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이 라디오 PD지만 직업을 떠나 아주 자유롭게 라디오 청취를 즐긴다. PD로서 모니터를 한다는 것은 일의 연장이기 때문에 '타 방송을 모니터한다'라는 부담을 떨치고 한 사람의 청취자 입장에서 채널을 돌려가며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디제이의 방송을 애청한다.

그들의 힘, 결코 잘난 체 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MBC-FM <정오의 희망곡>의 정선희씨와 SBS-FM <두시탈출 컬투쇼>의 정찬웅, 김태균씨다. 그 이유는 그들의 '거침없는 입담'에 빠져서이다. 이들의 방송은 거의 수다와 잡담으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담이 많을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인 산만함도 없고, 저질스럽지도 않으면서 방송의 본질을 잊지 않고 부담없이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그 짧은 시간에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의 유희는 참으로 현란하다.

특히 정선희씨의 촌철살인의 위트와 순발력 넘치는 말의 조합은 정말 천재적이라고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정찬웅, 김태균씨는 때론 시니컬하게 할 말을 다 하면서도 결코 밉지 않다. 혼나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이랄까? 참으로 대단한 매력이고 무척 부러운 재능이다.

그들의 진행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결코 잘난 체 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혼자 결론지었다. 사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꾸밈없이 대한다는 것은 보통의 자신감이 아니면 실행할 수 없는 경지다.

게다가 한번 쏟아내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위태로운(?) 심의의 경계를 들락거리며 청취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한다는 것은,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강심장의 소유자들이어서 그들의 거침없는 수다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무엇보다 그들이 좋은 이유는 진정으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이다. 나도 라디오를 들으며 그들과 같이 웃고 같이 즐긴다.

이명박 내각의 말…블랙코미디 수준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 조선일보 2월23일자 8면.
말이라도 다 같은 말은 아닌 것 같다. 요즘 하도 많은 데서 사례를 들어서 새로울 것은 없겠으나 TV와 각종 신문지면, 인터넷에 회자되던 이명박 정권에서 선택한 인사들의 청문회는 많은 언론들이 지적한대로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중에 일부는 결국 '말'로써 낙마했고 그중 일부는 현란한 말잔치를 뒤로 한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솔직히 요즘에는 청문회를 거쳐 누가 낙마했고 누가 등용됐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지만 어쨌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청문회의 후보자들 말잔치를 다시 들추자니 부아가 치민다. 식상한 내용이지만 뭐, 이런 것들이다.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다. 글도 쓰고 사무실로 쓰라고 했다.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은행 대출 받아 샀다. 다른 오피스텔은 12평짜리 조그만 것이다."

▲ 조선일보 2월23일자 8면.
그 후보자는 국민들이 이 말을 듣고 '남편이 대단한 애처가구나' 감동하면서 '글도 쓰고 사무실로 쓰라'고 했다는 부분에선 부러워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13평짜리 조그만 오피스텔이 별 볼일 없는 사소한 것의 일부라고 판단할거라는 믿음이 있었을까?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배우생활 35년을 하면 140억원을 벌 수 있다. 배용준을 봐라."

이런 말들 역시 다시 봐도 씁쓸하다.

딸의 한국 국적 포기에 대해 "아이가 중3때 연합고사에서 수석 입학을 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청소년 복지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워 본인 선택에 따라 국적을 포기토록 했다"며 나라까지 바꿔주면서 자녀 사랑의 표본(?)을 보인 것은, 어째서 눈물겨운 부성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4천만원에 구입한 골프 회원권을 "싸구려 회원권"이라고 표현했던 후보님도 억울하시겠다. 2억원짜리 골프 회원권과, 1억짜리 골프 회원권에 비해 싼 것이 분명한데 그걸 솔직히 말했다고 해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항변도 하실 법 하다.

그런데, 아무리 한물 간 '같기도' 권법에 대입해 보아도 이건 '유머도 아니고 위트'도 아니다.

앞으로도 정치가들의 입을 통해 얼마나 많은 말들이 회자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랏일을 수행할 사람들의 자질이 블랙 코미디 수준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런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 바로, 송대관씨의 <인생은 생방송>이란 노래인데 뒷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인생은 재방송 안돼 녹화도 안돼……

그렇다. 인생은 생방송이다. 생방송은 특히 정선희씨와 컬투가 잘한다. 그들의 솔직 담백 유쾌 통쾌한 입담을 한수 배우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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