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힙합이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통 큰 바지를 입고 도로를 쓸고 다니던 그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본인도 아침마다 길거리의 먼지들을 바지단으로 친히 쓸고 다니곤 했다. 그 때 힙합의 시작은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난 알아요'에 등장한 한글랩은 분명히 환상적이었다. 나름 힙합을 좋아한다는 친구들은 듀스에 광분했었다. 허니 패밀리도 있었다. 그리고 조PD, 가리온, 드렁큰타이거, CB MASS 등이 힙합을 좀 더 대중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1999 대한민국’ 같은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은 이 같은 힙합의 대중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힙합이라는 장르는 대중적이면서 마니아적인 장르로 점점 벽에 가로막혔다. 아이돌 열풍으로 인해 랩은 아무나 하는 손쉬운 것이 되었고, 코리안걸, 재패니즈걸, 환타스틱, 엘라스틱 같은 충격적 노랫말로 힙합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매력은 점차 희석되었다. 그러자 힙합뮤지션들은 자기만의 세력을 공고히 하며 더욱 자신만의 음악에 빠져들었고, 이는 대중과의 일정한 단절을 가져오게 되었다.

▲ '힙합 대통령' 드렁큰 타이거 앞에서 랩하는 쌈디 ⓒ연합뉴스
분명한 장르적 선호도와 인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성공할 것 같으면서도, 전혀 그러지 못했던 것이 힙합이 지니고 있는 아이러니였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던 타이거JK, 리쌍, 다이나믹듀오도 일정수준의 인기만을 모으는 수준을 넘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덕분에 그저 10~20대 사이에서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상황에 기인한다.

이런 교착상태를 해결하게 된 것이 바로 예능이다. 예능에 힙합뮤지션들이 나오면서 그들의 진지한 음악은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타이거JK의 무릎팍도사 출연과 길의 무한도전 입성, 그리고 쌈디의 뜨거운 형제들 출연 등 예능은 일반 대중에게 조금 거리가 있던 힙합뮤지션들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실제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대단하게 추앙받던 대부분의 힙합뮤지션들은 그 외의 나이대 대중에게는 조금 거리감 있게 받아들여졌으며, 그저 겉멋 든 아이들 혹은 양아치들이라는 이미지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능을 통해서 이들이 매우 친숙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대중은 그들의 음악에 귀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천금 같은 기회에서 이들이 그동안 쌓아놓은 음악적 내공은 대중의 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2년 만에 정규 7집 앨범 '아수라발발타(AsuRa BalBalTa)'를 들고 온 리쌍 길(34)과 개리(33) ⓒ연합뉴스
실제로 예능을 통해 인기를 얻은 리쌍이 더욱 진한 힙합음악을 들고 나온 것은 지금의 힙합 열풍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만약 그들이 예능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쉬운 음악, 대중적으로 편한 음악을 들고 나왔다면, 그들의 음악과 그들이 예능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서로 희석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기존 팬들은 '예능에서 뜨니까 달라졌어요.'라고 불만을 표했을 것이고 일반 대중은 '음악은 거기서 거기네'라고 뮤지션의 실력을 뻔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을 더욱 진하게 풀어 놓음으로써 '예능도 최고! 음악도 최고!'를 기존 팬과 대중 모두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힙합이 가지고 있는 자기 모순적인 상황을 탈피하게 해 주었다. '대중적이지만 비 대중적이어야'하는 힙합의 장르적 특성이 '예능과 음악'을 확연히 구분함으로써 모순이 아닌 시너지로 발전된 것이다. 힙합의 새로운 흐름이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이나믹 듀오가 런닝맨을 통해 예능활동에 본격 시동을 건 것은 자못 뜻 깊게 다가온다. 그들 또한 예능을 통해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동시에 그들만의 음악을 통해 대중의 귀를 만족시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는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과 메시지를 더 많은 대중과 공유하는 가장 새롭고 가장 효과 좋은 방법일 것이다. 특히 이미 질릴 대로 질린 뻔한 아이돌 음악을 탈피하려는 대중의 성향은, 슈퍼스타K2와 세시봉에서 보여주었던 포크와 락을 넘어 힙합이라는 장르까지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 음악계 전체가 균형을 잡아나가려 한다는 긍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예능'을 하면서도 자신의 본래 색깔을 잃지 않으려 했던 뮤지션들 덕분이다. 팔릴 노래가 아닌 해야 할 노래 그리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던 그들의 고집과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접점을 찾으려 했던 음악적 고민에 박수를 보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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