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20.10.30 금 19:42
상단여백
HOME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류덕환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주부의 살에 대한 고찰? 사랑스런 반전![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0.10.08 10:58

[미디어스=이정희] 추석이 지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가급적이면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는 정부 권고와 상관없이, 가족들이 며칠을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명절은 주부 입장에서는 고달픈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명절이 지나고 서로 만나 하는 인사치레에 꼭 '살'이 들어간다. 겨우 며칠 새에 살이 쪘다더라는 식이다. 왜 주부들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살이 찔까? 그 이유를 '사랑스럽게' 풀어낸 단편 영화 <내 아내가 살이 쪘다>가 10월 2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내 아내가 살이 쪘다>는 12분 분량의 단편 영화이다. 그리고 이 단편 영화는 우리에게는 배우 류덕환으로 더 친숙한 감독 류덕환의 연출작이다. 낯선 감독 류덕환, 하지만 류덕환 감독은 2012년 <장준환을 기다리며>, 2015년 <비공식 개강총회>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자꾸만 먹는 엄마 

류덕환 감독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영화는 체중계에 올라 늘어난 몸무게를 확인하고 비명을 지르는 아내(장영남 분)로 시작된다. 목욕탕에서 잰 몸무게와 다르다며 늘어난 몸무게를 잘못된 체중계 탓으로 돌린 아내. 그도 잠시 밥 먹자며 부엌으로 향한다.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중, 아내는 칼질을 하다 연신 입으로 무언가를 넣는다. 거기서 끝일까? 찌개를 끓이던 아내는 맛을 본다며, 찌개 국물이며 건더기를 먹어댄다. 간이 안 맞아서 물을 더 부으니, 다시 또 간을 봐야 한다. 찌개가 상에 올라가기 전에 배가 찰 정도로. 거기서 끝일까? 

온 가족이 함께한 외식에서 남은 등갈비를 알뜰하게 싸 가지고 온 아내, 다시 덥혀서 식구들에게 권한다. 하지만 '집에서 먹으면 맛이 없다'는 둥 '시간이 없다'는 둥 식구들은 내빼기 바쁘고, 결국 그 '남은 것'은 그걸 남길 수 없는 아내의 입으로 들어간다. 

어느 집안에서나 너무나 익숙한 상황. 그 상황에 류덕환 감독은 '아내의 살'에 대한 개연성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여기까지만 봐도 아내가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하다. 집집마다 한 입 더 먹으라는 엄마와 먹기 싫다는 식구들, 버리는 게 아깝다는 엄마와 그냥 버리라는 식구들의 실랑이야 너무도 익숙한 구도다. 심지어 영화 속 엄마는 강아지가 저지레한 초콜릿 수거까지 엄마의 입으로 한다. 

류덕환 감독 <내 아내가 살이 쪘다>

그런데 여기서 류덕환 감독은 주부의 '살'의 개연성에 한 술을 더 보탠다. 거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 과자 봉지를 쥔 막내가 장난을 치다 과자를 온 바닥에 쏟아버린다. 빨래를 개던 엄마는 아연실색 장난을 친 막내를 야단치지만, 결국 애정 어린 포옹으로 마무리한다. 화해의 기념으로 엄마에게 과자 하나를 건네는 막내. 하지만 엄마가 '엄마 살쪄'라며 거절하자, 재치 넘치게도 막내는 과자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 엄마의 입에 넣어준다. 

과자를 먹어본 사람은 아마도 알 터이다. 그 손톱만 한 조각이 입에 들어와 녹는 순간의 달콤함이 주는 유혹을, 결국 그 유혹에 넘어간 엄마는 '이거 맛있는데 더 주지'라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입에 넣는다. 

엄마의 살은 사랑이다 

류덕환 감독 <내 아내가 살이 쪘다>

류덕환 감독이 <내 아내가 살이 쪘다>를 통해 정의 내린 엄마의 살은 '사랑'이다. 식구들을 위해 애써 음식을 준비하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입에 넣는 것들이 결국 엄마의 살이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추석과 같은 명절을 지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몸무게의 뒷자리가 달라지는 '비밀'이다. 

엄마는 연신 살이 찐다고 되뇌지만 음식으로부터 '거리 두기'가 되지 않는다. 늘 엄마의 주변을 둘러싼 음식들,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류덕환 감독은 '주부의 살'에 대해 애정 어린 고찰을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감독이 선택한 해답 역시 '사랑'이다. 영화는 줄곧 남편(김태훈 분)의 시선으로 엄마를 지켜본다. 그간 많은 드라마에서 서늘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김태훈, 하지만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속 아빠는 다르다. 살이 쪘다며 혼비백산하는 아내에게 “그대론데?”라고 하는 남편. 그리고 음식을 하다 집어 먹고, 남긴 음식을 아깝다며 먹고, 심지어 개가 저지레한 음식까지 먹는 아내를 줄곧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던 남편은 결심한다. '안 되겠다! 나도 노력해야겠다'

류덕환 감독 <내 아내가 살이 쪘다>

남편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 찌개를 끓이다 간을 보려는 아내 대신 남편이 뛰어가 간을 본다.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을 안 먹고 내빼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너네가 안 먹으면 엄마가 먹게 된다며 먹인다. 아들이 엄마 입에 넣어주는 과자를 대신 먹기 위해 아빠는 슬라이딩을 한다. 그 결과? '아빠가 살이 쪘다'

영화는 우리네 생활 속 '주부의 살'이라는 사소한 사건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따라간다. 거기서 멈추면 그냥 살에 대한 보고서가 될 뻔한 영화는 ‘아빠가 살이 쪘다’라는 반전 아닌 반전을 통해 '혜안'을 제시한다. 영화에서 보여준 건 엄마가 살이 찔 음식을 나눠 먹는 아빠이지만, 결국 그 속에 담긴 건 주부의 역할을 나누어 짊어짐이다. 

아무리 주부의 역할을 덜어낸다 해도 저마다의 생활이 뚜렷해져가는 상황에서 그 역할의 나눔이라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내가 살이 쪘다> 속 아내를 대신해서 기꺼이 살이 찔 각오가 될 남편의 자세라면 주부의 짐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나누어지는 살이 아니라, '짐'이다.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디어평론가 이정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임진수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20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