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자로 수사기간을 끝낸 삼성특검이 수사기간을 30일 연장시켰다. 오늘이 그 첫 날이다. ‘삼성특검 제2라운드’라고도 하지만, 많은 신문․방송이 ‘삼성특검 연장전’에 돌입했다고 제목을 붙인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동네 특검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게임을 평가해주는 서비스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 말 많은 전문 해설가들은 화장실이라도 가셨나? 스코어가 몇 대 몇입니까? 특검과 삼성 양 쪽에서 서로 몇 점씩을 주고받았나요? 먼저 골을 넣은 선수는 어느 팀의 누구죠? 만회골은 또 누가 터뜨렸나요? 슛은 강력했나요? 선수들 움직임이나 감독의 작전은요? 관중들은 어찌 많이 모여들었던가요?

골이 들어간 것을 본 기억이 없고, 관중들의 환호도 들어본 적 없다. 관심 갖고 TV중계를 보지 못했다. 몇 골이든 동점골을 주고받는 팽팽한 접전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 골은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프리미어리그처럼 밀고 밀리는 수준급 경기가 펼쳐진 것도 아닌, 대충 뻥뻥 차대고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지리멸렬한 시합이었던 것이다. 정말 돈 아깝고 시간이 아까웠다. 골키퍼가 하품할 그런 후진 게임의 ‘연장전’이라고 하니, 뭐가 그리 흥미를 끌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가? 오늘자 신문을 뒤져봐도 ‘연장전’이 시작되었다는 단신들 외에 별로 관심이 없다.

▲ 매일경제 3월10일자 6면.
0대 0, 뻔한 결과가 예측되기 때문일까? 그래도 섭섭해 할 필요는 없다. 끝까지 게임에 집중하는 해설가들이 남아있다. 우선 재계 민족주의, 자본 애국주의로 명성이 높은 <매일경제>의 평을 들어보자. 한국무역협회 부회장께서 ‘특별기고’를 날리셨다. ‘삼성특검 조속한 마무리가 필요할 때’라는 게 제목이다. “삼성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가야 할 길을 가도록 하는 일은 이 기업을 위해서나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삼성 특검을 하루속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편파적이라고?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적당히 덮어주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필자가 염려하는 것은 수사가 장기화됨으로써 삼성의 경영, 나아가 우리 경제의 미래에 큰 구멍이 생길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할 때다. 삼성에 대한 특검의 수사와 처리가 하루빨리 마무리돼 삼성이 우리나라 간판기업으로서 제 구실을 재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하니 ‘국민기업’ 삼성의 발목을 잡지 말고, 연장전 자체를 취소하라. 바로 이런 말이다.

“지금처럼 폭로를 즐기는 듯한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이 말씀에는 ‘정의는 폭로에 반한다’는 흥미로운 개념정의가 깔겨있다. 폭로가 정의를 말살한다. “정부와 법을 불신한 채 폭로를 뒤풀이하는 일은 정도를 이탈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법이 정의고, (사)법(부)이 정도다. 황우석 신화를 고발한 <PD수첩>, 삼성X파일을 공개한 이상호 등등, 진실을 폭로한 이들은 정의의 적일 따름이다. 권력의 비리, 권력의 부패, 권력의 모순을 폭로한 자, 집단, 매체도 마찬가지다. 정도에서 벗어난, 사회 윤리적 악이다.

