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법무부가 집단소송제·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재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소송남발'을 우려하며 반대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그간 소비자 피해 구제의 제도적 어려움이 있었고, '중과실' 위법행위를 요건으로 한 제도 도입은 대다수 기업에 적용될 여지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오는 28일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법이 통과되면 50인 이상의 피해자가 집단소송을 청구할 수 있고, 기업이 고의·중과실 위법행위를 저질러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의 5배 이하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된다. 현재 집단소송제는 증권분야, 징벌적손해배상제는 제조물책임법 등 19개 일부 법률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2018년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집단적 소비자피해 재발방지를 위한 집단소송 법제화 필요 촉구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재계와 일부 언론은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송 남발로 정상적 경영활동이 어려워진다는 게 반대주장의 주요 내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3일 "코로나로 위기 극복에 진력하는 기업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경제계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기업들은 현재도 형사처벌, 행정제재, 민사소송 등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렵고,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 중견 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4~25일 주요 보수·경제지 관련 기사와 사설 제목을 살펴보면 <규제3법에 집단소송제 폭탄까지, 기업을 얼마나 더 옥죌 셈인가>(매일경제), <집단소송제 강화…기업 아우성은 들리지 않는가>(중앙일보), <규제 3법에 집단소송까지… 숨 막히는 기업규제 끝이 없다>(동아일보), <5곳 중 1곳 좀비기업된다는데 기업의지 꺾어서야>(헤럴드경제), <"입법·사법·행정부가 다 기업을 적으로 봐">(조선일보), <수임료 1700억인데 소비자는 50만원씩… "집단소송 변호사 배만 불려">(한국경제) 등이다.

참여연대는 25일 논평을 내어 "재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집단소송제도,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소송 남발에 따른 비용 증가로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그동안 소송비용 부담이나 소송기간의 장기화, 개별 소비자가 기업의 위법행위를 충분히 입증하기 어려웠던 점을 이유로 다양한 집단적 피해를 입었던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피해구제를 받지 못했던 현실을 고려하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특히 징벌적손배제의 경우 일부 기업의 우려와는 달리 고의 중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대다수 기업은 적용될 여지조차 없다"며 "소송남발로 인한 비용증가 우려 역시 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법원의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또 참여연대는 "일각에서는 이미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 증권 분야에서도 집단소송이 잘 활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집단소송과 징벌적손배제가 확대되더라도 소비자들이 받게 될 실질적인 혜택이 크지 않아 효과가 미비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며 한 언론보도를 공유했다.

24일 이데일리는 기사 <50명만 모이면 집단소송… '소송 남발' 부작용 우려>에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소송 폭증은 불 보듯 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면서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승소한다 해도 생각만큼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지난 2월 마침표를 찍은 국내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의 첫 사례인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은 피해자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1인당 겨우 29만 원 가량을 배상받았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9월 25일 조선·중앙·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까다로운 소송 요건과 법원의 보수적인 태도, 소비자들이 손해배상청구를 해도 불균등한 증거편재(偏在)로 인해 기업의 고의·중과실임을 입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2017년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실이 발표한 '증권집단소송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도입된 증권 집단소송제의 12년간 제기된 소송 건수는 9건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법원의 소송허가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5건에 불과했다. 당시 소송허가결정 청구소송, 본안소송 등으로 집단소송제가 이원화 돼 있어 사실상 6심제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로 지적됐다.

참여연대는 "이번 집단소송법안에는 집단소송법안에는 소송허가요건・절차에 의해 사실상 6심제(허가-본안)로 운영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증거편재 해소 및 증거인멸가능성 방지를 위해 법원의 증거제출명령에 피고가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자료제출 명령 특례, 소송 전 증거개시제도 및 증거유지명령제도가 함께 규정되어 있다"며 "기업의 위법한 행위로 피해를 입었으나 해결할 길이 막막했던 소비자들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본조건을 규정한 제도"라고 했다.

참여연대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BMW 차량 연쇄 화재 사건, 카드사·포털의 개인정보유출 사건, 금융사의 불완전상품 판매 사건 등의 앞선 소비자 피해 사례들을 나열했다. 참여연대는 "제대로 된 피해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비용을 들여 사전적인 안전 점검과 피해방지 시스템을 구축할 동기가 줄어든다"며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배제, 증거개시제도의 도입은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장려하고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소비자 피해와 분쟁발생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크게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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