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이런 류의 영화에 기대할 것은 딱 하나입니다. 등장인물을 도륙하는 살생의 과정을 얼마나 더 참혹하고 심술궂게 빚어낼 것이냐 하는 것이죠. 만약 시리즈로 이어진다면 영화는 흥행을 염두에 두고 갈수록 점점 더 잔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 실로 놀라운 법이거든요. 1편에서 식칼로 배를 찔렀다면 2편에선 도끼로 팔을 자르고, 3편에선 전기톱으로 머리통을 가르거나 아예 온몸의 내장을 쏟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수위를 높여가야만 관객의 의도적인 요구 혹은 무의식에 잠재한 폭력성을 자극하여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에 해당 팬들을 찾은 <쏘우>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두 시리즈 모두 처음엔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웠던 참신한 영화였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슬래셔니 고어니 스플래터니 하는 건 부수적인 요소였지 주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1편의 성공으로 속편이 쏟아지기 시작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쏘우>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은 공히 본분을 망각한 채로 피와 살과 뼈를 가르는 데만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상이 강해졌죠. 아니,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두 영화가 노림수를 띄울 수 있는 진짜 '본분'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시리즈는 4편으로 끝을 본다더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죽음의 마수가 드리운 이들도 역시 젊은 남녀들입니다. 단체로 버스를 타고 워크샵을 떠나는 중에 한 남자가 전편의 타 캐릭터가 그랬던 것처럼 환영을 봅니다. 이 환영이란 게 어떤 건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곧 들이닥칠 대량살상의 현장이죠. 얼른 눈을 떴더니 아니나 다를까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불안함에 그는 얼른 버스에서 내리고, 또 언제나 그렇듯 뒤를 따라 몇 명이 추가로 내립니다. 그 후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환영에서 본 사고가 일어납니다. 생존자는? 차례대로 죽는 일만 남았죠.
저처럼 이야기를 외면하지 못하는 관객에게 <쏘우>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은 매력이 없습니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다 못해 울고 싶거나, 스트레스로 머릿속이 꽉 찼을 때 휴식처로 삼는 용도 외로는 말이죠. 아, 한번 본 시리즈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반드시 끝장을 보고 만다는 나쁜 습관도 관람을 부추길 수 있군요. 셋 중에 어떤 이유로든 일단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를 보기로 했다면, 그건 웬만큼의 각오를 하고서 어두컴컴한 극장으로 걸어 들어가 좌석에 앉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말했다시피, 어차피 이런 류의 영화에 기대할 것은 딱 하나란 걸 망각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는 단지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미덕일 영화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프닝에 등장하는 다리 붕괴 장면은 꽤 볼만합니다. 역대 시리즈를 통틀어서 스케일 하나만큼은 최고입니다. 미안하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에서 볼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 영화에서는 대부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 영화를 관람하는 태도도 그랬습니다. 다리가 붕괴되는 장면에서도 별로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 긴박한 순간에 여자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철골을 건너는 걸 보면서는 차라리 황당할 정도더군요.
결말은 그나마 신선했습니다. 어떤 도시에 대한 얘기가 나오길래 설마 했는데 절묘하게 이야기를 이어붙이더군요. 이게 종말의 선언일지 재시작의 예고일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론 <쏘우>처럼 <파이널 데스티네이션>도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3D로 제작하고도 북미에서 시리즈 최저의 수입을 기록한 것만 봐도 그게 현명합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