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이십 대에 역학을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역학에 빠져 매일 책을 보며 사주풀이를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밌었고, 살아온 삶을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신나서 사람들의 사주를 받아 종일 사주를 풀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주풀이를 해준 사람들은 주위 친한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기대에 차 사주를 나에게 넘겼고, 나는 그들이 살아온 과정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사주를 풀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멋진 배우자를 만날 거야, 부자가 될 거야, 근사한 직업을 가질 거야, 좋은 집으로 이사하게 될 거야. 사주를 풀어보면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차곡차곡 재산을 늘려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특정한 직업 없이 직업을 바꾸며 사는 사람도 있었고, 공부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실제로 돌아오는 몫이 형편없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지인의 친구, 가족으로 대상이 넓어지면서 삶의 이야기는 더 다채로워지고 깊어졌다. 뜻하지 않게 가족과 이별을 한 사람,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하는 사람, 결혼운 자체가 없는 사람, 하는 일마다 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지독한 삶의 질곡에 갇힌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많은 사람의 사주를 풀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언니 친구의 사주를 풀어준 적이 있었다. 친구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왔다. 어렵게 공부하고, 학위와 자격증을 취득해 돌아왔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도 컸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친구도 잔뜩 기대하며 사주풀이를 부탁했다. 친구는 평범하게 사는 운명이었다. 열정적으로 서로 사랑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사랑받으며 돈 걱정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주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주풀이를 전달했다.

언니에게 물었다. 말해줬어? 뭐래? 언니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뭐 그냥 그래.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친구는 사주풀이를 듣고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했다고 했다. 평범하게, 평범하게 산다고!! 내가 왜! 그런데 친구는 내가 사주를 풀이한 대로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다.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으며, 예쁜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집을 갖고 돈 걱정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썩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

사주를 풀어 달라는 부탁이 많아지면서 고민이 생겼다.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 감당할 수 없을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사람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가였다. 이들의 사주를 보고 있으면 나도 고통스러웠다. 결국 사주풀이를 그만두었다.

당신은 평생 고독하게 살 것입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나무들이 보이세요?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요.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들어차 있는 나무요. 이곳에 당신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군요. 고독하게 삶이 끝나겠어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보다 더 나쁜 사주도 있었다. 도무지 전달할 수 없는,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사주도 있었다. 남의 인생을 엿보는 일이 쉽고 재밌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알았다. 내 삶을 만족하며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어떤 상담이든(아파서 상담을 받으러 병원을 방문하든, 학업 상담을 받든, 인생 상담을 받듣), 상담하러 갔을 때 여과 없이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으며, 좋은 상담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극단적인 예지만 상담자가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오늘은 즐겁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당신을 위해 시간을 써보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 연속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 운명입니다. 곧 좋은 운이 당신의 삶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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