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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위자료 현실화법'"박경신 교수 "최대 5배 손배, '징벌'로 볼 수 없어"…"이 정도는 언론계가 양보할 사안"
송창한 기자 | 승인 2020.11.02 17:06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단법인 오픈넷 이사)가 언론사를 포함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위자료 현실화법'으로 부르는 게 맞다며 언론계에 '양보'를 부탁했다. 열악한 위자료 제도를 가진 한국에서 손해배상액을 피해액의 최고 5배로 정하는 법안을 '징벌'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5배수 손해배상과 언론의 자유-존경하는 언론인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론인들에게 부탁드린다. 이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그냥 '위자료 현실화법''이라며 "정부가 개떡같이 '징벌적'이라고 지칭했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달라"고 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연합뉴스)

박 교수는 지난 9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상법 개정안)이 민사상 손해배상 액수를 '현실화'하는 정도의 법안이라고 봤다. 해당 상법 개정안은 기업이 고의·중과실 위법행위를 저질러 피해가 발생할 경우 5배 이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무부안은 언론사를 법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있어 언론현업단체들이 반대에 나선 상황이다.

박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목적은 단순히 손해배상 액수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손실의 보상을 넘어서서 피해의 재발을 막으려는 것"이라며 "때문에 고의나 악의로 저지른 피해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가해자의 재산과 수익에 비례해서 적용되는 것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단순히 최대 5배수까지 손배를 늘이고 있으므로 제대로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볼 수 없고 그냥 '배수손배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세계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형벌의 목표인 '재발방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명예훼손에 대해서만큼은 징벌적 손배를 폐지해야 한다는 담론이 꾸준히 이어져왔다"면서 "하지만 이 담론을 이번 상법 개정안에 적용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물론 손해배상 액수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민형사상 커뮤니케이션 규제가 언론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과 다를 바 없고, 특히 명예훼손 형사제도가 왕성한 우리나라에서 이번 배수손배가 위축효과를 대폭 증폭한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왕성한 명예훼손 형사제도'의 대표적 사례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있다. 박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위헌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 촉발 '주범'으로 열악한 위자료 제도를 지목했다. 박 교수는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소식들은 많지만 정작 배상액수를 보면 법이 억울함을 풀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시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상법개정안이 고의나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 피해에 대해서 최대 5배수까지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위자료 현실화의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2013년 대법원 연구용역보고서 '위자료 산정의 적정성에 관한 사법정책연구'(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위자료는 주요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연구보고서는 2009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국내 사지마비 피해에 대한 위자료보다 프랑스는 1.7배, 영국은 3배, 독일은 4.7배, 미국은 37배가 높다고 밝혔다. 액수로만 비교했을 때 사지마비 피해에 대한 한국의 위자료는 8000만원인 반면 프랑스는 3억원, 영국 5억원, 독일 8억원, 이탈리아 15억원, 미국은 70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원래 징벌적 손배 논의를 추동했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니 꼭 징벌적 손배가 아니라고 해서 크게 슬퍼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언론 입장에서 보자면 진짜 징벌적 손배가 아니라서 다행이기도 하다"며 "그러므로 이번 민사손배 현실화법에 대해서 언론자유 위축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현재 상법 개정안에서 명예훼손이나 언론사만 파내는 것은 법기술적으로도 어렵고, 비교법적으로도 선례가 없으며,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로 보여지면서 '의사 대 정부' 싸움같은 소모전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법조계 전체에서 인간적인 민사손배제도의 확립, 사회 전체의 법치주의 복원을 위해 언론계가 이 정도는 양보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며 "기자 여러분들, 민사손배판결 기사 쓸 때마다 얼마나 힘이 빠지는가? '승소'라고 써놓고 쓴웃음을 얼마나 많이 삼켰는지 생각해봐달라"고 호소했다. 또 박 교수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의 민사손배가 법치회복의 수준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거대선을 봐달라"며 "이번 법의 통과로 언론만 골라서 타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각종 징벌적 손해배상법안들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덤"이라고 덧붙였다. 

10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 등 언론3단체가 주최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박 교수의 이 같은 문제의식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을 반대하는 측 일부에서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번 법무부 입법예고안을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볼 것인지 '위자료 현실화법'으로 볼 것인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법무부안을 언론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등을 두고 입장차가 크다. 

지난달 27일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원은 "서구의 많은 국가가 명예훼손을 비형벌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형법에 있고 사실적시 명예훼손도 있다"며 "법원판결에서 위자료 금액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와 함께 논의한다거나, 위자료 현실화 방안을 논의해 시행해 본 다음 논의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런 방식으로 도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도입을 한다면 세밀하게 예외사례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 공직자의 공적사안에 대한 보도, 대기업 관련보도 등에 대한 적용 예외를 두는 등의 장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언론사 오보로 인한 피해에 따른 손배액은 협소하기 때문에 그걸 기준으로는 5배 배상도 실질배상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보다는 오보로 인한 피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언론계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이 법을 통과시키기보다 근본적 대책을 논의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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