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더불어 한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이 지병인 대장암으로 14일 우리 곁을 떠났다.

현역시절 최고의 투수로서 최동원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은 내용들로 빼곡하다.

경남고 2학년이던 1975년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 이듬해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잡아냈던 이야기나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했던 1981년에는 최우수선수(MVP)와 다승왕, 최우수신인상을 석권했던 일.

특히 1983년 프로야구 롯데에 입단한 이후 1984년 페넌트레이스에서 27승13패 6세이브라는 기록으로 정규리그 MVP로 뽑히며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견인한데 이어 삼성 라이온스와 펼친 한국시리즈에서 5경기에 등판해 혼자 4승(1패)을 따내 한국 프로야구사에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남겼다.

프로야구가 30년이 지나오는 동안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3완투승)을 올린 투수는 아직까지도 최동원이 유일하다.

1984년 한국시리즈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필자도 마지막 7차전에 등판한 최동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경기 중계를 맡았던 하일성 해설위원이 1회 수비를 위해 연습투구를 하던 당시 최동원의 투구동작을 분석하며 그가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임을 이야기했던 내용이나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그라운드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동원이 '실컷 자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말했던 장면 모두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처럼 롯데에 있어 최동원의 존재는 그가 팀을 떠난 지 22년이 지난 지금가지도 부산 팬들의 뇌리에 너무도 강하게 각인되어 있으며, 그가 롯데를 떠난 뒤 삼성 라이온스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활약했지만 야구팬들의 뇌리 속에 최동원은 언제나 '롯데맨'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롯데맨'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53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에게나 부산 팬들에게나 모두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최동원이 롯데 시절 달았던 등번호 11번을 롯데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비록 최동원이 1988년 프로야구 선수회 결성을 주도하다 198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며 롯데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지 못했지만 그가 롯데에 기여한 눈부신 업적이나 최동원이라는 이름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감안할 때 롯데가 최동원을 감싸 안아 영구결번을 지정해 주는 것이 롯데가 최동원을 추모하는 뜻을 확실히 나타낼 수 있는 핵심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다.

아직 롯데는 특정 소속 선수의 등번호를 영국결번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다. 기아 타이거즈가 선동렬의 배번이었던 '18', 두산베어스가 박철순의 '21', 삼성 라이온스가 이만수의 '22', 한화이글스가 장종훈의 '35', LG트윈스가 김용수의 '41'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롯데 장병수 대표는 14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동원은 영원한 롯데맨이다. 롯데의 불세출의 스타이자 영웅이다. 최고의 예우를 해줘야 한다"말했다.

장 대표는 이어 "갑작스럽게 소식을 접한 상태지만 빠른 시일 내에 그를 추모하는 방법을 결정하겠다"며 "명예감독으로 임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했다. 또 남은 홈 경기 중 하루를 '최동원 데이'로 명명해 그를 기리는 행사를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그의 생전 활약을 담은 영상을 방송하고 그를 추억하는 행사를 하며 부산팬들이 롯데의 영웅에 고마움을 갖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의 언급에는 일단 최동원을 '롯데의 레전드'로 인정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영구결번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보여 진다.

사직구장 한 켠에 최동원이라는 이름이 박힌 등번호 11번의 유니폼이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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