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동아일보 신연수 논설위원이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실험'이 필요한 때라는 주장을 내놨다. 주요 보수언론은 '정책실험'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경제·복지 정책과 관련해 '국민이 정책실험 대상이냐'는 비판을 내놓는다. 그러나 같은 동아일보 김광현 논설위원은 기본소득 논의를 '지옥으로 가는 지폐 다발'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신 논설위원은 17일 칼럼 <독일은 기본소득 실험하는데>에서 "한국과 달리 선진국에서는 정책에 대해서도 '실험'을 하는 사례가 많다"며 "최근 가장 흥미로운 정책실험은 독일의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소개했다. 코로나19로 유럽에서 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독일이 11월까지 100만 명 이상의 신청자를 받아 그 중 120명에게 아무 조건 없이 3년 간 연 60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고,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1380명의 대조집단과 비교하는 실험에 나섰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9월 17일 <[오늘과 내일]독일은 기본소득 실험하는데>

신 논설위원은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 역시 찬성과 반대의 주장만 무성할 뿐 근거들이 희박하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본소득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는데, 아무 준비도 안 하다가 선거 때 임기응변식 선심 경쟁으로 치달을까 걱정"이라고 썼다.

그는 "한국도 이제 선진국이다. 진보와 보수, 여야를 넘어 정책의 과학성과 지속성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 다른 나라들은 때로 수십 년에 걸친 정책실험도 할 만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접근한다. 우리는 이미 1, 2차 재난지원금과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서울시의 청년수당 같은, 정책실험을 대신할 만한 소중한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이런 정책들의 효과라도 공개적이고 객관적으로 비교 연구해 다음 선거 때는 좀 더 근거 있는 논쟁을 하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신 논설위원의 이번 문제의식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는 "정부여당은 더 힘겨운 사람에게 더 두텁게 준다더니 느닷없이 전 국민 통신비를 끼워 넣었다. 야당은 대안없이 정치 공세만 한다"며 "1차 재난지원금 이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거의 똑같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선별이냐 보편이냐 주장은 무수하지만 피차 근거는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신 논설위원은 '정책실험' 대표 사례로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로 MIT 교수 부부를 들었다. 그는 "'직관이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말고 실험을 통해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라', '기업은 수많은 실험을 거쳐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데 정부는 왜 아무 실험도 하지 않고 정책을 만드는가' 같은 그들의 주장은 정책 당국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며 "바네르지 부부뿐 아니라 세계 많은 기관과 연구자들이 ‘정책실험’을 통해 의미 있는 결론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진영에서 정책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경제·복지 정책에 대한 '실험'을 사실상 거부한다. 주요 보수·경제지에 '국민이 정책실험 대상이냐'는 비판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동아일보는 최근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를 '정부여당의 부동산 입법 몰이'로 규정, "안정성과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부동산 정책실험'속에 내던져진 시민"(8월 10일자 사설)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당시 신 논설위원은 8월 6일자 칼럼 <임대차보호법, 이제야 일 좀 하는 국회>에서 "임대차보호법의 전격 개정은 4·15총선에서 국민이 표를 몰아준 '슈퍼 여당'의 힘을 민생을 위해 사용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썼다.

2018년 동아일보는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그해 정부정책에 대한 평가를 실시, 소득주도성장이 최하 점수를 받았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정부가 속도 조절을 하기로 했지만 이미 정책 실험의 부작용이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분석이 많다"고 했다.

'기본소득'과 관련해 동아일보 논설실에서는 신 논설위원과는 정반대의 주장이 진작에 나왔다. 동아일보 김광현 논설위원은 5월 7일 칼럼 <'돈다발'의 위력과 위험>에서 '금권선거' 프레임을 꺼내들며 기본소득에 명시적인 반대입장을 펼쳤다.

동아일보 5월 7일 <[오늘과내일]>‘돈다발’의 위력과 위험>

김 논설위원은 "이번 총선 결과는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돈 풀기의 위력이고, 또 하나는 경제 논리가 정치 앞에서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였다"며 "마지막에 튀어나와 선거판을 흔든 이슈는 긴급재난지원금 하나였다. 그리고 그 위력은 대단했다"고 썼다.

그는 "나름 정치에 일가견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여당이 이렇게까지 압승할 선거는 아니었는데 막판 전 국민 가구당 100만 원 현찰 지급의 힘이 컸다고 한다"며 "여야가 다 같은 공약을 내걸었지만 나라 곳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여당의 약속과 입밖에 없는 야당의 약속은 실현 가능성에서 현저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논설위원은 향후 대선에서 '기본소득'이 핵심 이슈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한 뒤 "일회성 긴급재난지원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 수당들을 가능한 한 많이 폐지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긴 하지만 가히 복지의 끝판왕"이라고 했다.

김 논설위원은 "기본소득이든 뭐든 정부가 뿌려대는 돈 자루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한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것"이라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지폐 다발 같은 달콤한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의 여러 나라가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그 길이 아닌지 누군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도 외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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