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진경]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잭 런던의 원작 영화 <마틴 에덴>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의 결정적 대사와 장면들이 회자되어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대에 기대되는, 향후 20년간 주축이 될 차세대 감독 20명 중 한 명”으로 지목한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영상미가 돋보이는 <마틴 에덴>은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주먹 하나만큼은 최고인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 분)'이 상류층 여자 ‘엘레나(제시카 크레시 분)’와 사랑에 빠진 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펜 하나로 세상에 맞서는 과정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 잭 런던의 자전적 캐릭터 마틴 에덴은 배움이 짧다는 정확한 자기 인식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난과 무지를 탓하지 않는 보기 드물게 자존감 높은 인물이다. 여러모로 흥미롭고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비범한 주인공 마틴 에덴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마틴 에덴> 스틸 이미지

<마틴 에덴>의 결정적 첫 장편은 오프닝 시퀀스다. 이미 유명 작가로 성공한 마틴 에덴이 글이 아닌 말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는 장면. “세상의 힘은 나보다 강하다. 그 힘에 맞서 내가 가진 거라고는 나 자신뿐이다. 제압당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하나의 힘이다. 내게 글의 힘이 있는 한 내 힘은 무시무시하다. 세상의 힘에 맞설 수 있다. 감옥을 짓는 자는 자유를 쌓는 이보다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의 어떤 이념이나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 본연의 글을 써야 한다는 작가 마틴 에덴의 내적 분투가 박히는 장면과 압도적 대사다. 성공은 결국 환멸까지 맛보게 하지만, 그의 작가로서의 자의식과 사그라지지 않는 창작욕은 가히 어쩔 수 없는 마틴 에덴의 유일한 삶의 동력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 <마틴 에덴> 스틸 이미지

두 번째 장면은 마틴 에덴이 상류층 여자 엘레나와 만나는 첫 장면이다. 난생 처음 휘황찬란한 부르주아의 문화를 보게 되는 마틴 에덴을 통해 그의 직관적인 계급 혹은 인생에 대한 통찰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다. 응접실에 놓인 유화 그림을 보다 엘레나가 곁에 다가오자 마틴 에덴이 툭 던지듯 하는 말. “그림 보고 있었어요. 멀리서 보면 멋진데 가까이서 보니 죄다 얼룩이네요. 그림이 사기 쳐요” 그림은 망망대해 위태로운 격랑에 놓인 배 한 척을 인상주의 풍으로 담은 작품이다. 필시 값비싼 작품으로 보이는데, 이런 솔직한 감상평은 엘레나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상류층 엘레나와 하층 선박노동자 마틴 에덴이 마치 계급 대 계급으로 만나는 장면으로 읽힌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저 유명한 찰리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와도 닿아 있다. 저 높은 계단 위가 궁금했지만, 결국 그 위치에 다다라보니 환멸만 가득했던 마틴 에덴의 삶을 이 한 장면이 응축해서 보여준 것. 이 장면은 영화 <마틴 에덴>의 주인공 마틴 에덴의 흥망성쇠를 결정적으로 암시해주는 장면이다.

영화 <마틴 에덴> 스틸 이미지

세 번째 장면은 마틴 에덴이 엘레나의 가족과 처음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풍성한 식탁에서 정작 계층이 다른 마틴 에덴과 엘레나의 가족이 나눌 이야기의 소재는 빈곤하기 짝이 없다. 삶과 일상에 접점이 없는 이들의 대화는 겉돈다. 여행을 많이 다녔냐는 질문에서의 여행은 엘레나 가족에게는 말 그대로 여행이겠지만, 마틴 에덴에게 ‘여행’은 선박 노동자의 일 때문에 부수적으로 따른 떠도는 생활일 뿐이다. 그들의 여행과는 다르고, 그런 답변 끝에 엘레나의 어머니는 “정부가 교육에 돈을 더 써야 해요”라고 하자, 마틴 에덴은 명쾌하게 받아친다.

스파게티 소스를 빵에 찍어 먹으며 “이(빵)걸 교육이라고 한다면 소스는 가난이에요. 교육을 이용하면 가난이 사라지죠” 결국 교육만이 가난을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지만, 그 교육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하층 계급은 받고 싶어도 교육을 못 받는 것이라는 역설. 하지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가난 따위는 쉽게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명쾌한 해석이며, 당연히 이 말은 마틴 에덴이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엘레나의 어머니에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나도 교육을 받았다면, 당신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마틴 에덴식의 표현. 이 장면에서 마틴 에덴의 교육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으며, 그가 결국 엘레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배움만이 성공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확신과 동기부여가 되는 장면이다.

영화 <마틴 에덴> 스틸 이미지

네 번째 장면은 마틴 에덴의 재능을 가장 처음으로 알아본 루스 브리센덴이 데려간 한 고급살롱에서 그와 여주인이 나누는 사랑에 대한 짧은 대화 장면이다. 루스 브리센덴이 부잣집 딸과 사랑에 빠진 마틴 에덴을 힐난하자 이에 동조하듯 그 여주인이 “도망쳐요. 이 세상은 감옥이에요”라고 하고, 마틴 에덴은 “열쇠만 있으면 감옥도 집이 될 수 있어요. 사랑이 열쇠죠”라고 한다. 엘레나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자신을 이끌어 글을 쓰게 했다고 믿는 마틴 에덴의 마음이 드러나지만, 훗날 그 열쇠인 사랑이 ‘변절’될 때 오는 환멸은 예기치 못하고 있는 것. 이는 사랑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가로서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성공만이 열쇠였을 수 있지만, 그의 성공은 오히려 그를 파멸시키고 말았다.

이렇듯 진정한 자유주의자 마틴 에덴의 이야기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를 뛰어넘는 클래식으로 기억될 영화 <마틴 에덴>은 전국 극장에서 절찬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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