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27일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토론회에서 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미디어언론상생TF단장)은 "이 토론회는 한 마디로 '무효'다. 국민정서와 정반대되는 결론을 짜맞추는 듯한 토론에 성격 같아서는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며 "언론의 자유는 무한자유가 아니다. 책임이 따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 주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토론회에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노 최고위원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정부도 의도를 가진 게 아니다. (법무부 안은)민주당의 법안도 아니고 도입을 한다면 고려할 법안 중 하나일 뿐"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찬반토론을 하고, 언론 현실에 비춰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리에 나섰다.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할 순 있지만 이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노 최고위원은 "이런 자리에 반대하는 사람만 모아놓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보도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짜뉴스"라며 "그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언론단체의 토론회라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토론"이라고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기자협회는 결코 편향적으로 섭외하거나 토론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 저도 (발제자·토론자들이)어떤 입장인지 모르고 왔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법무부가 지난 9월 28일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상법 개정안의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비판하는 발제와 토론이 주를 이뤘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은 50인 이상의 피해자가 집단소송을 청구할 수 있고, 기업이 고의·중과실 위법행위를 저질러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의 5배 이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에 따르면 상법상 회사인 언론사도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대상이다. 현재 집단소송제는 증권분야, 징벌적손해배상제는 제조물책임법 등 일부 법률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이번 토론을 주최한 언론3단체는 9월 29일 공동성명을 내어 법무부 입법예고안을 '언론의 자유를 흔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규정하고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권력 감시가 본연의 역할인 언론을 상대로 제조물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언론의 감시 기능과 국민 알 권리를 위축시키는 과잉규제로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 주장은 크게 ▲언론보도에 대한 고의·중과실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한국의 경우, 영미법제와는 달리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 언론·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형벌 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점 ▲언론보도행위를 상행위로 규정해 언론관계법이 아닌 상법에서 규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기자의 취재·보도행위 위축소지가 크다는 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성우 교수는 "미네르바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공익에 대한 거짓말은 판단할 수 없다며 정보통신망에 가짜뉴스를 올렸다고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이어 "언론에 대한 규제가 과잉하다. 명예훼손, 모욕 외에도 선거시기 거짓말은 처벌한다"며 "영미권에 비해 처벌규정이 강한 편이다. 더욱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한다. 우리나라 형벌 수준은 형벌의 성격을 가지는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이미 제한수준이 높다"고 했다. 또한 지 교수는 "집단소송법을 같이 보면 언론사 사주는 언론을 운영하지 못할 것 같다"며 "50명이 집단소송을 해서 이겨버리면 나머지 모든 국민들이 손해배상을 받게 된다. 언론사 운영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이 같은 점을 엮어볼 때 가짜뉴스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 국가기관이 가짜뉴스 낙인을 찍고, 법원이 판단하고, 전 국민이 언론사에 대해 소구권을 갖는 것"이라며 "도대체 이 법을 만들면서 언론의 자유와 우리나라 현실을 알고 만든 것인지 의문이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알고 발의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지 교수는 "언론관계법도 아닌 상법으로 언론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포괄적 입법을 시도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 기본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형식"이라고 했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찬성하면 개혁이고, 반대하면 반개혁이라는 프레임은 위험하다"면서 언론에 대한 이중처벌과 '선의의 오보'에 대한 처벌을 우려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는 언론중재법과 민형사상 소송으로 언론에 대한 피해구제책이 비교적 잘 돼 있고 처벌 수위도 높은 편"이라며 "기업을 비판한 기자가 월급을 가압류 당한 사례도 있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면 이중처벌로 위헌적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지금의 형법만으로도 중과실은 실수에 의한 오보가 될 수 있다"며 한 신문기자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의혹보도로 재판을 진행중인 사례를 소개했다. 김 회장은 "이 기자는 당시 문화계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활동이 뜸했던 한 예술작가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대행 행사를 많이 받았다"며 "기자로서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만한 기사였지만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피해자는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수천만 원의 손배소와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언론사는 1500만원을 배상했고 얼마 전 검찰은 징역형을 구형했다. 이 기자가 예술가에 대해 악의성이 있었겠냐"고 물었다.

