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대구구장에서 펼쳐졌던 롯데와 삼성의 시즌 19차전. 정규시즌의 맞대결 마지막 경기였던 순간에 든 생각은 참 여러 가지 것들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었습니다. 경기를 보고 있지만, 경기와는 무관한 것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중계를 하고 있지만, 중계와는 무관하게 글이 쓰고 싶었죠.

경기장을 향할 때부터 내내 복잡했던 마음과 뭔가 내뱉고 싶었던 단어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비슷한 크기로 함께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것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경기장을 나서야 했는데요. 하루가 지난 오늘도 비슷한 상태, 마음속에 숙제가 남겨진 것처럼 두 팀의 시즌 마지막 대결은 여러 가지 생각을 만들고 끝났습니다.

9승 1무 9패

올 시즌 팀간 승패에서 이토록 완벽한 동률을 이룬 팀은 현재까지 없습니다. 삼성과 롯데, 1등과 2등만이 기록한 전적. 정규시즌이 모두 끝나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시즌 전적은 결코 쉽지 않은 결과입니다.

지난 화요일에 기록했던 0대 5의 무기력한 패배에도 불구, 경기초반 1회부터 6점을 먼저 뽑으며 8대 5의 승리를 거둔 삼성. 6개의 안타로 다섯 점을 뽑는 동안 9개의 안타에도 무실점을 기록한 집중력에서, 고원준이 일찍이 무너진 다음날의 패배, 롯데. 두 팀의 마지막 맞대결 2연전은 경기 자체의 긴장감보다 더한 시리즈의 긴장감을 보여줬고 사이좋게 1승씩을 나눠 가집니다.

서로를 상대로 한 대결에서는 늘 활발한 타격을 보여줬던 두 팀, 4월 6일 1대0 경기가 있기도 했습니다만.-대구경기, 삼성 승- 기본적으로 맞대결마다 지는 팀도 3점 이상을 뽑고, 한 팀이 10점 이상 뽑는 경기도 5번이나 있던 활발했던 타격전의 연속. 그만큼 두 팀의 포스트시즌 맞대결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커집니다.

과연 두 팀의 2011년 승패가 가을야구, 한국시리즈 같은 큰 무대로 결판이 날까요?

원년 구단의 이름으로

23번의 가을야구를 경험한 삼성에게도 롯데는 비교적 자주 만난 상대 중 하나입니다. 특히 긴 역사에 비해, 9번 포스트시즌만을 경험한 롯데에게 삼성은 가장 자주 만난 대단히 특별한 상대라 할 수 있습니다.

삼성과 가을야구의 길목에서 만난 건 모두 6번, 4번의 준PO와 한 번의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6차례. 시리즈의 승패만을 보면 3승 3패로 이것도 동률, 전 경기 승패를 봐도 삼성이 13승1무12패로 단지 1승만을 앞설 뿐입니다. 첫 우승을 차지했던 84년과 역대 가을야구 명승부로 꼽히는 99년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롯데가 시리즈 승자가 됐다는 겁니다.

원년 팀으로 그 이름까지 그대로 지킨 두 팀은 역사만큼이나 자존심 넘치는 맞대결을 펼쳐왔습니다. 실제로 2005년부터 두 팀은 늘 시즌 전적에서 근소한 차이를 보였고, 롯데가 앞서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거.
가을야구에서 만났던 가장 최근 기록인 2008년은 삼성이 롯데에게 3연승으로 준PO에서 가볍게 승리를 거뒀는데요. 라이온즈와 자이언츠, 모기업까지 변함없는 이 둘의 맞대결이 또다시 변함없는 결과로 돌아올지,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떠난, 두 명의 레전드

한국야구, 투타를 대표하는 2명의 레전드를 뽑으라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아마 2011년 가을엔 모두가 예외 없이 꼽을 2명의 스타.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난 최동원 감독과 장효조 감독이 그 주인공입니다.

롯데와 삼성의 대결에 이 두 명의 레전드가 떠오르는 건, 바로 이 두 팀과 묘하게도 얽혀있는 스타들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에서 시작해 삼성 2군 감독으로 마지막까지 야구장을 지켰지만, 선수 시절 롯데에서 유니폼을 벗어야 했던 故장효조 감독. 반대로 롯데를 대표하는 선수로 팀의 첫 우승을 이끌고도 결국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삼성에서 정리했던 故 최동원 감독.

어제 대구구장에서 공교롭게도 만난 두 팀은 이 두 분과 여러 인연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유니폼을 서로 바꿔 입은 듯 소속팀을 떠나 상대팀에서 선수 시절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했던 2명의 레전드. 아쉽고 안타까운 역사의 흔적이기도 한, 고향팀을 떠났던 역사와, 2011년같은 해,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나는 현재의 일까지, 두 분의 레전드를 떠올리며, 롯데와 삼성의 맞대결을 보는 마음은 왠지 모를 공허와 허탈이 흐릅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여러 생각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던 어제, 대구구장. 영남 지역을 대표하는 팀이자, 프로야구 원년의 기록을 담고 있는 팀으로 두 팀이 과연 이 가을 다시 한 번 만날지도 궁금한 대목이죠. 그리고 올 가을 야구를 보는 재미가 돼주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야구의 가을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다시 빌며. 롯데와 삼성의 야구역사가 이어지는 공간에 그 현실과 과거의 기억의 공존도 함께하는 듯한, 그런 어제 경기였습니다.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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