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박찬옥 감독의 <파주>를 보고 난 뒤에는 몇 개의 연관검색어를 떠올릴 수 있다. 오프닝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안개’에서는 당연히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 정확한 지리정보를 앞세우지만 사실 장소를 특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과 서울 변두리 재개발 지역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에서는 이창동의 <밀양>, <초록물고기>. 길고 긴 비극의 시작은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 마지막으로 형부를 사랑하는 서사적, 감정적 영향력 아래에서는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

물론 제작시점에 따라 영향을 받았거나, 후대에 나왔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작품도 있다. 중요한 건 이렇게 기시감이 드는 경우는 표면적인 설정만 얕게 이식해서 얼룩덜룩 엮은 끔찍한 혼종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단 점이다. 그러나 <파주>는 앞선 나열한 쟁쟁한 작품들을 좋아했다면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지만,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독창성을 유지하고 있다. <파주>에서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은 있어도 <파주> 같은 작품은 아직 없다.

박찬옥 감독 영화 '파주'

꿈의 파주, 현실의 파주

운동권 학생인 중식(이선균)은 선배의 집에 피신 중이다. 선배는 수감 중인데 공교롭게도 선배의 부인은 중식의 첫사랑인 보경(정자영)이다. 어느 날, 둘이 우발적으로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잠시 한눈을 판 순간 보경의 갓난아이가 끓는 물을 덮어쓰고 크게 화상을 당한다.

선배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의 미래를 망쳤다는 깊은 죄책감을 갖고 서울에서 파주로 피신한 중식. 목사로 일하는 다른 선배의 일을 도우며 있는듯 없는듯 지내던 중 동생 은모(서우)와 단둘이 사는 은수(심이영)를 만나 결혼을 한다.

중식은 이렇게 가정을 꾸리며 파주에 자리를 잡았지만, 파주는 여전히 꿈의 공간이고 속죄의 골고다 언덕일 뿐이다. 파주에서의 활동은 현실의 공간인 서울에서 쌓은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고행에 불과하다. 교회에서 공부방 교사를 맡은 것도. 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재개발반대시위를 주도하는 일도. 결국 은수를 사랑하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해버린 결혼생활까지도.

반면 은모(서우)에게는 나고 자란 파주가 현실의 공간이다. 그래서 은모는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온 중식이 자신의 현실을 파괴할까 두렵다. 은모가 지켜야할 현실에는 언니의 행복도 있지만, 애틋하게도 꿈의 세계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도 포함된다. 따라서 언니를 지켜내겠다는 말은 곧 자신을 지키고야 말겠다는 다짐과 같다.

박찬옥 감독 영화 '파주'

반응만 하는 사람, 행동만 하는 사람

<파주>는 안개처럼 모호하다. 8년 전, 7년 전, 3년 전이라는 친절한 자막이 깔리지만 어느 시간대 하나 정확한 시대상을 가늠하기 힘들다. 90년대말 같기도, 2000년대 초반 같기도 하다. 재개발 때문에 원주민이 쫓겨나는 서울 변두리가 꼭 파주여야 할 필요성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안개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처럼, 모호해 보이는 <파주>의 문제의식이 옅어지지는 않는다.

개봉 당시 홍보 포인트는 ‘형부와 처제의 금지된 사랑‘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에 이 주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금지된 사랑이란 아이템은 속죄를 탐구하는 중식과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은모가 스치는 짧은 교차로의 해프닝일 뿐이다. 반대성향을 지닌 두 인물이 의도치 않은 잘못으로 쌓아나간 죄의식을 8년이라는 시간을 겪으며 극복하는 게 <파주>의 주된 테마다.

중식의 잘못은 반응(Reaction)만 하기 때문에 생긴다. 첫사랑과의 악연 이후 그는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이 없다. 수배가 풀렸으니 학업을 잇거나 교회사역을 맡으라는 선배의 권유에는 자격이 없다며 공부방 선생님으로 머물고, 일방적인 은수의 구애에 못 이겨 불행이 뻔히 보이는 사랑없는 결혼을 택한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배경은 있지만 철거대책위원장을 왜 맡게 됐는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아마 함께하자는 타인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체성을 상실한 이 남자는 결국에는 타인의 죄까지 대속한다.

