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잊을만하면 검찰 뉴스다. 이번에는 특수활동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5일 국회 법사위에서 검찰의 특활비 관련 언급을 하고 이튿날 감찰 조사를 지시하고, 국민의힘이 법무부 특활비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받아 치면서 검찰과 법무부 양쪽 특활비 사용을 모두 국회가 검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논란을 더 키우는 모양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의문이다.

9일 여야는 같은 자료를 보고 정반대의 해석을 주장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사용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제출 자료가 부실해 검찰총장 개인의 특활비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없어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검찰의 자료는 비교적 소상했으나 법무부 제출 자료가 부실해 추미애 장관이 검찰 특활비를 받아 쓴 바 없다는 법무부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서울중앙지검에 배분된 특활비 액수에 대해선 민주당은 총액이 줄었다고 했고, 국민의힘은 예년과 비슷한 비율이 유지됐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이건 어느 한쪽이 완전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각자에게 유리한 내용만 부각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두 주장을 하나로 합쳐봐야 한다. 가령 서울중앙지검 특활비 문제는 전체 총액은 줄었으나 비율 자체는 유지된 것으로 봐야 한다.

법무부와 검찰의 자료 제출 미비 문제는 좀 더 구체적인 평가를 봐야 한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법무부는 개인 영수증이 있는 서류도 많았다. 반면 대검은 검찰청별로 예산이 들어간 서류라 훨씬 부실했다”고 했고,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법무부는 어느 국에 얼마를 줬다고 출력한 자료만 있었다. 반면 대검은 올해 상반기 특활비가 얼마 정도고 몇년 동안 총액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등 자료를 충실히 제출했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법무부는 ‘증빙’에 초점을 맞췄고 검찰은 과거와 비교한 지출 흐름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둔 게 아닌가 추측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간사가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진행된 국회 법사위의 검찰과 법무부 특수활동비 집행내역 현장검증을 위해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튼 이날 검증 내용을 종합하면 법무부와 검찰의 특활비 사용에 대해선 딱히 문제삼을 만한 결정적 내용이 발견됐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부터 그랬거나 법무부 또는 검찰이 문제를 은폐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야당은 특활비에 대한 문제제기를 다른 기관에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쟁을 떠나 통제불가능한 예산의 비율을 줄이고 사후적으로라도 집행을 검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그나마 생산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특활비 이슈는 결국 그 특성상 정권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추미애 장관이 검증을 밀어 붙인 셈이 됐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추미애 장관의 ‘자살골’이란 평가까지 내리고 있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의 등을 떠민 것은 여당이라는 사실에 중점을 둘 필요도 있다. 5일 국회 법사위 논의 내용을 보면 여당 의원들이 먼저 특활비 관련 질의를 했고 추미애 장관이 이에 화답하면서 “검찰 안팎에서 얘기가 나온다”, “그런 얘기가 있다”라는 식의 다소 엉성한 형태의 의혹제기로 검증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정치 참여 관련 발언을 한 이후 검찰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검찰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 강경해지고 있다. 여당이 특활비 관련 문제를 꺼낸 것도 월성1호기 조기 폐쇄 문제와 관련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 역시 나오고 있다. 정치 참여 가능성을 열어둔 검찰총장이 해당 지검이나 팀을 특별히 더 독려한 정황을 잡는다면 의도를 문제 삼을 수 있고 수사의 정당성에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당은 사실상 대선에 출마하려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권에 상처를 입히기 위한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정책적 판단은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핵심 정책을 펼 때마다 검찰에 확인서라도 받아야 하느냐는 비아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상식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탈원전정책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과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불법 여부를 밝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감사원이 검찰에 넘긴 수사참고자료 내용에 대한 보도를 보면 여당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조선일보는 감사원이 검찰에 보낸 자료는 7천쪽에 이를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며 판결문과 같은 형식으로 관련자들에 적용 가능한 법조항까지 정리돼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통상 감사원이 수사의뢰를 하지 않고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보낼 때는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경우는 ‘하라’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얘기다. 그간 언론은 감사원 자료에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 계획 이행 여부를 청와대 직원에게 확인하면서 ‘무리수’가 시작됐다는 내용도 있다고 보도해왔다. 결국 여당으로선 검찰이 ‘특수부 스타일’대로 수사를 진행할 경우 청와대 핵심까지 수사의 손이 미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국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울산사건’의 재현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의 우려는 일부 이해도 되지만 정치는 결국 명분이라는 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무게를 실은 정책의 정당성을 지키고 싶다면 탈원전정책과 월성 1호기 조기폐쇄의 불가피성에 대해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또 공무원들이 자료를 무단으로 삭제하는 등 사실상 감사 방해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이유불문 잘못을 인정하는 게 순리다. 검찰이 과잉된 방식으로 잘못된 수사를 진행한다면 그 자체에 대해 지적을 하는 것이 옳지 의도만을 추정해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여당의 지금과 같은 방식은 결국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한 ‘찍어 누르기’에 가깝다는 점에서 명분도 없고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뿐이다. 특활비 논란은 이걸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정치 참여 발언 등에 대해 적절한 해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검찰 수사의 신뢰성을 스스로 해하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할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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