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안현우 기자] 벨기에 왕실이 공개한 사진 한 장이 한국 언론의 관심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인 엘리자베트 '공주'가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모습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 등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정성 논란과 비교되는 좋은 본보기로 판단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중 하나를 골라 21일자 1면에 배치했다. 사진 기사 제목을 <벨기에는 공주도 특혜 없다…이것이 공정>이라고 붙였다. 또한 관련 기사로 16면에 <진흙탕 포복 얼굴엔 위장 크림… '공주'도 열외 없어>를 더했다. 조선일보 1면 사진 기사 아래는 <추 의혹 언급없이…공정 37번 외친 문대통령>이다. 기사 배치라는 편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했다. 한국 집권층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앞서는 편집은 진실을 비튼다. 동아일보는 이날 "엘리자베트 공주는 (왕립육군사관학교)입학시험을 거치지 않았으며 약 1년의 수련 과정만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또한 "벨기에 왕실이 진흙탕에서 포복하는 공주의 사진을 공개한 것을 두고 잇따른 추문 및 세금 낭비 비판을 받는 왕실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면서 "공주의 조부인 알베르 2세(86)는 혼외자 소송, 상속세 회피 논란 등으로 2013년 아들 필리프에게 양위했다"고 전했다. 이는 조선일보 보도에 없는 내용이다.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했다면 이유가 있을 테지만 조선일보의 편집 방향은 선택적 '공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조선일보 21일자 지면은 대기업 규제 불공정 논란을 제기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1면 헤드라인은 <국내 마트 때릴때 코스트코 매출 1조 뛰었다>이다. 이날 처음 시작된 기획 <외국기업 놀이터 된 한국>로 '규제가 낳은 역차별'을 묶었다. 3면 <LED 중고차, 대기업 진출 막았더니…오스람 BMW가 휩쓸었다>, <아이폰 광고비 1500억, 국내 통신사가 대신 지불>, <쏟아지는 역차별법 n번방 방지법도 텔레그램에 무용지물> 등이다.

이 같은 보도가 하필 이때에 나온 배경은 짐작 가능하다. 한겨레 보도를 인용해 보면 정부·여당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정경제 3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제출한 상법 개정안에는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기업 감사위원을 별도 선출하고 대주주 의결권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쟁점이 포함돼 있다.

또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시민단체 등도 공정거래법 고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전속고발권 폐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적용되는 총수 일가의 지분 보유 비율을 현행 30%에서 20%로 낮추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계열 금융사들은 별도의 건전성 심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조선일보의 공정이 선택적임은 지상파 유사중간광고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신문협회는 전날 '시청자 권리침해하는 지상파방송 PCM 즉각 규제하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간과할 수 없는 조선일보는 이를 기사화했다. SBS가 메인뉴스를 늘려 1, 2부로 나누고 중간에 유사중간광고를 내보려고 하자 반발하는 내용이다. 유사중간광고가 편법이라는 점을 부인인 생각이 없다. 그러나 조중동의 종편편성채널이 가능한 중간광고가 지상파에선 법규제에 막혀 불가능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강조하고 있는 '규제가 낳은 역차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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