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비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의자와 계백 무리들. 반전이 도사리고 있음은 시청자들만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책 읽어주는 드라마도 아니건만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를 위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계백>은 심한 엇박자를 내며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계백은 역사서를 투박하게 읽어주는 드라마인가?

드라마는 극적인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런 극적인 과정들이 사라진 드라마는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예측가능한 극적인 상황들은 극적일 수 없다는 것을 <계백>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간의 여백을 메우지 못하고 툭툭 끊기는 이야기는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고 이야기의 재미를 놓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13회부터 사택비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계백은 은고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되며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망나니 같았던 그가 품성까지 갖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은고의 사랑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이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나이가 어느 날 갑자기 미래를 약속한 은고에 의해 완벽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뭔가를 심하게 건너뛴 느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13, 14회의 핵심은 은고였습니다. 은고가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풍등과 연에 귀환한 포로들의 문제를 순식간에 알리는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은 은고의 지략에 감탄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사택비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택비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녀의 여동생이 된 은고. 그렇기에 그녀는 <계백>에서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존재입니다. 차라리 <은고>라는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백>의 핵심은 은고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은고의 역할은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고 그녀의 역할에 따라 드라마의 재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복수하려는 자와 복수의 대상이 되는 자, 그 중간에서 그 모든 것을 조절하는 은고야말로 드라마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송지효의 연기력이 모자라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캐릭터 잡기에는 어느 정도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송지효가 맡은 은고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계백>으로서는 어느 한 인물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작가와 연출자의 의도가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현재의 등장인물에 만족하고 재미를 느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계백>이 피디의 전작 <선덕여왕>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묘하게 비슷한 느낌들을 이어가지만 전작을 넘어서지 못하는 아류라는 느낌만 전해주는 방식의 유사성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근홍 피디의 대표작엔 <주몽>, <이산>, <선덕여왕>, <짝패> 등이 있습니다. MBC 사극의 계보를 새롭게 이어가고 있는 대표 주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월화 드라마의 전통을 지켜가야 한다는 막중함도 함께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대규모 전쟁 장면을 민망하게 만드는 것은 제작비와 연결되기에 연출자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연출자라면 한정된 제작비에 어떤 방식으로 의미 있는 장면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했겠지요. 더욱 사극의 필수 요소인 전투 장면들을 허망하게 잡아내는 것은 여전히 아쉽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나마 <계백>을 버리지 못하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인간을 바꾸는지 인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처럼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과정들은 흥미롭습니다.

철저하게 권력암투가 그려지고 있는 <계백>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정치 현실과 비교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게 비난의 화살이든 어쩔 수 없다는 동정론으로 이어지든 말입니다. 사택 가문과 연씨 가문이 보여주는 정치는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의 패거리 정치를 엿보게도 합니다.

성충과 흥수가 사택 가문을 몰아내는 거사에 시큰둥하며 "귀족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는 식의 자조섞인 대사는 그 놈이 그 놈인 우리 시대의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의자의 조력자이자 그를 왕으로 만드는 중요한 인물들을 통해 작가나 연출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정치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계백>의 경우도 권력을 잡으려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 안에 여러 인물들의 사랑들이 양념처럼 들어서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권력을 잡으려는 인간들의 모습만이 등장할 뿐입니다. 이미 절대 권력을 가진 사택비와 그에 반하는 권력을 쥐려는 의자의 대립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자 재미의 가장 큰 축입니다.

13, 14회가 은고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구축해내는 과정이었다면, 15, 16회는 사택비의 존재감을 재확인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을 공격해오는 무왕을 상대로 완벽한 반격을 준비한 사택비의 지략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쓰러져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그녀가 사전에 자신의 아버지이자 대좌평인 사택적덕을 이용해 반대파를 모두 숙청하는 과정은 사택비의 존재를 명확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꼼짝없이 사택비의 계략에 넘어가는 순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계백에 의해 의자가 반역자로 몰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사택비의 전략 전술은 대단하게 다가왔습니다. 무왕마저 종이호랑이로 만들고 자신의 정치적 가치만 더욱 높게 만든 사택비의 존재감은 권력을 지키려는 자와 차지하려는 자들 간의 암투가 앞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이어질 것인지를 예측하게 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지만 문제는 이를 표현하는 과정과 방식이 문제입니다. 툭툭 끊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은 투박합니다. 중요한 상황에서 죽음을 모면하고 대의를 모을 수 있게 해주는 극적인 상황이 그저 우연히 엿듣는 것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한지 제작진들은 알고 있을까요?

만드는 이들에게는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식이겠지만, 그들이 그만큼 노력하지 않는다면 시청자들에게는 그 과정이 무척이나 허무하게 다가올 뿐입니다. 포로들과 반란을 일으키고 도주하는 과정이나, 사택비를 제거하기 위한 반란에서 목숨을 구하는 과정 모두 허무하기 그지없는 것은 연출자와 작가의 나태함이 원인일 것입니다.

충분한 재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듣는 이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능력이 부족한 '책 읽어 주는 사람'처럼 드라마는 볼품없는 이야기 전개로 식상함과 함께 극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몇몇 등장인물들 역시 <계백>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감정 없는 연기톤도 문제이고 웃기는 장면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흐름을 역행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웃음 코드는 실소를 머금게만 합니다.

은고와 사택비의 지략 대결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드라마는 그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피를 나누며 의형제 결의를 다하는 의자와 계백, 성충과 흥수. 그들의 결의로 사택비에 대한 반격과 의자 왕 만들기는 본격적으로 이어지겠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투박한 이야기 전개 과정은 아쉽기만 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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