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첫 번째 질문. 신발은 더러운가? 더럽지 않은가? 답은 장소에 다르다. 신발이 신발장에 있다면 더럽지 않다. 하지만 식탁 위에 올라와 있다면 더러운 물건이 된다. 『순수와 위험(Purity and Danger)』에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이를 ‘정상적인 분류체계에서 밀려난 잔여적 범주‘라고 표현했다. 신발은 신발장에 있는 게 정상이고 나머지 상태는 잔여적 범주에 해당한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의미다.

조금 도발적인 두 번째 질문을 하겠다. 여성은 더러운가? 더럽지 않은가? 이 역시 답은 장소마다 다르다. 바깥양반, 안사람이란 호칭에서 대표되는 것처럼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남성은 집밖(=사회). 여성은 집안(=가사) 활동을 전담했다. 물론 바깥일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활동이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온 것과 달리 집안일을 한다고 집의 소유권이 여성에게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에서 참고)

집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여성은 지금도 더러운 여자. 즉, 혐오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성별과 관련 없이 운전이 미숙한 사람을 ‘김여사’라고 특정하고, 어린 자녀가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면 바로 ‘맘충’이라는 멸칭을 듣게 된다. 여성은 공공장소의 이용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는 것이다. 코로나 유행 이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난동을 부리다가 입건된 사람의 90%가 50대 이상의 남성이지만 이를 지칭하는 신조어는 없고, 김여사, 맘충에 대응하는 김집사, 대디충이란 단어는 쓰이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남성들의 전유물인 집밖. 즉 사회활동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여성은 당연히 더러운 여자로 낙인찍히기 훨씬 쉬웠다. 지난 9월 18일 췌장암 합병증으로 타계한 미국의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별명은 ‘Notorious RBG(악명 높은 RBG)’이다. 젊은 팬들이 만들어준 긍정적인 별명이기도 했지만 보수주의자들에게 마녀, 괴물, 좀비로 불려온 것을 떠올리면 견고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며 성차별 철폐에 앞장선 긴즈버그에게 필연적인 호칭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성차별은 남성의 삶도 힘들게 한다

2019년 개봉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가 본격적으로 악명을 쌓기 시작한 1972년 ‘모리츠 대 국세청장‘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워싱턴에 사는 찰스 모리츠는 어머니의 보육자로 지출한 보육비 296달러에 대한 세금 공제를 거부당한다. 당시에는 피부양자가 있는 기혼남이나 여성은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어도 미혼남성은 불가능했던 탓이다. 모리츠의 변호인을 맡은 긴즈버그는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대측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 남녀 모두에게 이롭다며 성별에 근거한 합법적 차별 판례 178개 조항을 제시한다.

영화는 긴즈버그가 모리츠 대 국세청장 사건에 도달하기까지 직접 겪은 성차별을 자연스럽게 그리며 차근차근 관객의 정서적 동화를 이끈다. 긴즈버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지만 500명 정원 중에 9명뿐이었던 여성 신입생들은 학장에게 ‘남자의 자리를 뺏으며 로스쿨에 진학한 이유를 말해보라’는 무례한 질문을 받는다. 긴즈버그는 같은 로스쿨을 다니던 남편의 고충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편입한 컬럼비아 로스쿨에서 공동수석으로 졸업하고 여성 최초로 로리뷰(Raw review) 편집위원까지 맡은 수재였지만 대형로펌 취직은 번번히 실패한다. 세상을 직접 바꾸는 변호인이 되고 싶던 꿈을 잠시 접고 럿거스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로 잠시 방향을 튼 것도 ‘여성, 유대인,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유로 로펌이 받아주지 않은 탓이었다.

로스쿨 교수였던 긴즈버그가 ‘모리츠 대 국세청장 사건’에서 변호인을 맡은 까닭은 수천년 간 각인된 ‘제자리’에 대한 편견이 국가가 보장해야 할 시민의 생활을 외면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겐 고유한 자리가 있다는 믿음은 차별을 은폐하는 교묘하고 편향적인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여성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하며 고통을 주는 것처럼 남성은 남성다워야 한다는 것 역시 성차별로 인한 피해사례인 것이다. 누구의 삶이 더 힘든지 대결하기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불평등의 원인을 없애자는 게 긴즈버그의 꾸준한 주장이기도 하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니라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평이한 전기영화적 연출을 보여주지만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은 있다. 바로 날씨와 카메오의 활용이다. 긴즈버그는 1993년 미 상원 법사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다. 영화는 마치 이 명언을 꾸준히 상기시키듯 비오는 날이 배경인 경우가 잦다. 긴즈버그가 고난을 겪는 순간은 거의 확실히 비가 내리고 그럴 이유가 없는 남편과의 대화장면에서도 창 밖으로는 빗줄기가 흐른다. 날씨도 흐리고 시대의 기후까지도 흐림이었던 순간 좌절하지 않고 맑은 날을 기다려온 긴즈버그의 뚝심과 빗줄기의 대비는 영화 후반에 더 강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주목할 카메오는 도로시 캐년 역을 맡은 캐시 베이츠다. 도로시 캐년은 긴즈버그보다 앞서 성차별적 법조항에 맞서 재판을 맡았던 실제 인물이다. 생소한 캐시 베이츠를 쉽게 떠올릴 캐릭터가 있다. <미저리>의 주인공 애니 윌킨스를 연기한 게 바로 캐시 베이츠다. <미저리>는 사고로 거동이 어려워진 남성작가를 스토킹하는 강한 신체능력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는 스릴러다.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구분을 바꾸며 스토킹 범죄의 시각을 넓힌 페미니즘 영화로도 유명하다. 페미니즘 영화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죽음의 별을 무력화시킨 저항군(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멘토로 등장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탁월한 앙상블이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긴즈버그가 말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더럽다‘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훈장이다. 지배계급의 통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존재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말인 탓이다. 긴즈버그는 여성들을 촘촘하게 옭아맨 차별들을 뚫고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성공들을 결코 노력의 결과로 개인화하지 않았다. 앞장서서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며 악명을 훈장으로 바꿔온 점이 긴즈버그를 위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악명 높은 긴즈버그도 걱정은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지는 것이다. 긴즈버그는 2013년 시카고대학교 로스쿨에서 ‘페미니즘이 욕설로 통하는 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의미하는 건, 자신이 원하고 능력을 갖춘 존재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할 동등한 기회가 젊은 남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리츠 대 국세청장 사건’에서 보듯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여성만을 위해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