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가 더 나쁠까?

요즘 드라마는 악녀 타이틀전을 연상시킨다. 좀 유식하게 '팜므파탈'로 표현되는 그녀들은 유사 유괴행위, 계층갈등 등을 무기로 서로 '나쁜 *'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MBC <천하일색 박정금>의 첩출신 안방마님 '사여사' 이혜숙은 의붓 손자 실종사건에 핵심 키를 쥐고 있다. SBS <행복합니다>의 재벌 사모님 '이세영' 이휘향과 KBS 2TV <엄마가 뿔났다>의 속물 교양녀 '고은아' 장미희는 편견에 사로잡힌 유한마담이다. MBC <그래도 좋아>의 '명지' 고은미는 그 죄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 KBS '엄마가 뿔났다' ⓒKBS
출연자 중 나쁜 역할이 이들 뿐은 아니지만, 악행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언제나 그녀들이다. 사실 드라마의 긴장도를 배가시키는 이들의 악행 무한도전은 시청률을 부양하는 원천의 힘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각 드라마의 시청률은 20%를 기준으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주말 안방극장을 혼전 양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3편의 주말 드라마는 지난 2월 초 봄 개편에 맞춰 각 방송사에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작품들이다. 우선 각광을 받은 쪽은 KBS <엄마가 뿔났다>. 지난 2월 2일 첫 방송된 후, 지난 9일 MBC <천하일색 박정금>과 SBS <행복합니다>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판세는 '박빙'으로 돌아섰다. 그 주역은 주연의 호연과 더불어 이들 조연의 극악스러움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초지일관 '나쁜 짓'을 일삼는다. 주변의 눈치쯤엔 미동도 하지 않고, 비난쯤은 웃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이들의 악행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모두 자식 탓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사후 지옥행'은 불사할 태세다. 사여자나 이세영·고은아의 기행은 자식의 삶을 보위하려는 열정이 담겨있다. 손가락질은 하지만, 그녀들의 행동을 눈여겨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SBS '행복합니다' ⓒSBS
선조들 말씀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정말 괴로운 것은 그 '역지사지'의 함정에서 누구든 스스로도 헤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때 그녀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그 '나쁜 여자들'의 이미지가 당당함으로 다가온다. 그녀들은 누구랄 것 없이 성공을 꿈꾼다. 언제나 독점하던 남성들의 성공신화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그녀들은 전통적인 여성상도 뒤집어 놓았다. 순종과 복종은 개나 물어가야 할 헌 가치가 됐다. 이 나쁜 여자들 중 게으른 이는 없다. 고민하지 않는 이는 없다. 수동적인 이는 없다. 도전하지 않는 이는 없다. 세상을 바꾸는 중심에 스스로 서고자 한 이들은 '사여자'요 '이세용'이요 '고은아'다. 결국 드라마는 '권선징악'의 고전적 법칙을 벗어나서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이들이 그릴 '미완의 혁명'은 여자들의 삶에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를 응원하라도 하듯 한 여성 사이트는 '여성이 알아야 할-신악녀 10계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말 속에는 △동료들에게 사랑받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싸움닭이 되어라 △부탁하지 말고 요구하라 △자책하지 말라 등 드라마 속 그녀들과 닮은 꼴의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그녀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의 행동엔 승자독식이라는 독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나쁜 여자들의 도전이 남성권력이 주도해오던 승자독식에 대한 반기로 머무르고, 남자들의 방식을 따르는 방식으로만 나간다면 그 역시 퇴보일 수밖에 없다.

"아줌마들!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시면 어떨까요?"

'리포터'보다는 '포터'가 더 많아 보이는 세상, '날나리'라는 조사가 붙더라도 '리포트'하려고 노력하는 연예기자 강석봉입니다. 조국통일에 이바지 하지는 못하더라도, 거짓말 하는 일부 연예인의 못된 버릇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렵니다. 한가지 변명…댓글 중 '기사를 발로 쓰냐'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 데, 저 기사 손으로 씁니다.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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