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는 '뽕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척 봐도 궁색한 차림의 그가 느닷없이 영화를 찍겠답시고 배우를 모집합니다. 급기야 요즘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대학생도 쓰지 않을 종이에 괴발개발 글을 써서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붙이고 다닙니다. 정말 가관은 이 다음부터입니다. 놀랍게도 그걸 보고 또 오디션을 보러 온 남자가 있지 뭡니까. 이름이 '성필'인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서울에서 왔다가 전단을 보고 뽕똘을 만나러 옵니다.

막상 오디션을 보러 가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습니다. 사무실이라는 곳은 지붕조차 없어 계절의 변화를 뼛속까지 절절히 느낄 수 있는 폐허고, 감독이라는 사람은 노숙자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한 관찰이 될 것 같으며, 제작자는 감독 옆에 앉아 기타를 튕기면서 끊임없이 구박하고 욕설이나 내뱉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은 영화를 찍을 능력은커녕 최소한의 환경도 갖추지 못했는데, 열의에 가득 찼는지 어땠는지 아무튼 성필은 묵묵히 오디션에 임합니다. 설상가상 쌍팔년도의 개그맨 오디션에서나 봤을 법한 연기를 시키고 앉았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어쨌든 다른 선택의 길이 있을 리 만무한 뽕똘은 성필을 주연으로 캐스팅합니다. 당최 이해할 수 없게도 성필 또한 냉큼 수락하고 일사천리로 뽕똘의 영화는 촬영에 들어갑니다. 제목은 이름하야 <낚시영화>. 물론 배우와 감독을 포함하여 달랑 네 명으로 제대로 된 작업이 가능할 턱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의 영화제작은 난관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과연 초저예산으로 이들이 완성할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요? 아니, 완성이 되기는 하는 걸까요?

첫 10분 동안의 <뽕똘>은 당혹과 폭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마당이었습니다. 위에서 쓴 줄거리 그대로, 이건 뭐 모든 상황 자체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코미디였습니다. "어떻게 저 꼴로 영화를 찍겠다는 거지?"라는 시선을 갖고 있자니 마냥 우스꽝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막말로 고등학교의 써클도 이들보다는 준비를 더 하고 영화를 찍을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어이없는 폭소를 터뜨리게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30분쯤 흐르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뽕똘>을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가 대체 무엇인지 감이 안 잡혔거든요. 그러다가 반강제적(?)으로 내린 결론이 "이건 분명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짱똘을 굴려도 이것 말고는 달리 <뽕똘>을 해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뽕똘>을 연출한 오멸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시더군요. 다행(?)인 한편으로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저토록 황당무계한 인물과 사건이 허구가 아닌 실화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뽕똘>은 어떤 영화일까요? 형식적으로 보면 <뽕똘>은 아마추어리즘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액자식구성을 갖고 영화 속의 영화로 들어 있는 <낚시영화>가 그렇습니다. 나중에 <전설의 물고기>로 제목이 바뀌는 이 영화의 제작진은, 그냥 아마추어의 수준이 아니라 투박하기가 이를 데 없는 '생초짜 + 무대포' 정신으로 뭉쳐 있습니다. 제반조건은 물론이고 전문적인 지식이라곤 하나도 없어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실수를 금할 수가 없죠. 동시에 이 아마추어리즘이야말로 어쩌면 오멸 감독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컨대 <뽕똘>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바탕 난리굿을 벌이는 광경을 지리멸렬하게 담고 있습니다. 때론 '낚시'도 하고 때론 전설도 들먹이면서 관객의 눈길을 잡아두려고 하지만,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저러고 영화를 찍겠다고?"라는 물음을 던지면 "우린 찍으면 안 돼? 왜?"라고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라고 해서 꼭 전문가적 지식과 고급 인력 및 장비를 갖춰야만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영화를 찍는 과정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관객에겐 <뽕똘>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 한없이 우스꽝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너머에 있는 이들의 열정과 의욕만큼은 누군가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악전고투하면서 진심으로 임하지만, 그것이 외부인에겐 참말로 웃기는 상황으로 돌변하는 것만은 피해 가기 힘듭니다. <뽕똘>의 오멸 감독이 그걸 의식하한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산방덕 의 전설'을 마무리하면서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집니다. "나의 슬픔이 다른 사람들에겐 즐거움인가 봐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뽕똘>은 아마추어리즘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어떤 필요와 목적, 대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화를 좋아해서, 단지 그것 때문에 설령 자질이 부족하고 어설프다 할지라도 끈덕지게 매달리는 것이야말로 아마추어 정신이 가진 순수함이겠죠. 이것을 전달하고자 했던 오멸 감독님의 의도는 <뽕똘>에 오롯이 녹아 있습니다. 아마추어리즘을 아마추어리즘으로 포장한 것도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인 게 아니라 감독 본인이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분이 아니라 투박하게 나온 것일지라도, 결과적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덕분에 더 효과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 1시간 30분이나 필요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또한 감독의 의도는 십분 살아났지만 관객이 얼마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더군요. 중반을 넘어 이런저런 요소가 더해지기 시작하면서는 영화가 난잡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인상마저 받았습니다. 참신한 발상과 독특한 표현력이 갈수록 힘을 잃으니 관객의 집중력도 그에 비례하여 흐트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설마 영화 속의 영화인 <전설의 물고기>처럼 시나리오 없이 촬영한 것은 아니겠지만, 좀 더 탄탄한 구성이 필요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덧 1) 자막이 나오기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제주도 방언 때문에 필요했던 거더군요.

덧 2) 연기와 상황 등의 부조화로 빚는 유머는 박찬욱 감독을, 아코디언으로 '뽕삘'이 다분한 멜로디를 선보이는 음악은 <괴물>의 음악감독 이병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조화는 참 좋았습니다.

덧 3) 혹시나 하면서 찾아봤는데 역시나 <뽕똘>에 등장하는 '산방덕의 전설'은 실재하는 것이네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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