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진경] 국내 최초 장기실종아동 소재 다큐멘터리 <증발> 개봉을 앞두고 7년여 만에 완성되기까지의 내밀한 이야기가 알려져 이목을 끈다.

2000년 4월 4일 서울 망우1동 염광아파트 놀이터 부근에서 최용진 씨의 둘째 딸 최준원 양이 실종되었다. 청바지와 주황색 쫄바지를 입고, 제집처럼 드나들던 중국집을 하는 친구 승일이네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여섯 살 준원은 스물여섯이 되었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버지 최용진 씨의 집념의 추적은 바로 이날부터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증발> 스틸컷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딸의 흔적을 돌아보며 필사적으로 단서 추적에 나선다. 전단을 만들어 거리로 나가 나눠주고, 제보 전화가 들어올 때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2005년 실종아동 관련 법이 처음 제정되기 이전, 실종아동 추적·관리 시스템은 형편없었다. 사건 당시 준원이가 뛰놀던 아파트 주변과 거리 등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었고, 추적할 만한 별다른 단서조차 발견되지 않은 준원이 사건에만 매달릴 수 없었던 경찰은 전국에 수배만 내려 놓은 채 사실상 수사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버지 최용진 씨는 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경찰을 대신해 직접 사건을 분석한 수사 노트는 벌써 다섯 권이 넘고, 그 집념 속엔 상실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보는 이의 가슴까지 뭉클하게 한다. 또한 실제 최용진 씨는 한국실종연구회 회장을 맡으며 실종사건 관련 강의를 할 정도로 정보를 습득하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나아가 실종아동 부모들과의 모임 결성을 통해 2005년 5월 31일 제정된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 등 보호법)' 제정을 이끈 바 있다. 이렇게 딸을 찾으려는 그의 집념은 점점 실종자 가족 문제로 확장되며, 예측하기 힘든 실종사건의 근본적 원인과 해결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는 활동까지 이어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증발> 스틸컷

영화 <증발>은 13년 전과 지금의 수사 진행을 번갈아 보여주며 감춰진 진실에 대한 긴장과 흥미를 층층이 견고하게 쌓아 올린다. 여기에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수사 노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메시지를 호소하고 있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편 <증발>을 연출한 김성민 감독은 2013년부터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완성‧개봉하기까지 7년간의 끊임없는 고민과 자기 검열을 거쳤다고 한다. 이미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 삶을 살아내는 가족을 카메라로 담고, 고통과 한 몸이 되어버린 한 가족의 일상을 스토리텔링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었다.

감독은 고통을 담는 가장 쉬운 길인 자극과 반복 대신 사려 깊은 자세를 선택했다. 실종아동 가족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전문 심리상담가와 의논하는 등 정중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소재의 선정성에 매몰되지 않는 점도 김성민 감독의 진지한 시선을 보여준다. 영화는 준원이를 통해서만 설명되는 아버지의 20년 삶에 피해자, 희생자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는다. 대신 그 시간을 딸이 사라진 후 남겨진 가족의 내면을 그리는 데 할애한다. 시간이 흐르며 고립되어가는 가족의 정신적 고통을 풍경처럼 그려내고, 상처와 치유의 문제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다양한 층위에서 화두를 던진다.

다큐멘터리 영화 <증발> 스틸컷

이러한 진심을 담은 노력 끝에 완성된 <증발>은 김성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상,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심사위원 특별상, 젊은 기러기상 등 국내 다수 영화제의 수상을 통해 장기실종아동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야기를 전달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10월 29일 개봉하는 영화 <증발>은 딸을 찾기 위한 한 아버지의 20여 년의 추적, 그리고 7년의 치열한 고민이 스민 사려 깊은 연출의 힘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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