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의 신작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4분짜리 예고편이 공개됐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 출신의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삼부작 소설인 '밀레니엄 시리즈'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이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이 팔렸고 미국에서만 1천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책이 출판되기 몇 개월 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본이 일찌감치 출판된 터라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밀리니엄 시리즈'는 시사 잡지의 발행인인 미카엘 블롬퀴비스트와 해커인 리스베스 살란데르가 함께 모종의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편인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 미카엘은 한 굴지의 대기업 회장으로부터 오래 전에 사라진 손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를 수락한 그는 조사에 매달리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자신의 컴퓨터를 해킹한 리스베스를 찾아서 도움을 요청해 파트너 관계를 맺게 됩니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데이빗 핀처에 앞서 이미 스웨덴에서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뒤를 이어 2편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3편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은 다니엘 알프레드슨의 연출을 거치면서 시리즈 전체가 영화화를 마쳤습니다. 또한 2009년부터 시작해서 일본, 싱가폴, 홍콩 등의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까지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영하질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개봉하기엔 좀 늦었겠죠?)

올해 12월에 미국에서 개봉할 예정인 데이빗 핀처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역시 스웨덴에서 출판된 소설을 영화화했던 <렛 미 인>과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하나씩 있습니다. 우선 동일한 것은 자국에서 먼저 영화화 한 후에 할리우드에서 맷 리브스가 훌륭하게 재차 영화로 만들었던 <렛 미 인>처럼,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도 영화가 아닌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점은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경우 <렛 미 인>과 달리 주인공 두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색을 거쳤고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예고편을 보니 다니엘 크레이그와 루니 마라가 각각 미카엘 블롬퀴비스트와 리스베스 살란데르로 등장하네요. (둘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 사실을 눈치 채고 혹시나 해서 살펴봤더니, 촬영도 일부를 제외하면 주로 미국이나 캐나다가 아닌 스웨덴에서 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보자면 데이빗 핀처가 원작의 분위기를 십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던 모양입니다.

전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부터 봤는데, 미스터리나 스릴을 동반하는 영화로 보기엔 연출이 다소 느슨했습니다. 그보다 제가 흥미를 얻고 주목했던 것은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한 소녀의 실종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복지국가의 표본쯤으로 여겨지는 스웨덴에서 자행되는 여성학대가 있습니다. 리스베스 살란데르의 캐릭터도 그렇고 실종된 소녀도 그렇고 모두 끔찍한 여성학대의 희생양입니다. 더 자세한 건 소설을 읽어보시거나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 더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리스베스 살란데르를 연기한 누미 라파스입니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시리즈에서 보여준 누미 라파스의 연기는 파격적인 외모만큼이나 가히 최고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대단했던지 또 하나의 주인공 캐릭터이자 미카엘 뉘퀴비스트가 연기한 미카엘 블롬퀴비스트는 거의 들러리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의 연기 또한 꽤 훌륭했는데도 말입니다.

데이빗 핀처 버전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는 루니 마라가 이 역을 맡았습니다. 일단 체구와 외모는 누미 라파스의 그것과 흡사한데, 예고편을 통해 본 바로는 누미 라파스의 리스베스 살란데르에 비하면 조금 여성적입니다. 만약 오리지널을 보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저 정도가 여성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또 한 번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쿠스 로스가 음악을 맡았습니다. 예고편에 쓰인 음악만 봐도 두 사람의 합작품이 영화에 한껏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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