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의 사이트 전체차단 조치를 수용하지 않고 새로운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로써 사이트 전체차단 주요 근거였던 ‘제재 실효성’이 무력화됐다. 또한 방통심의위는 이번 전체 차단 결정에 앞서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아 '제재 정당성'을 갖추는 문제를 드러냈다.

디지털교도소는 살인·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방통심의위 통신소위는 14일 “불법정보 양이 자체 기준인 70%를 넘어서지 않았고, 공익성이 있다”면서 디지털교도소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고, 불법성이 확인된 일부 게시물만 부분 차단하기로 했다. 통신소위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에게 일부 불법정보 자율규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운영진이 자율규제를 따르지 않자 통신소위는 24일 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전체차단을 결정했다. 통신소위는 사이트 전체차단 외에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진=디지털교도소 홈페이지 갈무리)

디지털교도소 운영진은 접속차단 이틀 만인 26일, 새로운 주소로 사이트를 개설했다. 운영진은 홈페이지에 접속차단을 피할 수 있는 우회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했다. 방통심의위는 28일 통신소위에서 디지털교도소 사이트 심의를 재개할 방침이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또한 '신속한 제재'를 위해 의견진술 절차를 생략했지만, 사이트 주소 변경은 '신속한 제재' 효과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통신소위는 14일 일부 게시물을 차단하면서 의견진술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24일 전체 사이트 차단을 결정할 당시 심영섭 위원은 “운영자가 참석할지 모르겠지만,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이기에 의견진술 기회를 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사무처는 “디지털교도소 개별 게시물을 차단할 때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의견진술을 듣게 되면 해당 기간 동안 사이트가 차단되지 않는다”고 밝혔고 위원 모두 사무처 의견에 동의했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따르면 통신소위는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하여 긴급히 처분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제재 대상자에게 사전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의견진술 참석이 불가능할 경우 서면 의견진술로 대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25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디지털교도소 정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이라 신속하게 제재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통신소위가 의견진술 절차를 따랐어야 했다”고 밝혔다.

또한 ‘불법성 있는 사이트는 의견진술 없이 차단한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방통심의위 제재 결정에는 과거 사례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디지털교도소 차단 반대 주요 근거가 됐던 ‘70% 기준’은 2011년 만들어진 내부 관행이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25일 통화에서 “향후 디지털교도소와 유사한 사이트가 나오면 통신소위는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차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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