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60세는 그저 60년을 살아온 시간이 아니다. 還甲(환갑), 자신이 태어났던 육십갑자의 해가 다시 돌아오는 해, 인생의 두 번째 바퀴가 시작되는 해이다. 즉 본격적으로 '노년'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이다.
그런데 60세 이후 노년의 삶은 녹록지 않다. 특히 60세 이후 독거하는 인구가 200만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에서 여성이 2/3에 이른다. 11월 16, 17일 양일에 걸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은 ‘60세 미만 출입금지’를 통해 60세 이후 독거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함께, 독거
다큐는 서로 다른 '독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60대 여성 세 사람이 ‘셰어하우스 한 달 살기’라는 실험을 통해 60세 이후 삶의 방식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서울 한가운데 고즈넉한 한옥의 대문으로 62세 사공경희 씨가 들어온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사람은 이제 독거 두 달째를 맞이한 65세 김영자 씨, 그리고 마지막 13년째 독거 중인 65세 이수아 씨가 오면서 함께 한 달 살기가 시작된다.
어느덧 65세, 그리고 홀로 산 지 두 달. 하지만 영자 씨는 '독거노인'이라는 호칭에 진저리를 친다. 아직은 노인이라고 하기 싫은 나이, 환갑잔치라는 용어조차도 무색해지는 요즈음 영자 씨 또래 노인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독거' 하는 60대 여성들이지만 세 사람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사공경희 씨는 62세이지만 '미스'이다. 30대는 40대가 되면, 40대에는 50대가 되면 하고 결혼을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덧 60대, 결혼하겠다는 생각이 무색해지는 시절이 되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남편과 따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영자 씨는 얼마 전에야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그리고 함께 살던 아들 내외마저 분가하고 홀로 산 지 두 달이 되었다. 북적거리던 집안에서 아이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자 불안이 밀려오고 왜 이렇게 됐나, 인생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던 즈음 딸의 신청으로 새로운 '함께'의 삶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사별한 지 13년째, 자식도 없는 수아 씨는 항상 외롭다. 단란한 가정도, 친구도 없는 그녀는 이대로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부산과 광주, 그 지리적 간격만큼 홀로 살아온 시간도 살아온 이유도, 그리고 홀로 살아갈 삶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인 세 사람이 불과 한 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시간은 쉽지 않다. 화통한 성격처럼 무엇이든 앞장서서 이끌어 가고 그만큼 스스럼이 없어 보이는 영자 씨. 하지만 스스로 해결하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아온 경희 씨는 자기 자식들에게 하듯 챙겨주는 영자 씨의 방식이 어색하다. 그런가 하면 오래도록 외롭게 살아왔으면서도 막상 함께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수아 씨 역시 만만하지가 않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두려워 늘 TV를 켜놓고 살았던 수아 씨. 함께했던 첫날 밤, 문을 닫지 말라던 부탁을 여름밤 모기를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들어주었던 영자 씨. 그렇게 닫히지 않은 방문처럼 세 사람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갇혀있는 저마다의 방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그 방문을 열고 나온 마음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자식이 있든 없든, 옛날 사진이 예뻐서 슬픈, 어느덧 60줄의 '노년'이 막막한 처지에서 다르지 않다.
혼자 사는 게 좋고, 누구와 살까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던 경희 씨가 숨겨왔던 병원공포증을 두 언니 앞에 꺼내놓고 '나 너무 무서워'라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시간. 세 사람은 불과 한 달이었지만 사람이 정든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며 이별을 아쉬워하기에 이른다.
함께 살아간다는 일
다큐가 처음 던진 물음은 ‘60세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였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문제로 삼아왔던 '독거'에 대한 질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한 달의 ‘시한부 함께'라는 시간을 지켜보며 다큐가 보여준 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을 함께하는 삶이 아니었다.
다큐는 '독거'라는 사회적 현상을 매개로 나이 들어 살아가는 삶의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불과 한 달의 기간, 다른 삶을 살아왔던 세 사람은 엇물리는 관계를 풀어가며 성장한다. 즉, 함께 산다는 건 그저 시간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관계를 '도움닫기'로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다큐는 말한다.
혼자 살아가기에 치킨 한 마리도 시켜 먹지 못하게 되는 삶. 그런데 불과 한 달이라는 기간에 서로에게 자신을 터놓고, 그런 가운데 서로의 이해와 지지를 얻게 된 세 사람은 훌쩍 큰다. 60이 넘어야 철이 든다는 영자 씨의 말처럼, 60은 늙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선이다. 움츠러들기만 했던 자신의 문을 열고 나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피아노의 건반을 용기 내어 누르듯, 그렇게 세 사람은 자신이 살아갈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세 사람은 저마다 살아왔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세 사람은 ‘한 달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불과 한 달이지만 그간 점처럼 살아왔던 세 사람 사이에 그 점과 점을 이어줄 '관계'의 매듭이 생긴 것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의 집을 찾아가는 '관계'는 그들이 독거라도 독거가 아닌 삶을 열어준다.
높은 데서 훨훨 날아가듯 떨어져 죽고 싶다던 수아 씨가 ‘지금 이 나이가 좋아요’라고 말하기 까지 필요한 시간은 '한 달'이었다. 다시 혼자 살아도 이제는 혼자가 아닌 삶. 노년의 문제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한 삶의 질의 문제라는 것을 세 사람의 변화를 통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