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LG는 9월 들어 2승 7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4위 기아와는 6.5게임차로 벌어졌지만 6위 두산에 1게임차, 7위 한화에 3게임차로 쫓기는 신세입니다. 가장 먼저 30승 고지에 도달하며 선두를 위협하던 6월초는 아스라이 먼 옛날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LG는 6월 11일 군산 기아전 승리까지 34승 24패로 승률 0.586, 승패 마진 +10에서 9월 11일 대구 삼성전 패배로 54승 1무 60패, 승률 0.474, 승패 마진 -6까지 내려왔습니다. 꼭 석 달 동안 LG가 거둔 성적은 20승 36패 1무, 승률 0.351로 처참합니다. 부상 선수가 속출했다고는 하지만 LG 박종훈 감독이 얼마나 시즌 운영에 미숙했는지는 까먹은 승패 마진 -16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박종훈 감독의 미숙한 시즌 운영은 버리는 경기와 잡아야 할 경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반 년 동안 133경기를 치르는 마라톤과도 같은 페넌트 레이스에서 1위 팀조차도 시즌의 1/3은 패배할 수밖에 없으며 꼴찌 팀조차도 1/3은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남은 1/3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패배하는 경기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선발 투수가 무너져 경기가 기울면 패전 처리 투수를 기용하고 주전 포수와 베테랑 야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여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며 숨을 고르는 것이 요구됩니다. 페넌트 레이스 133경기를 모두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매 경기마다 승리하겠다고 필승 계투진을 소진하고 베테랑 주전 선수들을 혹사시키면 결국 잡아야 할 다른 경기도 승리하지 못하게 됩니다. 야구계에서 널리 쓰이는 ‘지는 경기를 잘 져야 한다’, 혹은 ‘버리는 경기를 잘 버려야 한다’는 격언은 이 같은 시즌 운영의 중요성을 압축한 것입니다.

▲ 7월 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두산 경기. LG 박종훈 감독이 3회초 1사 2,3루 상황에서 포수 조인성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박종훈 감독은 이기는 경기와 버리는 경기의 차별을 두지 않고 매 경기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습니다. 고졸 신인 임찬규는 특별한 보직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등판하고 있습니다. 9월 11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선발 유원상이 1회말 4실점하자 2회말부터 임찬규가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9타자를 상대로 1홈런 포함 4안타를 허용하며 3실점했습니다. 패전 처리인지 뒤집을 가망성이 있는 경기에서 추격조로 활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용입니다. 임찬규의 등판 경기 수는 8개 구단 투수 중 4위인 58경기입니다. 아직 성장이 완료되지 않은 만 18세의 어린 선수에게 연투 및 혹사가 선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박종훈 감독만 모르고 있습니다.

등판 경기 수로 따지면 당당 1위가 이상열입니다. 이상열은 72경기에 등판해 2위 롯데 임경완의 62경기보다 10경기나 많은 압도적인 1위입니다. 내년이면 만 35세가 되는 이상열이 과연 2012 시즌에 제 기량을 보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스럽습니다. 팀 내 유일한 좌완 불펜 투수인 이상열이 내년 시즌 가동될 수 없다면 LG 불펜진의 약화는 불 보듯 명확합니다.

임찬규보다 3경기 적은 55경기에 등판해 등판 경기 수 8위인 김선규와 마무리 앞에 등판하는 프라이머리 셋업맨인지 뒤지고 있는 경기에 등판하는 추격조인지 알 수 없는 한희의 혹사 또한 우려스럽습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갔으며 4일 휴식 후 등판이라는 무리한 일정을 고집스럽게 소화하다 어깨 부상과 구위 저하에 시달리는 박현준과 주키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혹사는 투수진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36세로 노장 소리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조인성은 백업 포수의 뒷받침 없이 거의 전 경기를 소화하다 체력이 떨어져 부진하자 지난 달 2군행을 통보받았습니다. 2년 전 박종훈 감독의 취임 당시 무한 신뢰를 받으며 2010 시즌 28홈런 107타점으로 생애 최초 골든 글러브를 손에 쥔 조인성은 최근 부진으로 인해 박종훈 감독으로부터 ‘프로는 결과로써 말한다’는 힐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만일 조인성이 백업 포수와 적절히 교체 기용되며 체력을 아꼈다면 여름 이후 결정적인 상황에서 부진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무릎 수술을 받은 작은 이병규에 대해 박종훈 감독은 ‘아직 올라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하기 싫은 것 아니냐’며 ‘누구나 부상은 있지만 이겨내야 한다’며 정신력을 강조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복귀를 다그친 감독을 무시할 수 있는 선수는 없습니다. 결국 작은 이병규는 8월 넷째 주 넥센과의 잠실 3연전에 1군에 복귀해 활약하고 있지만 주루 시 절룩거리며 불편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수술 부위인 무릎의 재활이 완료되지 않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유망주를 키우지 못하기로 정평이 난 LG 2군에서 드문 성공 케이스이며 장래 LG의 4번 타자까지 기대되는 작은 이병규이지만 자칫 무리한 기용으로 사그라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시즌 내내 ‘촌놈 마라톤’ 하듯 숨 가쁘게 달려온 박종훈 감독은 포스트 시즌 진출이 물 건너 간 현재까지도 선수 혹사라는 무의미한 전력 질주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맨십을 준수하는 위대한 감독으로 평가받기 위함인지, 아니면 작년 시즌 자신이 이룩한 업적인 6위보다 더 높은 성적을 거둬 내년 시즌에도 LG 감독직을 유지하기 위함인지 알 수 없으나, 무차별 선수 혹사를 통해 혼자만 살고 팀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위험하며 이기적인 발상을 지닌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LG가 8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신임 감독이 취임해도 전임 감독의 투수 혹사로 인해 부상을 입은 선수들을 제외하고 처음부터 새판을 짜야했기 때문입니다. 박종훈 감독이 지나간 자리에 풀 한 포기 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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