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은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며 <1박2일> 하차를 택했다. 보통은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에게 대중이 또 박수를 쳐준다. 하지만 강호동은 아니었다. 시청자는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거함 강호동호에는 그때 이미 구멍이 뚫렸다.

그랬다가 세금 관련 사건이 터진 게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으로 강호동을 비난할 계기가 됐다. <1박2일> 하차 때부터 사람들이 너도나도 강호동을 비난하니까 신이 난 언론 매체들이 '옳다구나 장이 섰구나'하며, '강호동이 수십억을 탈세한 파렴치범이다'라는 식으로 기사장사에 열을 올린 것이 결국 파국을 낳았다.

▲ 세금 과소 납부로 국세청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개그맨 강호동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서울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강호동은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연예계를 잠정 은퇴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강호동이 애초에 박수칠 때 떠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강호동에겐 원래 안티도 많았고 또 국민MC라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반발이 클 수밖에 없지만, <1박2일> 하차 선택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건 확실하다.

왜 박수칠 때 떠나는 사람을 좋아하던 국민이,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강호동에겐 화를 냈을까?

강호동이 판단을 잘못했다. 서로 경우가 달랐다. 국민이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지긋지긋하게 군림하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지도자는 결국 죽어서야 권좌에서 내려왔다. 전두환으로부터 직선제 개헌을 따내기 위해서도 수많은 국민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일제 때 부와 권력을 누렸던 사람들은 해방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한번 3김은 영원히 3김이었다. 수십년 간 군림하는 맹주들의 정치. 경제계에서도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경제권력. 정치적 토호들의 끈질긴 파벌정치. 국민들은 염원했다. '제발 박수칠 때 떠나다오'

이것은 황금의자에서 수십 년 간 뭉개지 말고 후세를 생각해서 내려와 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강호동의 <1박2일> 하차는 정반대의 의미를 형성했다.

<1박2일> 하차 관련해서 나온 기사들을 종합하면 이렇다. '<1박2일>은 힘들고 고달프고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운신의 폭도 좁다. 프로그램의 인기도 떨어져간다. 그래서 강호동이 <1박2일>에서 빠진 다음,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시한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건 황금의자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반대로 황금의자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이것은 '욕심'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비록 힘들고 고달프지만 국민이 사랑하는 프로그램을 위해서 전국을 누비는 고생'을 더 이상 안 하겠다는 메시지도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승기 사건도 안 좋았다. 이승기가 바로 직전에 황금의자(일본)을 찾아 떠난다는 말이 있었다. <1박2일>은 '힘들고 고달프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어서' 일본 진출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승기는 의리를 지킨다며 <1박2일>를 선택했다. 박수칠 때 떠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욕심의 반대인 희생이었다. 그러자 국민이 박수를 쳐줬다.

그런 상황에서 맏형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는 박수칠 때 떠나겠다'고 하니까 모양새가 많이 우스워졌다. 그 바람에 <1박2일> 폐지가 결정돼서 쪽박까지 깨버린 구도가 됐다.

강호동이 <1박2일>을 단순한 '시청률 1위 예능프로그램'으로 생각한 것이 패착이었다. <1박2일>은 단순한 예능프로그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방송이었다. 여기엔 국민의 사랑이 있다. 그것을 위해 고생하니까 박수도 쳐주고 국민적인 사랑도 몰아줬던 거다.

그러므로 강호동이 <1박2일>을 버린 건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저버린 의미를 만들었다. 이런 프로그램엔 박수 안 칠 때까지 있는 게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더 좋았다.

시청자는 강호동을 버려도, 강호동이 먼저 시청자를 버리면 안 된다. <1박2일> 하차는 시청자가 아직 원하는데 그가 떠나버린 구도였다. 강호동의 입장에선 끝까지 '시청자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좋았다. 강호동은 <1박2일> 하차를 시청률 1위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국민은 더 이상 봉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그 차이가 오늘의 파국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강호동의 잠정 은퇴 결정은 좋은 판단이었다. 이것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는 이미지를 만들어 여론반전의 계기기 됐다. 강호동이 오판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숙고하면, 더욱 사랑받는 국민MC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