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회라는 횟수를 자랑하듯 전국체전은 우리나라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며 지금까지 한국 최고의 스포츠 대제전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스포츠 스타 양성의 장이 되는 것은 물론 우리 스포츠의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전국체전. 과연 이 대회의 모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전 조선 야구 대회'에서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 (사진: 대한체육회)
1920년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기념으로 가진 첫 대규모 체육 행사인 '전 조선 야구 대회'는 배재 고등 보통학교에서 10개의 학생팀, 실업팀이 참가해 경쟁을 벌였는데요. 이후, 10년 넘게 이 대회가 이어지다가 1934년 육상, 야구, 축구, 농구, 테니스 등 5개 종목의 종합대회로 형식이 바뀌게 되면서 현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하계 올림픽이 1940년과 44년에 열리지 못했던 것처럼 전국 체전도 1938년 일제의 조선체육회 강제 해산으로 8년 동안 개최하지 못하는 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1945년에 해방된 후, 다시 조선체육회가 부활하게 됐고, 광복의 기쁨을 함께하며 10개 종목에 걸쳐 선의의 경쟁을 펼친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대회'로 전국 체전은 다시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1948년 정부 수립 직후에 '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되면서 공식 명칭으로 자리잡았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또다시 대회가 열리지 못하는 아픔을 맛봤지만 1951년, 제32회 대회를 광주에서 치르며 우리나라 체육인들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55년에는 경기 강화군 마니산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방식이 처음 채택됐으며, 1966년에 표어, 1996년에 마스코트(달곰이-강원도)가 최초로 도입되면서 체전의 상징물이 됐습니다.

전국의 모든 체육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대회 규모에 대한 제한도 위상에 걸맞게 변화돼 왔습니다. 1972년부터 초, 중학생 선수들만 참여하는 '전국소년체전'을 분리 개최했고, 1994년부터 종목별 예선제도를 신설해 2만 명 안팎의 선수단이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내 체육인들 외에 해외 동포들도 함께하는 '한민족 체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1989년부터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참여를 허용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엘리트 체육인이 아닌 생활 체육인에게도 문호가 확대돼 체육인이라면 누구나 전국 체전에 참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2009년,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MBC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 팀이 에어로빅 대회에 출전해 2위에 입상한 것이 바로 '동호인 부문'이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나름대로 변화를 꾀하면서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함께해 왔습니다. 비인기 스포츠인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의 장이 되고 있는 전국체전. 앞으로 전국체전을 통해 보다 더 많은 비인기 종목들이 관심을 얻고 한국 스포츠의 뿌리가 튼실하게 키워지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제92회 전국체육대회 블로그, e-뉴스레터에도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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