정의에 대한 가르침은 <매일신문>의 소위 ‘수암칼럼’이라는 데서도 반복된다. 지금도 대구 경북 지역에서는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칼럼이다. <미디어스>가 지역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니, 한번 꼼꼼히 살펴보자. ‘무엇을 위한 정의구현인가’가 제목이다. 칼럼은 정의구현사제단을 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 3월9일 KBS에서 방송된 'KBS 스페셜'
“삼성특검 떡값 의혹 제기는 왠지 국민들의 가슴에 ‘신부들이 왜 나서지?’ 하는 찜찜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폭로 제기 전에 사제단이 짚어봐야 할 게 있었다. 의혹을 귀뜸해준 사람의 모습이 과연 사회정의로 볼 때나 인간적 도의를 기준할 때 보통사람들이 정의롭다고 인정할 만한가 하는 점이다” “정의를 제대로 구현하겠다면 특검을 믿고 증거를 다 찾아낼 때까지 기다리며 수사기관의 입에 귀 기울여야 옳다. 국민정서와 양심에 생선뼈처럼 걸리는 이상한 정의는 구현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비뚤어진 정의는 구현될수록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에 배덕과 비양심이 자리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공동체가 정의하는 정의구현이 아니다.” “왜 정의를 위해 폭로했다는 데도 의인이라 부르지 않고 ‘저 친구는 왜 못 잡아넣나’라는 사람들이 생겨날까를 생각해 보라….” “일단 특검에 맡겼으면 떠들지 말고 기다리고, 특검은 특검대로 신속히 제대로 밝힌 뒤 김 변호사도 수사하라. 그것도 정의다.”

세삼 어떤 설명이 필요하겠나. 어떻게 이리 쉽게 정의가 이야기되고, 어찌 이리 요상하게 정의론이 정리될 수 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기야 전두환 정권도 ‘정의’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폭로’는 정의․정도에 어긋난 것이고, ‘폭로’는 ‘인간적 도의’를 벗어난 것이며, 정의는 국가기관에게 맡겨진 것이라는거죠?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셨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감춰져 있던 사실을 드러냄. 흔히 나쁜 일이나 음모 따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이른다.’ 권력에 의해 감춰진 나쁜 일을 시민에게 고발하는 매우 선량한 일로 개념 정의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폭로가 정의에 반한다? 천만에. 신자유주의 자본권력의 시대, 폭로는 선이다. 저널리즘의 무기 그 자체다. 폭로가 고발이고, 고발 없이 진실 발견은 불가능하다. 대체 뭘 원하시나? 부정한 권력, 부도덕한 자본을 지켜주고 싶은 건가? 어찌 사회적 정의의 의식, 윤리적 정도의 상식이 이토록 추락했는지. 삼성의 내부 고발은 무책임한 ‘폭로’이고, 김용철 변호사는 되지 못한 인간일 따름이다. 모든 걸 특검에게 맡기거나, 아니면 그 특검조차 후딱 끝내버리자. 원래대로 돌아가자. 이게 이 시대 신문이 가르치는 정의의 뜻이고 정도의 의미다. 이게 삼성특검 ‘연장전’에 나온 드문 해설가들의 멘트 내용이다.

▲ 조선일보 3월10일자 사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조선일보> 사설은 칭찬할 만 하다. ‘삼성특검, 기한 연장하며 국민에게 설명 한마디 없나’는 사설은 김 변호사의 폭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특검이 정의라거나 특검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게 정도라고 억지 부리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국민들은 지금 특검이 지난 60일간 삼성을 수사하는 동안 과연 수사할 것을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엉뚱한 곳에서 헤매면서 시간만 까먹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불법상속 의혹과 비자금 조성 의혹, 로비와 뇌물 제공 의혹을 밝혀야 할 본질을 잊고 있는 게 아닌가 다그친다. 게임에 대한 일반의 피곤함, 답답함, 지루함을 잘 대변하고 있다.

“특검이 해야 할 국민에 대한 도리”를 정확히 지적한다. “그간 수사내용을 일일이 공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삼성 수사의 이 세 가지 본질과 관련해 국민에게 이 부분은 여기까지 와 있고 저 부분은 저기까지 와있다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어떤 부분을 어떤 일정으로 중점 수사해 보완하겠다는 계획과 의지는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지당한 소리다. 연장전에 돌입한 특검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연장전을 관망하는 신문, 방송들도 이 정도의 원칙적 해설은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연장전’에 돌입하는 선수, 관중과 함께 할 수 있다. 이제야 게임이 좀 재미있어진다. ‘특검, 언제 한 골 넣을 거요?’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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