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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 유서' 보도 외면한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죽음 내모는 사회 심층기획 통해 다뤄야"… '유체이탈'식 아쉬움 토로
송창한 기자 | 승인 2020.11.13 11:18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조선일보의 고 박지선 씨 관련 보도의 문제점은 외면한 채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세태를 심층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박 씨 어머니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성 메모를 유족의 공개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단독] 보도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는 100건이 넘는 박 씨 사망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는 9일 열린 11월 정례회의에서 조선일보 4일자 기사 <연예인 극단 선택에... 정부 “내년 6월부터 예방 프로그램 실시”>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는 "기사는 정부가 연예계 대상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내년 6월부터 실시한다고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쳐 아쉽다"고 했다. 

조선일보 11월 13일 오피니언 33면

조선일보 독자권익위는 "요즘 젊은이들이 삶을 쉽게 포기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 관련 상담 센터를 찾는 학생들로 대학도 골치"라며 "흔히 젊은이 일자리를 걱정하지만 수면 아래에는 굉장히 심각한 우울증·자살 문제가 있다. 심층 기획을 통해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세태를 다루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독자권익위는 정작 사회적 비판에 직면한 조선일보의 박지선 씨 관련 보도에 대한 비평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지난 3일 새벽 1시경 [단독] 기사를 통해 박 씨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의 내용을 보도했다. 2일 서울마포경찰서는 사건현장에서 박씨 모친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트 1장 분량의 메모를 발견했으나, 유족 뜻에 따라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힌 바 있다.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자살 보도 시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고인과 유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미화를 방지하기 위한 보도기준이다. 당시 조선일보 홈페이지와 네이버·다음 포털에 게재된 해당기사의 댓글란에는 "사람이 죽었는데 단독 경쟁 꼭 해야 하나" 등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다. 

조선일보 11월 3일 사회12면

시민사회에서는 "죽음마저 클릭장사로 이용했다"는 질타가 나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어떤 사람의 죽음도 언론의 장삿거리가 될 수 없다"며 "조선일보의 '단독' 유서 보도는 언론의 윤리성마저 무너진 대표적 사례다. 기자로서 갖춰야 할 취재윤리를 넘어 인간으로서 윤리조차 저버린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언련은 "유서 내용을 가장 먼저 공개하며 물의를 일으킨 조선일보는 고인의 지병에 초점을 맞춘 보도까지 연달아 내놨다"며 "고인이 6년전 방송에서 언급한 지병을 다시 들춰냈다. 제목에 병명을 언급한 것도 모자라 고인이 앓았던 지병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내용까지 실었다. 2012년 고인이 지병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은 SNS까지 찾아내 사생활에 속하는 지병 관련 이야기까지 들춰냈다"고 질타했다. 

한겨레는 4일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가 언론윤리를 팽개쳤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번에도 대다수 언론이 유서 공개를 자제했는데 조선일보가 유독 ‘단독’을 붙여 보도한 것은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클릭 장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며 "조선일보 누리집에는 이 기사를 비롯해 박씨 자살 관련 기사가 150개 가까이 올라와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윤리는 아예 휴지통에 처박은 듯하다"고 썼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의 배경에는 미디어의 보도가 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관련 학술연구 결과가 국내외에 다수 존재한다.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일반인의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 '베르테르효과'에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조선일보 한현우 논설위원은 2019년 11월 26일 <[만물상] 너무 많은 '유명인 자살'>에서 "작년 우리나라 자살률이 10%가량 늘어난 것은 모방 효과 때문일 것이라고 보건복지부는 분석했다. 2017년 말부터 유명인의 자살이 줄을 이었고 그때마다 자살도 늘었다고 한다"며 "실제로 2017년 9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부터 아이돌 멤버 종현, 정치인 노회찬, 탤런트 조민기 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달 아이돌 출신 설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그와 매우 친했다는 구하라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했다. 

이어 한 논설위원은 "TV에서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연예인의 비극적 선택은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유명인의 자살을 두고 '안타깝다'는 뉴스만 경쟁하듯 쏟아내는 언론도 문제"라고 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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