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조화의 세 중심축은 '제작진', '출연자', 그리고 '시청자'이다. 역대 어느 프로그램도 방송의 3대축이 이만큼의 조화를 이뤄내진 못했다. 완벽하다 못해 이제는 아름다워진 그 조화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제작진

제작진의 가장 큰 역할은 프로그램을 목적에 맞게 만드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제작진이 추구하는 목적은 첫째도 둘째도 재미이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어떤 메시지를 담는 데에도 큰 비중을 둔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실은 '재미위주'의 제작방향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원래 코미디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 있는 것이 슬픔(페이소스)과 풍자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있어야 코미디는 가벼운 웃음을 넘어 깊은 웃음과 감동을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이 있는 코미디와 아닌 코미디의 재미수준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찰리채플린의 작품이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무한도전 제작진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메시지를 담을 때 가장 세련된 방식을 사용한다. 어떤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느낌표'가 보여줬던 것처럼 '책을 읽읍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쉽다. 가장 어려운 표현 방법은 직접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은근하게 메시지를 삽입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지만 매우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은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 여자배우가 남자배우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연출이 있고, 남자배우의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여자배우를 보여주는 연출이 있다. 시청자는 후자에서 더 큰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예능에서 이런 연출을 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최대한 감추고 최대한 암시하게 한다는 것은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스피드 특집에서 1964년을 1964년식의 마이크로 버스로 연결시키는 것에는 엄청난 사전 조사와 노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이런 노력이 들어가는 에피소드와, 출연진에게 상당부분을 맡기는 에피소드, 그리고 전형화된 에피소드를 적절히 섞으면서 제작 부담을 줄이고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제작방식을 보이고 있다.

지독히 뛰어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제작진은 철저하게 출연진과 시청자를 믿는다. 그들이 돌려 말한 부분을 알아챌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무한도전은 시너지를 일으키게 된다.

2. 출연진

어떤 미션을 들고 오더라도 웃음을 만들어 내겠다는 굳은 의지. 그것이 무한도전 출연진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들은 작품 속에 다양한 암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구태여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맡은 자리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행동한다.

몸을 써야 할 때는 몸을 쓰고, 웃겨야 할 때는 웃긴다. 제작진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캐치하고 실행해 나가는데, 결론은 한 가지이다. 어떤 경우에도 웃겨야 한다는 것. 이것을 잊지 않음으로 인해서 자칫하면 계몽방송으로 오인 받을 수 있는 무한도전의 기본정신을 단단하게 지켜준다. 출연진들이 멍청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들은 매우 영민한 방송인들이다.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들은 끈임 없이 스스로를 새로운 캐릭터화시키며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무한도전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똑같은 멤버가 지속적으로 에피소드를 이끌어나가다 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출연진은 이 부분을 경계하고 지속적으로 캐릭터를 구축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출연진들간의 신뢰, 그리고 제작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캐릭터를 구축시켜 줄 수 있다는 신뢰, 자기의 모습 중 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파악해서 강조해줄 동료가 있다는 신뢰가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실패했던 좀비 특집 이후, 출연진은 자신들의 안일한 방식이 자칫하면 수많은 노력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설정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제작진의 의도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필요한 움직임을 보이려 애쓰고 있다. 비록 기저에 깔린 암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무것도 던져주지 않아도 방송분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의 역량은 분명 제작진에게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준비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엎어져도 제작진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제작진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출연진의 능력 덕이다.


3. 시청자

무한도전은 시청자가 함께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동참한다. 예를 들어 조정대회 때 조정대회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은 뭐니뭐니해도 시청자이다. 조정대회 경기장까지 가서 응원하는 그들의 모습이 있었기에 출연진의 투혼도 더욱 빛나보였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시청자들의 모습 또한 그렇다. 다른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시민들은 다들 편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가 갖는 힘이자 출연진들의 힘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스피드 특집을 보고 그 의미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이 바로 시청자였다. 제작진이 심어놓은 암시를 찾아내는 시청자들의 적극적 개입은 무한도전의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찾는 사람도 재밌고 그걸 알게 된 다른 시청자도 재밌다. 그리고 제작진은 이들을 믿고 더욱 내용을 감출 수 있다. 작품의 질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이유이다.

시청자들의 이런 영민함을 믿기 때문에 제작진은 더욱 많은 내용을 암시할 수 있고, 끝까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그 메시지가 직접 표현되는 순간 예능 '무한도전'은 계몽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무한도전의 재미는 급속도로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이 예능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시청자가 함께한다는 데 있다.

이처럼 시청자는 프로그램의 제작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작품의 질적 향상에 일조하고 있다.


- 시너지효과

결국 제작진은 출연진과 시청자 덕분에 하고자 하는 얘기를 마음껏 고급스럽게 해낼 수 있고, 출연자는 예능 무한도전의 가치를 굳건히 사수하고 있으며, 시청자는 부가적 재미를 다시 생산함으로써 무한도전의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의 요소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로를 전혀 방해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이 관계 안에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의 가치화 힘, 그리고 유일함이 존재한다.

스피드 특집은 이런 무한도전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준 에피소드였다. 누가 봐도 레전드로 기록될만한 이 작품은 이제껏 그래왔듯 모든 방송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지, 그 모든 것이 바로 무한도전 한 편 안에 담겨 있다. 이제는 예능의 고전이 되어버린 무한도전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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