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하고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검찰의 매서운 공세와 보수신문의 격한 공격을 딛고,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언론의 영역에서 일어난 사안임에도 법원을 통해 유죄, 무죄를 가릴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은 차치 하더라도, 적어도 이번 대법원 판결로 <PD수첩>을 둘러싼 모든 논란은 마무리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틀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PD수첩> 무죄 확정 이후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MBC가 <PD수첩> 방송에 대한 사과 입장을 담은 사고(社告)를 냈다. MBC 구성원들은 ‘회사가 사고를 쳤다’는 표현에 빗대 이를 맹비난했다. MBC는 또, 조선일보 등 <PD수첩> 제작진을 헐뜯던 주요 일간지에 버젓이 광고를 내어 한 번 더 사과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 보도를 통해 <PD수첩> 제작진을 끝내, 매장시켰다.

▲ 조능희 당시 책임 프로듀서(가운데)가 지난 2일 오후 대법원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디어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본사에서 만난 <PD수첩> 제작진은 생각보다 표정이 밝았다. 정직, 감봉 등 ‘회사 명예훼손’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람들치고는 말이다. <PD수첩> 제작진은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정치 검찰’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제작진의 분노는 검찰이 아닌 MBC를 향해 있었다. 농담 삼아 던진 ‘정치 검찰과 MBC 가운데 누가 더 밉냐’는 초등학생스러운 질문 끝에 ‘MBC’라는 답이 이어질 정도로 말이다.

▲ 조능희 PD ⓒ미디어스
먼저, 조능희 PD가 MBC의 사고, 사과 방송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고를 보고 너무 화가나 허탈했다고 했다. 웃음 밖에 안 나온다고, 정말 한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법원 판단도 온전히 전하면 괜찮은데 그것도 왜곡해서 했다. 왜곡, 과장이라는 게 뭔지 확실히 보여준 거다. 내가 사과했으니까 너 책임져 이거다. 우리는 사과하고 싶지 않았는데 사과할 이유도 없는데. 다만 <PD수첩> 안에서 (실수에 대해서는) 이미 다 사과하고 했다. 그런데도 MBC는 대대적으로 우리를 죄인인 것처럼 했다.”

이춘근 PD 역시 같은 입장을 표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도 MBC라는 회사가, 경영진이, 그것도 대법원 판결의 핵심과도 상관없이 사과했다는 것에 분노를 표했다. 송일준 PD 또한 대법원조차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내린 판결을 회사가 독단적으로 사과했다고 분노했다.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하는 것인데, 남이 대신 사과 해놓고 책임지라는 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송일준 PD는 이에 더 나아가 ‘너무 서글프다’는 심경도 밝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방송이 권력의 주구로 돌아가는 세상이 다시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 총칼이 무서워서 굴욕 했다면 지금은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 때문에 스스로 나서서 주구 노릇을 한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서글픈 거다. 몇 년 사이에 주구가 되어버린 방송사에서 몸을 담고 있는 이 세상이 몇 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자꾸 꼬집어본다.”

“MBC보도, 우리를 물어뜯던 조중동 지면을 화면으로 옮긴 것 같았다”

특히, <PD수첩> 판결과 관련한 MBC보도에 대한 제작진의 분노는 무척이나 컸다.

▲ 이춘근 PD ⓒ미디어스
“사실 그때 <불만제로> 방송을 준비 하느라고 다시보기로 봤다. 보면서 딱 그 생각했다. 2008년도에 우리를 물어뜯던 조중동의 지면을 화면으로 옮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고랑 마크를 가리고 봤으면 누구라도 MBC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을 새로 만들면 그런 방송하지 않을까.” 이춘근 PD

“오히려 SBS, KBS 보도가 MBC보다 더 판결의 의미를 정확히 보도했다. 더 노력했다. 언론 자유 부분을 상식적으로 보도했다. <PD수첩> 공판을 담당했던 김형태 변호사로부터 밤중에 전화가 왔다. 지금 뉴스 봤냐고, 우리가 진 걸로 나왔다고. 요새 무슨 일 있냐고 묻더라. 지인들과 저녁 회식 자리에서 MBC뉴스를 보고 엄청 충격 받아 전화했다고 했다.” 조능희 PD

“심지어 천지일보(신천지 교회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도 팩트를 전했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송일준 PD (신천지 교회는 지난 2007년 5월 방송된 <PD수첩> ‘신천지의 수상한 비밀’ 방송과 관련해 <PD수첩>과 소송을 진행한 바 있다.)

<PD수첩> 제작진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MBC는 최근 인사위원회를 열어 ‘회사 명예훼손’을 이유로 조능희·김보슬PD에게 정직 3개월, 송일준·이춘근PD에게 감봉 6개월, 당시 시사교양국장이었던 정호식 외주제작국장에게 감봉3개월의 징계를 각각 내렸다. 제작에 참여했으나 프리랜서 신분인 작가를 제외한 제작진 전원에 대한 징계가 내려진 셈이다.

인사위원회, 그리고 징계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PD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인사위원회, 인사를 안 했다고 회부한 건가. 인사불성위원횐가?”

조능희 PD는 “막상 인사위원회 회부 통보가 왔을 때 무슨 죄일까, 어느 사규를 어떻게 위반해 인사위원회에 올라간 것인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회부 이유가 <PD수첩> 방송으로 인한 회사 명예훼손 건 이었다. 그래서 더 웃겼다. 누가 누구 명예를 훼손했는데….”

