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소송과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2018년 9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는 '남배우 A사건'공동대책위원회의 대법원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40개월간의 재판 과정 동안 '남배우 A사건'에서 '상대 여배우'로 호칭됐던 피해자 반민정 씨가 참석했다.(미디어스)

법원의 화해권고를 통해 헤럴드경제의 93개 문제 기사가 삭제됐다. 한 매체에서 반민정 씨에 대한 기사가 93개나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언론사가 마음먹으면 93개의 문제기사를 지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언론사 스스로 당사자의 피해를 생각해서 지워주는 경우는 없다. 소송을 제기해야만 가능하다.

다행히 반민정 씨가 촬영현장으로 돌아와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그녀에게 “용기에 대한 격려”와 “미안함”을 보낸다. 그 당시 그녀의 기사를 하나라도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86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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