김 회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취재와 보도도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대변하는 게 언론의 본령인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있으면 약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해도 소송제기 우려로 취재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됐을 때 기자들은 제보가 들어와도 취재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데, 4년 전 국정농단 사태 때 권력감시가 본령인 언론이 위험소지를 감수하면서 취재에 나설 수 있었을까"라며 "언론이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김 회장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상법에 규정돼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며 "기자들이 김영란법을 적용받는 이유는 공적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사원이라며 상법으로 규정한다. 납득할 수 없고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라는 이런 소모적 논쟁은 접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김 회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거론 배경에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점에서 기자들과 언론이 자성하고 성찰하는 자정작용이 필요하다"며 언론사 윤리강령 강화, 언론사 팩트체크 활성화, 적극적인 반론·정정보도, 명확한 출처표기 등의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 등 언론3단체가 주최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타당한가'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이어진 토론에서 최정암 매일신문 서울지사장은 "국민 대다수가 정부입법안에 찬성하는 쪽이라 걱정이다. 기자들이 작정하지 않는 한 악의적 보도를 할 수 있는 언론시스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지사장은 "대기업 갑질로 인해 피해를 보는 중소대리점주가 있을 때 언론은 패해를 입은 사람들의 증언에 의존해 보도를 할 수밖에 없는데 대기업이 입을 다물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피해자 목소리에 의존해 기사를 쓰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부여당의 의도는 비판적 언론에 대한 재갈물리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지세력 결집과 이탈방지에 목적이 있지 않나"라며 "언론계도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원은 "서구의 많은 국가가 명예훼손을 비형벌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형법에 있고 사실적시 명예훼손도 있다"며 "그럼에도 부가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한지 검토되어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가짜뉴스 억제에 효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져야 한다"며 "겁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연구를 보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실증 결과가 많이 엇갈린다. 법원 판결에서 위자료 금액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했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와 함께 논의한다거나, 위자료 현실화 방안을 논의해 시행해 본 다음 논의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런 방식으로 도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도입을 한다면 세밀하게 예외사례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 공직자의 공적사안에 대한 보도, 대기업 관련보도 등에 대한 적용 예외를 두는 등의 장치를 두지 않는다면 위험하다"고 제언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두 발제자의 주장에 동의한다면서도 현재 오보나 가짜뉴스의 확산속도가 과거와 달리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손해배상제도가 실효성 있는 규제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양 변호사는 "언론사 오보로 인한 피해에 따른 손배액은 협소하기 때문에 그걸 기준으로는 5배 배상도 실질배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보다는 오보로 인한 피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양 변호사는 "예전과 달리 플랫폼을 통해 피해확산 속도가 빨라졌는데 대책인 정정·반론보도는 이런 플랫폼이 생겨나기 이전의 제도"라며 "이런 것에 대한 논의가 없다. 피해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먼저 마련해보고 안 되면 손해배상을 손대야 한다. 언론계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이 법을 통과시키기보다 근본적 대책을 논의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웅래 최고위원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개혁이냐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고, 우선 민생법안이라고 생각한다. 가짜뉴스 때문에 연예인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있냐"며 "정치권과 언론의 관계만이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굉장히 불편하게 볼 수 있지만, 결코 언론에 대해 우리 정치권이 불편하게 하려 한다거나 고의적으로 추진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노 최고위원은 "결국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인데, 어떤 면에서는 기존에 잘하는 언론이 가짜뉴스로 싸그리 매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가짜뉴스를 제어하기 위해 입법하면 결국 선제적 예방효과와 억제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타깃은 언론이 아니라 가짜뉴스"라고 했다.

노 최고위원은 "형법에 명예훼손 등이 강한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기존의 법과 제도를 통한 피해구제와 처벌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이라며 "예방효과와 억지력 제고 장치가 필요하지 않겠나. 언론의 건강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가짜뉴스에 책임을 묻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안전장치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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