반면 은모의 실수는 행동(Action)만 있다는 것이다. 은모는 중식에게 ‘왜 그랬니’라는 질문을 두 번 받는다. 스승의 날에 중식의 첫사랑처럼 분장하고 놀래켰을 때. 유치장에 갇힌 중식을 놔두고 갑자기 인도로 떠났다가 파주로 돌아왔을 때. 두 차례나 해명할 기회를 얻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도망친다. 결국 이유를 말하지 않고 꽁꽁 숨겨두는 은모의 버릇은 하나뿐인 피붙이인 은수를 사망으로 이끄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박찬옥 감독 영화 '파주'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이 일이 무슨 보람이 되죠?

영원히 반대방향으로 달려나갈 것 같던 두 사람의 질주는 철거반대대책위와 용역깡패가 강렬하게 맞붙던 농성장에서 극적인 방향전환을 한다. 끈질기게 대답을 회피하던 은모가 오히려 질문을 하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만 하던 중식이 드디어 자기 생각을 내뱉기 시작한다.

형부와 처제의 피상적인 대화를 뛰어넘어 둘의 첫 만남. 아니면 은수의 죽음. 아무리 늦었어도 은모가 파주로 돌아온 이후 필연적으로 거쳤어야 진실의 시간과 마주할 용기를 낸 것이다. 드디어 정면으로 바라본 두 사람은 오래 간직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다.

은모: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이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
중식: 글쎄...처음엔 멋있어 보여서 한 것 같고 그 다음엔 내가 갚을 게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냥 늘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 끝이 안 나.

중식이 수동적으로 택한 사회적 역할들은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구원의 길로 이끌 수는 없었다. 따라서 시국범 같은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라 오히려 구질구질한 보험사기 혐의로 구치소에 갇힌 뒤에야 중식은 드디어 그동안의 죗값을 치렀다는 듯 홀가분하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99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1마리의 양을 더 보살펴야겠다고.

오프닝에서 택시를 타고 안개가 자욱한 파주의 경계에서 등장해 마치 탐정처럼 언니의 사고를 파헤치던 은모도 해답을 찾는다. 훌륭한 탐정영화의 대부분이 그렇듯 고생 끝에 진실에는 법이나 사회적 통념으로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는 복잡하고 모호한 삶의 진실이 숨어 있다. 외부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중식에게 구원을 선물한 은모는 친구의 스쿠터를 타고 뿌연 안개로 덮힌 파주를 벗어난다.

박찬옥 감독 영화 '파주'

우리는 기어코 악몽의 끝을 볼거야

악몽은 무슨 이유였는지 모를 지점에서 시작되고 내 고통만 절정에 달한 순간 끝난다. 악몽이 끔찍한 이유도 여기 있다. 일방적인 고통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는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에 애써 눈을 감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는 무력감. 박찬옥 감독의 <파주>는 지겹게 반복되는 악몽 뒤의 찾아온 무력한 하루를 눈앞에 생생히 그린다.

하지만 <파주>는 우리가 악몽에 시달리는 미욱한 인간이기에 더없이 매력적이다.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관계를 끌어안고 살아가려는 노력이 너무 찬란한 덕분이다. 기어이 눈을 감고 악몽의 세계로 고통을 뚫고 끝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은모에 대한 중식의 마지막 고백에는 그 초월적 의지가 담겨 있다.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파주>의 도입부와 결말은 안개가 감싸고 있다. 어떤 게 꿈이고 현실인지 모를 만큼 자욱한 안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고 중식과 은모는 알고 있다. 어떤 깊고 짙은 안개도 햇살이 비치면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안개처럼 감싸는 간밤의 악몽을 지워줄 아침도 언제야 오고야 말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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