방송 과정에서 드러난 실수 등과 관련해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고 나아가 징계까지 받은 사례는 MBC 내에서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이례적인 일의 주인공이 된 <PD수첩> 제작진은 인사위원회를 통한 징계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너네들이 잘했냐’고 물으면, 우리 프로그램이 완벽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 최선 다했지만 실수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MBC 50년 역사상 실수, 정정 때문에 인사위원회를 개최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 이는 이제 MBC라는 언론사가 정부 정책을 비판했을 때 (추후 문제가 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것들에 대해 처벌할 것이라는 거다. 단순히 <PD수첩> 제작진 5명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어떤 보도, 프로그램 만들라고 말을 하는 것이냐.” 이춘근 PD

그는 또 “사규 68조2항에는 ‘객관적으로 (징계 사유를) 증명할 수 없을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이 부분에 대해 조능희 선배도 나도 인사위원회에서 이야기했다”며 “ <PD수첩> 보도로 굵직한 상 5개를 받았다. 송건호 언론상, 민주언론상, 이달의 PD상 등. <PD수첩>이 최소한 MBC의 명예를 고양시켰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었기에 (인사위원들을 향해) 우리 프로그램 어떻게 명예훼손 했는지 말씀해 달라고 했는데 전혀 거기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때, 진부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MBC 경영진은 왜 이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보냐”고. 어이없는 표정이 가득한 제작진의 얼굴, 끝에 돌아온 답변은 “길 가는 초등학생들에게 물어봐라”는 말 한마디였다. 그러면서 이춘근 PD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 내용을 전했다. “너희 회사 미쳤냐”

정치 검찰 VS MBC, 누가 더 미울까?

그래서 물어봤다. 초등학생스러운 질문이지만 사실 되게 궁금했다. “검찰과 MBC 가운데 누가 더 밉냐”고. 대답은 다음과 같다.

▲ 송일준 PD ⓒ미디어스
“둘 다 불쌍하다” 송일준 PD

“아내는 정치 검찰이 더 그립다고 하더라. MBC 안에서 어떻게 저런 짓을 하냐며.” 이춘근 PD

“검찰이 아무리 날 뛰어도 죄를 주려면 사법부라는 곳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 MBC 경영진은 정치 검사 노릇도 하고, 판사 노릇도 같이 하고 있는 거다. 정치 검사 보다 더하다.” 조능희 PD

MBC가 김재철 사장 체제가 된 뒤, 많은 이들이 “<PD수첩>은 최후의 보루”라며 <PD수첩>을 지켜내자고 수없이 외쳤다. 그래서일까, <PD수첩>은 숱한 압력들과 방해 가운데서도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긴 하다. 하지만 내부에서조차 “<PD수첩>이 변했다”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누구보다 <PD수첩>을 각별히 여겼던 이들이기에 질문 하나를 던졌다. ‘<PD수첩>이 변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송일준 PD가 가장 먼저 나서 “<PD수첩>은 변한 게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MBC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변해 보이는 것일 뿐 그 안에 있는 PD들이 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부서로 보내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고… 그는 그렇기에 “시청자들에게 보이는 <PD수첩>은 당연히 변해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열심히 투쟁하고 있고 반드시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춘근 PD와 조능희 PD 또한 “내부에서는 굉장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정말로 상상 이상으로 싸우고 있다. 굉장히 엄청나게 분투하고 있다”는 말로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MBC 사고를 보고, 보도를 보고 실망하신 국민들이 많을 거 같다. ‘MBC 되게 이상한데’라는 생각도 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는 MBC 다수 구성원이 찬성해서 나간 게 아니다. 소수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제작진의 뜻과는 상관없이 왜곡해서 만든 방송이다. 대다수 구성원들은 멀쩡하다. 언론인으로서 양심, 정신 버리지 않고 있다. 싸우고 있다.” 이춘근 PD

3년 4개월동안 이어진 법적 싸움이 끝나자마자, <PD수첩> 제작진은 또 하나의 법적 싸움을 시작한다. 이들은 당장 MBC의 징계 결과가 무효임을 증명하는 징계무효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PD수첩> 판결 결과와 관련한 MBC보도에 대한 정정 보도 또한 함께 고려중이다.

3년 넘는 시간 동안 <PD수첩> 공판을 직접 목격하고, 관련 취재를 하고, 관련 기사를 쓰면서 이들 어깨 위에 놓인 짐이 지나치게 버겁다는 생각을 했었다. 제작진이 겪은 지난 3년여의 행보는 이 정권이 ‘눈 밖에 난’ 언론인들에게 어떠한 시련과 고난을 주는지, 얼마나 혹독하게 괴롭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1심을 거쳐 2심까지, 매 공판 때마다 제작진을 향해 흘기던 검사들의 그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검사들의 눈 속에는 애당초 언론인, 언론자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중형을 구형하고, 구속시켜야 할, 이 정권에 큰 해악을 끼친 죄인들만 존재했을 뿐이다. 이 과정을 지켜봤기에, 이번 대법원 판결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하지만 이들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또 다른 긴 싸움을 시작하려 하는 <PD수첩> 제작진에게 MBC가 전하지 않은 위로를 <미디어스>가 전한다. 고생 많으셨다.

덧붙임: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안에는 <미디어스>를 통해 밝힐 수 없는 내용들도 꽤 있었다. 거친 표현을 거듭 순화할까 고민하다가 인터뷰 이후 제작진에게 닥쳐올 후폭풍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뺐다. 이번 인터뷰에서 제작진은 <나는꼼수다>를 언급하며 한 동안 유쾌하게 웃었다. “우리도 나는 꼼수다 같은 거 할까?”라는 말에서부터 “우리가 출연하면 된다”는 말까지. 차마 <미디어스>를 통해 전하지 못한 거친 말들을 언젠가 <나는꼼수다> 혹은 다른 미디어를 통해 유쾌하고도 상쾌하게 쏟아낼 수 있길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