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북한이 초대형 ICBM을 공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눈물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 정치권은 당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의 장면 하나 하나를 떼서 앞으로의 대북관계를 비관 혹은 낙관하는 근거로 삼고 있지만, 결국 각자 유리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전체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내놓은 외교적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ICBM 등 신무기를 공개한 것은 ‘시험 발사’를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도 있듯, 이는 미국을 군사적으로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이 열병식 연설에서 미국의 ‘미’도 꺼내지 않은 것은 나름의 수위 조절을 한 것인데, 이는 당장 시험 발사가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열병식은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내년에 본격적으로 재설정될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문제를 빠뜨릴 수 없게 하려는 제스쳐인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빨리 코로나19 위기가 종식돼 남북이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와 의례적 또는 기만적 문구일 뿐이라는 해석이 부딪치고 있지만, 그런 단순한 해석에 그칠 일이 아니다. 이 발언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리스크가 해소되기 전까지는 남북교류가 어렵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언급한 위기의 종식은 현실적으로 고려해도 내년은 돼야 할텐데, 그 시점은 어쩌면 ICBM 시험발사 등 군사적 긴장이 조성된 상태에서 북미대화가 재개되는 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통미봉남’하는 북한이라도 그때는 남한의 역할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남한을 겨냥한 ‘한 문장’은 이용당하는 쪽이 아니라 이용하는 쪽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이 경우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구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나 북한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테이블에 앉아 증거를 따질 상황 조건이 돼야 북한에 실질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공동조사는 그 과정으로 가는 시작점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서로 각자에 필요한 주장만 되풀이 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그림이 불가피하다.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군사적 충돌이 재발하는 상황에도 이를 수 있다. 북한의 열병식 메시지는 이런 상황이 현실이 될 가능성을 키운 것이다.

정치권이 할 일은 일치단결된 목소리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북한에 책임을 묻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고, 그 점을 앞으로도 잊지 않겠다는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 상황의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각자 유리한 주장만 하는 여야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가능성은 낮아진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정치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은 옵티머스니 라임이니 하는 사모펀드 사기 사건이다. 옵티머스 사건에는 당시 현직이었던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돼 있고, 라임 사건에선 핵심관계자가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돈을 건네려 했다는 주장을 법정에서 내놓은 일이 일어났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논란이 제기된 지 상당 시간이 지났음에도 검찰은 이제서야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는 모양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12일 오전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해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도착,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SBS 등이 옵티머스 내부 문건 등을 보도하면서 의혹이 커진 상황이지만 아직 실체적 진실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기범들이 감독 당국을 상대로 ‘블러핑’을 하기 위해, 또는 자기들끼리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만든 문건이라는 해석도 있다. 강기정 전 수석의 금품수수 의혹 역시 본인은 물론 중간전달책으로 지목된 인사도 제기된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또다시 칼자루는 검찰이 쥐게 된 모양새인데, 이 사건 역시 검찰의 수사 과정과 결과에 대해 어느 쪽도 수긍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이다. 역시 최근에도 쟁점이 되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 문제는 이게 완벽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보수야당이 트집을 잡는 구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의혹을 잠재우기보다는 오히려 더 키우기 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런 식이라면 검찰개혁을 한 것과 안 한 것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오직 각자에 유리한 주장을 거듭하며 선거를 앞둔 명분 쌓기에만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은 특정 종목의 주식을 일정 액수 이상 가진 경우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를 강화하는 안에 대한 여야의 태도를 봐도 커진다. 10억원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추는 게 최선의 안이 아닐 가능성도 있고 누진세율 적용 등 여러 장치를 통해 보완하는 논의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식시장에 끼칠 악영향과 ‘동학개미’들의 여론 악화만을 우려하며 여야가 합심해 경제부총리를 난타하는 장면은 과연 우리 정치가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여의도 차르’라 불릴 만큼의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보도를 보면 그런 그도 “못해먹겠다”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인 모양이다. 물론 과거의 행보를 보면 그것조차도 자기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일 가능성이 큰데, 어쨌든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이 당내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점 중 하나는 공정경제3법이다. 당내외의 합의를 얻지 못한 김종인 위원장은 노동개혁이라는 의제를 역으로 던져 상황을 돌파하려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이 때문에 국민의힘의 중도화 의지가 다소 꺾여 보이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정경제3법이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노동개혁 역시 핑계에 그치고 말 것은 아니다. 결국 어떤 사회상을 지향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기성정치권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이 없는 건 아니다. 공정경제3법이나 노동개혁 등에 더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유연안정성 모델 도입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다시 모색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데, 이걸 감당하는 것 역시 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는 이런 과제는 외면한 채 법안을 일방처리할 것인지, 노동개혁 반대 세력이란 딱지를 선거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히려 유연안정성 모델의 도입은 소수당인 정의당의 김종철 신임 대표 정도가 언급하는 정도에 그칠 따름이다. 사실 이번 국정감사 기간 동안 인상에 남을 만한 활약을 보여준 것도 지금까지는 정의당의 류호정 의원뿐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야당은 오히려 낮에는 속 빈 강정 같은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정책질의는 관심이 떨어지는 밤에나 하자는 분위기다. 언제까지 이런 정치를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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