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시청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락보컬리스트 김경호가 드디어 등장해 열광적인 박수를 이끌어냈다. 그 등장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기에 청중단의 반응 또한 유달리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경합의 결과는 4위.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다소 차이가 났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평가했을 때, 김경호의 4위 결과는 매우 잘 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김경호가 등장하면서 받은 순위 4위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김경호의 등장은 동료 가수들에게조차도 놀라운 일이었다. 임재범의 출연보다야 그 충격이 덜 했겠지만 그들을 놀라게 할 요소들은 많았다. 90년대 락을 마무리하는 전성기를 그가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800회가 넘는 공연 무대를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검증된 실력이었기 때문에 그의 출연은 조바심이 날 일이었다.

무대 공연 경험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순이도 김경호의 풍부한 경험은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왜일까? 누구보다도 같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많이 불러봤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대에만 같이 선 것이 아니라 조인트 무대를 통해 마이크를 맞대고 불러본 가수로서 그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재 '나가수'에 나오는 가수 중 인순이 뿐만 아니라 자우림, 바비킴, 조관우, 장혜진. 그들 모두가 같은 시기에 수없이 같은 무대를 서본 장본인들로서 김경호의 실력을 알기에 부담스럽고도 동시에 반가운 얼굴이 그였을 것이다.

1994년 그의 1집 <마지막 기도>를 친구에게 소개받아 듣고 그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음반 발표는 1995년 1월이었지만, 이 음반이 그 이전 나왔던 것은 그를 좋아하는 이라면 알 일이다. ‘여자일까? 남자가 이런 옅고 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남자였고 폭발적인 샤우팅에 소름이 끼쳤던 지울 수 없는 기억이 있다.

그의 <나는 가수다> 출연은 그야말로 반가움 그 자체였다. 2년간은 쉬었지만 꾸준히 활동한 김경호였고, 추억의 소리를 듣는 순간 그리움의 목메임은 숨길 수가 없었다. 추억의 샤우팅 창법 명품 가수로 그보다 이전 샤우팅을 한 가수를 뽑자면 그룹 '백두산'의 유현상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김경호와는 명확히 다른 헤비메탈을 하지만, 비슷한 창법을 가진 그룹을 뽑는다면 그 정도일 것이다. 외국 가수 중에 김경호와 가장 닮은 그룹을 찾는다면 단연 '스트라이퍼(stryper)'를 대표로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부른 'To Hell With The Devil'은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헛갈린다.

그 추억의 가수 김경호가 <나는 가수다>에 등장해 부른 1차 경연곡은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였다. 생각보다 평이하게 노래를 불러 애초에 생각했던 상위 순위가 아닌 중위권 순위인 4위를 받아 다소 놀라움을 줬다. 그러나 이 결과는 개인적으로 좋은 결과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위화감 상쇄

처음 출연한 가수가 1위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 아니다. 임재범처럼 단기간하고 빠질 게 아니라면 첫 1위는 그리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첫 1위를 하면 일단 그 실력에 대한 잣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조그마한 실수도 허용치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편곡의 파격적인 시도를 게을리 한다면 여지없이 순위는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게 된다.

김경호는 이번 등장에서 가볍게 불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짓누르는 긴장감 때문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부른 <모두 다 사랑하리>는 그가 낼 수 있는 소리에서 아주 기본적인 발성 정도였다.

영리한 배분

만약 그가 이 정도로 가볍게 부르고 1위를 했다면 시청자들은 만족치 못하고 무척이나 가혹하게 그를 몰아붙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첫 경연에서 4위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로서는 부담이 없는 순위다. 다음에 어떤 노래를 불러도 지금보다 잘 부르면 무조건 점수는 올라가게 되어 있다.

굳이 처음부터 성대를 폭발시켜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무조건 내 질렀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매우 힘든 레이스가 되었을 것이다. '나가수'는 <나는 성대가수다>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무조건 내지르는 현상을 보인지 오래다. 그런데 미치도록 내지를 것 같은 김경호가 전혀 내지르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충격이었을 것이다.

샤우팅 못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전성기처럼 칼 같은 샤우팅을 100% 재연해 내지 못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도 분명 있다. 이번 무대에서 보였지만 베이스음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여전히 80% 정도 재연할 수 있는 샤우팅이 남아 있다.

자문위원들의 평가도 제각각

사실 음악만큼 개인적인 호불호가 나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자문위원들의 평가도 달랐다. 개인적으로 수긍이 되는 내용과 수긍이 되지 못하는 것들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자문위원들의 평가에서 비교적 공감이 가는 내용은 3:1로 나뉘어졌다. 3은 '장기호 교수, 남태정PD, 안혜란PD'였고 김경호에게 좋은 평을 했다. 1은 '김태훈 팝칼럼니스트'로서 김경호에 대해서 실망한 눈치의 평을 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필자의 소견을 밝히자면 자문위원 3인 쪽의 의견에 수긍이 된다. 장기호 교수는 김경호의 노래를 듣고 '전보다 노련해진 목소리와 창법'을 구사한다고 평가했고, 남태정PD는 '원곡을 그대로 살린 점이 좋다'고 했다. 안혜란PD는 '김경호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인 고음, 샤우팅, 온몸을 흔드는 바이브레이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평가했고 이에 공감한다.

이들의 차이는 느끼고 못 느낀 것의 차이이다. 아마 이 3인은 분명 김경호가 제 실력이 들어 있는 샤우팅을 참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평이해 보이지만 원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훈의 경우, 자신이 기대했던 샤우팅과 폭발하는 에너지를 못 보여준 것에 대해서 실망한 느낌이다. 김경호 하면 시원스레 내질러줄 것 같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어 보였다. 김경호만의 샤우팅 창법이 '개성이 될 것이냐, 한계가 될 것이냐'의 그의 말을 생각해 봤을 때, 이번 4위 결과가 한계를 개성으로 표현해 내기 위한 포석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장기호 교수가 말한 것 중에 중요한 내용이 있다. '전보다 훨씬 숙성된 목소리와 창법'이라고 했던 부분 말이다. 이것은 옛 김경호의 노래를 들어본 이라면 분명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진성 부분을 뛰어 넘어 흉성과 두성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줄이고 진성을 챙기는 모습. 없던 부분이 생긴 것은 분명 수확이었다.

예전이었다면 분명 전조에서 김경호는 폭발하는 샤우팅을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노래는 첫 경연곡이었고, 편곡을 요하지 않는 노래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낭비되는 샤우팅은 잘 참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잘 참고, 없었던 부분을 보여준 김경호 창법을 장기호 교수는 칭찬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4위가 잘된 이유?

시동만 걸었을 뿐 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김경호는 숨고르기만 했을 뿐, 진짜 자신의 노래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제대로 샤우팅을 하고, 자신의 노래를 뿜어낸다면 그때 비로소 잠재된 힘이 발산될 것이다. 지금 4위는 장기간 레이스를 위한 정비일 뿐. 진짜 모습을 보여줄 때 받을 1위가 그를 돋보이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애써 김경호만의 샤우팅을 숨길 필요는 없어 보인다. 뚜렷한 만큼 타인의 노래도 자신의 음악 색깔로 바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경주마가 단거리를 죽자고 달려 단 한 번 1위하고 끝난다고 잘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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