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방송된 KBS 1TV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 전남 광양 섬진강 편의 한 장면이다.

한 남자가 섬진강 위에 배를 띄우고 그물을 끌어 올린다. 재첩과 참게, 누치, 잉어, 향어가 많이 올라온단다. 배 안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도 두 눈을 껌벅이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직장 다니다가 매일같이 18년이라는 세월을 왔다갔다 하다가 안다닌다고 생각을 해봐요. 모르고 자다가 일어나서 회사 정문에서 출입증 없으니까 못들어가니까, 제가 정리해고 됐는데요. 그제서야 생각나서 돌아오고..."

그는 말을 다 잇지 않고 담배 연기만 강 위로 흩어놓았다. "강 위에선 구름도 마음도 편안하게 흐르고, 내려놓은 시름도 천천히 흘러간다." 섬진강의 따스한 품은 오늘도 척박하고 야윈 마음을 다독여준다.

밭에선 한 여자가 땅을 매만지고 있다. 가장 볕이 잘 뜨는 땅인 전남 광양은 유난히 따스하고 긴 햇살 덕에 봄도 빠르다고 한다. 보풀보풀 부드러운 흙에 손을 넣고 밭을 매는 아낙의 등 위로 봄 햇살이 어느 새 따사롭게 내려앉는다.

섬진강변에 자리한 매화마을엔 정갈하게 자리잡은 2천여개의 장독이 "세월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이 곳에선 오고 가는 계절들이 긴 침묵과 기다림, 인내 속에 천천히 머물다가 또 그렇게 흘러간다. "긴 세월 동안 내면을 삭힌 깊은 맛은 나도 남도 모두 이롭게 하는" 힘을 품게 된다.

"오랫동안 이 항아리에 담아놓고 보니까 얼마나 좋은가 하면, 우리 사람은 열달을 애기를 가지면 힘들다 그러죠. 이렇게 많은 50년 이상 된 항아리에다가 가득 채워놓으면 춥다 소리를 하나 덥다 소리를 하나 너무 고마운 게 우리 조상의 지혜대로 만들어진 항아리니까..."

이날 방송된 '영/상/포/엠 내 마음의 여행'에선 전남 광양시의 봄 풍경이 한편의 수필처럼 그려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음악, 좋은 글귀와 내레이션이 어우러지고 그 안에 자리잡은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인다. 반짝이는 섬진강의 처연한 물빛처럼 마음이 일렁거린다.

"지나온 봄이 서러웠다 한들 지금 느끼는 이 봄보다 더 이상 마음을 흔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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